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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너'라는 장미!

- 느린 걸음으로 -

by 산들바람

꽃이 피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봐?

올해 가을, 지리산 자락 대원사에 이르러 마당에 피어있는 장미 두 송이를 만났다. 가을 하늘은 코발트블루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는 파리 외곽의 센 강에서 보트를 타는 장면을 그렸고, 로드 모네는 Lavacourt under Snow 작품에서 흰 눈을 코발트블루로 그렸다. 눈이 시리도록 하늘이 파랗다. 시선을 거두기 어려워 하늘만 자꾸 길게 올려다보았다. 한참 코발트블루 하늘을 시리게 바라보다가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 분홍이 있었다. 바로 그렇게 예쁜 장미 두 송이.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분홍 장미가 완벽한 대비를 이뤄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도 모르게 걸터앉아 있던 툇마루를 털고 일어나 꽃 가까이로 다가갔다. "웬일이야? 11월인데.." 오월의 장미가 십일월의 장미라니.. 좀처럼 사진을 잘 찍지 않고, 찍히지도 않는 사진 기피증이 있는 나는 핸드폰을 꺼내 한껏 줌인으로 잡아당겨서 꽃잎의 실핏줄까지 나오도록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몇 안 되는 나만의 인생 사진을 건진 듯한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예뻐서. 가까이서 보니 가지에 붙은 잎사귀는 낙엽이 되어 거의 떨어지고 말았는데, 장미꽃 혼자서 보란 듯이 11월의 장미도 예쁘다고 고고하게 말하고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꽃들은 각자의 모양과 색깔과, 향기로 모두 다르다. 단 하나 같은 것은 모두 예쁘다.

길게 잠들어 있던 꽃봉오리의 시간을 지나,

자신만의 얼굴을 세상 밖으로 들이미는 행위가 꽃 피움의 클라이맥스다.

지루했던 삶이 어느 순간 자신부터 보란 듯 스스로를 뿌듯해하는 그 순간,

사람의 꽃이 피어나는 상상을 해본다.

오늘 이 순간에도 어떤 이의 꽃은 스스로 피워내고 있을 것이다.


천 번을 흔들리면서 피는 꽃, 사람.

나는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다. 특히 수학이 어려웠다. 문제 앞에서 절벽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어떤 문제 앞에서는 몇 시간이고 헤매었다. 지금처럼 학원을 다니던 시절이 아니었고, 돈이 들어가는 과외를 할 수 있는 도움과 지원도 받지 못했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께 문제를 들고 가서 여쭤보고 했는데, 어느 순간 창피함을 느꼈다. 그렇게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을 괴롭게 할 수는 없었다. 수학 선생님은 이과인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존경하는 담임 선생님이셨다. 담담하게 칠판 가득 문제를 설명하면서 풀어가는 담임선생님이 경이로웠다. 선생님이 문제를 한가득 설명하고, 칠판을 지우고 또 문제를 풀어가시고.. 그 장대한 한 편의 수학 풀이 영화와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왠지 알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수학의 절벽 앞에서 꼼짝 못 하는 태권동자 마루치 아루치였다. 문제를 봐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면 책 뒷 쪽에 있는 해설서를 봤다. 되도록 해설서를 보지 않으려고 부록처럼 붙어있는 해설서를 떼어내지 않으려고 하다가, 도저히 안되어 나중에는 칼로 도려내어 아예 책 옆에 펼쳐놓고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설서를 봐도 도무지 어떻게 풀어가는 지를 모를 때의 답답함은 쌓여갔다. 하나가 막히면 다음으로 진도가 안 나가기 때문이다. 그 문제 앞에서 쩔쩔맸다. 문제를 들고 멋지게 설명을 해줄 것 같은 오빠나 삼촌들에게 찾아가서 물어봐도, 해설서를 보면서 '이렇게 하면 되겠네' 똑같은 설명만 했다.


나는 내가 어떤 부분을 모르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모르는 부분을 아는 것이 공부의 출발인데, 뭘 모르는지를 모르니, 공부의 흑역사를 쓰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위는 혼자서 엉엉 우는 것뿐이었다. 고작 수학 한 문제로 몇 시간을 싸워도 모르는 학습능력의 한계가 참을 수 없게 미웠고, 서러웠다.


사람의 인생이 뜻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었음을 나는 가장 먼저 수학 공부에서 알게 되었다.

그때 그 무렵 나는 나를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나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요즘의 지구 날씨는 여름이 유난히 길고, 지독히 덥다. 40년 전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겨울이 유난히 길고, 지독히 추웠다. 지금처럼 거위털의 따뜻한 옷과 극세사 무릎담요도 없었던 시절이다. 무방비로 겨울이라는 전쟁터를 지낼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는 대부분 연탄을 때는 보일러를 사용하였는데, 불기둥이 닿는 아랫목만 따뜻했다. 그나마 연탄불이 꺼지면 냉골방이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당시에는 당연한 표현이었다. 이불이 있는 아랫목에 발을 넣는 것이 가장 따뜻하고 행복하고 안전했으니까..


긴 겨울방학이 되었고, 2학년이 되기 전에 그 수학을 어떻게든 내 힘으로 해결해보고 싶었다. 서점에서 수학의 정석이라는 문제집 한 권을 사들고, 그때부터 학교 도서관을 나갔다. 당시 학교는 겨울에 난방을 하지 않았다. 모두들 겨울이면 얼어붙었다. 그나마 학생들이 같이 있을 때는 서로의 온기가 조금 공기를 덥혀주었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 학교의 도서관은 시베리아 벌판이 이 정도 추울까 싶은 냉기가 감돌았다. 그래도 나갔다. 겨울방학 내내. 그 한 권을 다 끝낼 때까지. 도시락은 꽁꽁 얼어 그나마 준비해 가지 않았고, 혼자 먹을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춥고 배고파본 적이 있는가?라고.

그때 나는 추웠고, 배가 고팠다. 수학이라는 거대한 산을 앞에 두고, 그 산을 오르기 위해서 한 걸음씩 무거운 발을 떼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아무도 오지 않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무엇을 위해 그리 애를 썼는가?

시작은 수학 공부였는데, 나중은 나에 대한 공부였다. 나를 이겨보고 싶은 공부였다.

손발이 동태처럼 감각이 없어지고 오들오들 떨면서 찬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앉아 나는 결론적으로 끝내 수학을 이기지 못했다. 여전히 그 수준에서 맴돌고, 한 뼘 정도 나아졌을까 싶다. 내가 이제 교사가 되어보니, 공부는 공간이 무지하게 중요하고, 학습의 효과를 올리는 물리적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공간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으니까. 내가 싸웠던 추운 도서관 환경에서 공부의 효율이 오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점점 나와 싸우고 있었다.

수학 문제를 못 이겨도 나를 이겨내고 싶었다.

추위와 지루한 시간과 외로움과 그리고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앞에 둔 좌절 앞에서 끝내 고집을 부렸다.

풀리지 않아도 정해놓은 페이지까지 진도를 나가보고, 언젠가는 알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버리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수학을 둘러싼 나와의 싸움은 집에서도 계속되었다. 겨울의 과거 주택은 유난히 춥다. 남쪽으로 향한 창문이라도 한 겨울에는 서리로 뿌옇게 얼어붙었고, 손가락을 글씨를 쓸 수 있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주택에서 연탄보일러는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바닥 난방의 한계다. 책상에 앉을 수 없고, 아랫목 이불로만 파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추운 도서관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웬만하면 이불을 털고 일어나 앉을 수 없게 역시나 공기는 차가웠다.


나와 약속을 했다. 추운 새벽에도 3시에는 일어나 앉아서 공부하기로.. 집에서는 추운데도 졸린다. 지금의 나보고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할 것 같다. 그런데 그 시절 나는 그렇게 이불을 털고 일어나 3시에 자리에 앉았다. 공부가 되든지, 안되든지 상관없이 움직였다. 그 이유는 나를 대견하다 여기는 스스로의 칭찬이 동력이 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학교에서 교사로 있어보면서, 알았다. 공부는 성과로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에도 반드시 성과를 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 누가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주는 칭찬보다 내가 나에게 해주는 칭찬이 가장 크다는 것을. 자아도취가 착각인지도 안다. 정해놓은 기준이 절대적인 것도 아님을 알고 있다.

작은 한계라도 넘어가 보는 경험이 그 당시의 자신에게는 엄청난 골리앗이다.

한없이 약해도 괜찮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 되지 /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지독한 수학 문제로 쩔쩔매본 사람,

그 문제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꽃눈을 달고 있었나 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길 수 없는 수학 공부와 싸워본 나는 아름다웠다.


조금씩 경계를 넘어가 보는 그런 꽃이 얼마나 예쁜가?

11월에도 장미꽃이 피었다.

그 누군가도 오늘 자신의 꽃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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