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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그리고 공.부.

- 느린 걸음으로 -

by 산들바람

시. 험.

수능날. 올해는 날이 따뜻해서 참 다행이다.

오늘 나의 시간은 수능의 수험 시간과 맞춰진다. 지금은 2교시, 수학영역 시간이다.

수능날은 많은 선생님들이 고등학교 수능시험장에서 감독관을 하여 중학교는 재량휴업일이다. 감독으로 차출되지 않은 나는 집 근처 공원에서 반려견과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뭔가 다름을 감지했다. 조용했다. 아파트 리모델링을 대대적으로 하여 매일 들리던 타타타타닥~~ 시멘트를 뚫는 기계음이 멈췄다. '아, 그렇지. 수능이니까..'. 가만히 시험장의 학생들을 떠올렸다. 시험지를 앞두고, 어떻게든 풀어가는 우리 모두의 학생들. 이 날은 수험생이라 불린다. 모든 수험생은 긴장의 이 시간을 보낼 것이다. 공부의 산을 어느 정도 올랐는지 상관없이.


일요일이라 어제는 걸어서 산을 올랐다. 가을이 더 깊어져 추워지기 전에 몸을 움직여보려는 마음이었다. 산 초입에는 황톳길이 매끌 매끌, 단정하여 사람들이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발이 시리지 않다면, 신발을 벗고 싶었다. 은행잎이 노랗게 덮여 푹신한 황금길이다. 야트막한 산이라, 그리 오래지 않아 금방 정상 부근에 이르렀다.

아빠랑 어린 아들이 함께 내려가는 길에 나랑 마주쳤다. 지나가면서 "아빠, 그런데 왜 산에 오는 거예요?" 어린 아들이 묻는다. 아빠가 어떻게 대답할까 궁금했다. "너, 금방 올라갔잖아. 가보니 어땠어? 산 아래의 공기와 달랐잖아. 엄청 상쾌하고 좋았지?" 젊은 아빠가 대답한다.


공. 부.

공부는 산을 이룬다.

수만 가지 산이 다르고, 그 산을 오르는 사람도 산만큼 다양하다.

더 높이 오르는 산,

오르다가 그냥 내려가고만 산,

오르지도 않고, 그만 주눅 들게 만드는 산.

산을 이루는 공부도, 산이 다르듯 사람도 오름에 있어 다른 행동을 보인다.

같은 것이 있다면

모두 올라가 봐야 안다는 것,

그리고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것.


산은 오르면 끝이다.

정상에 오르니, 시원하고 상쾌하고 꿀맛 같은 휴식이 온다.

공부의 산은 다르다.

오른 자의 성적과 등수를 말한다. 몇 개를 맞추었나 점수를 따지고, 서술의 논리를 근거로 들어 등급을 매긴다.


시. 험. 공. 부.

우리 학생들은 공부에 꼭 앞 두 글자를 붙인다. 시. 험. 그래서 시.험.공.부가 된다.

공부는 그리고 학교는 시험을 목적지로 두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종착지는 시험인가? 학교 공부에는 꼭 시험이 따른다. 공부의 이유도 시험이 되었다. 시험을 보지 않으면 그래서 불안하다.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할까 봐.

모두가 공부가 중요함을 안다. 그런데 현실로는 시험이 더 중요하다. 시험을 위해 공부가 있는 모양이 되었다. 공부의 끝이 시험이 되는 것보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존재하게 되었다. 학교의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그 불안감이 학교 전체공기를 뒤덮는다. 갑자기 예민해진 아이들이 자주 싸우기도 해서, 학교폭력 사안이 더 자주 발생한다. 누군가는 시험이 끝나면 울면서 밥도 먹지 않는다. 깊은 우울에 빠져서 스스로를 깊이 자책하는 경우도 많다. 막상 듣고 보면 몇 개 안 틀렸다. 그 점수는 훌륭해도, 실망감에 위로가 통하지 않는다.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바닥으로 가라앉는 아이들도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좋을지 모를 때가 참 많다. 마음이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어느 약손으로 쓰담쓰담이 될까?


공. 부. 를 하고 있는 학생

올해 새로운 학교로 근무지를 명 받았다. 이전에 있던 학교와는 거리는 멀지 않으나, 학생들의 학력 수준은 상당히 달랐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교문에서 맞이하던 어느 봄날이었다. 아이들은 대체로 전날 늦은 시간까지 학원수업을 듣고, 새벽까지 시험공부와 과제를 했던지 힘든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 무리들 속에서 두꺼운 책을 끼고 들어오는 남학생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책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의 이름을 묻고, 무슨 책인지를 물었다. 놀랍게도 유클리드 기하학 책이다.


수학은 평생의 벽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유클리드 기하학'이라니.. 그 책은 우리 학교 수학선생님이 이 친구에게 선물로 주었고, 이 책을 애독하고 너무 아껴서 항상 들고 다닌다고 한다. 또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이 학생이 다른 책을 들고 있었다. '괴테의 파우스트'였다. 불가사의한 일처럼 느껴졌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서 수학을 공부하고 있고, 그래서 친구들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책을 선물한 수학선생님께 나중에 듣게 되었다. 도대체 유클리드 기하학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바탕으로 수학 이론을 최초로 정립한 것으로 세상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고 한다. 기하는 수학의 시작이며, 수학의 원리가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학은 문제를 푸는 과목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공.부.를 하고 있는 그 학생을 통해서

수학의 원리를 풀어 설명하는 책이 있고,

수학도 책으로 읽는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고 배웠다.


마지막 시 .험.

학교는 항상 바쁘다.

11월, 12월은 더욱 바쁘다.

학교도 농사를 짓는 과정이다. 씨를 뿌리고, 무지한 더위를 지나고야 추수를 거둔다. 아이들은 입학하고, 매일의 학교 일상을 건너가면서 배우고, 경험하고, 성장한다. 방학이 끝나면 부쩍 아이들의 키가 쑥 올라와 있고, 묵직한 존재감을 보이는 것을 보면,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올해 학교 농사를 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학생들은 마지막 시험을 치러야 하고, 3학년은 자신이 가고 싶은 고등학교 입학도 준비해야 한다. 여러모로 바쁜 시간이다. 남은 시험은 단 한 번이고, 어떤 등급으로 결정되는지 마지막 기회가 남았다. 모두 또 한 번 시험 앞에서 조금씩은 떨고 있다. 시험을 잘 보고 싶어서. 그리고 좋은 결과로 마무리하고 싶어서... 그 떨림이 나에게 전해진다.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

힘든 일은 왜 한 번에 일어날까

나에게 실망한 하루

눈물이 보이기 싫어 의미 없이 밤하늘만 바라봐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이 노래를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런 날

오늘은 수능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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