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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괜찮아!

- 느린 걸음으로 -

by 산들바람

올해 가을에 지리산을 품고 있는 산청을 다녀왔다.

11월이라도 날은 춥지 않았고, 사람 살기 좋은 온도와 숨쉬기 좋은 공기로 포근한 산청이었다.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지리산 초입의 남사예담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라는 명함을 달고 있다. 고즈넉한 흙돌담길을 걷다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길 양쪽으로는 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은 선비들의 한옥 고택이 줄을 지어 있고, 아직도 100여 가구 사람이 살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의 백의종군 길에 이곳에 들러 유숙하였다는 역사를 함께 품고 있다. 약초를 달인 물에 족욕을 할 수 있는 어느 한옥 집이 문을 열고 있어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니, 가을꽃을 가꾼 집 화단과 곶감이 매달린 풍경에 더없이 정이 갔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발을 담그고 있는 시간은 왜 이리 짧은지.. 주인이 내어준 한방차에 단감까지 맛있게 먹었다. 나는 오래도록 이 시간을 마음에 담았다.

한옥 마루에 앉아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는 지금의 내가 옛날의 나를 납치하듯 갑자기 떠올려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낯가림이 너무 심했다.

혼자 놀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늘 혼자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도 웃고, 농담하고, 서로 다투기도 하고, 수없이 일어날 사람과 사람의 있을 수 있는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도 어쩔 줄 몰랐고, 감히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보는 것은 딴 세상 일이었다.

이야기를 꺼내주는 마중물 같은 사람이 없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궁금해서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세상 속에서 나는 관심 밖이었고, 부모님은 내가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실 여력이 없었다. 구스타프 융은 사람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것을 골라 자아를 가리거나 표현한다고 심리학 이론을 펼쳤다. 그에 의하면 당시의 나는 아직 페르소나를 갖지 못했고, 온전히 맨 얼굴로 나를 드러낼 용기도 없었다.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단지 무작정 혼자 걷는 것이 좋았다.

마음을 둘 곳이 없어 허무함을 달고 다니던 나의 20대는 무작정 걷는 것이 고작이었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 없이 아무 곳이나 헤매었다. 때로는 버스 정류장에서 가장 먼저 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낯선 곳으로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곳이 나타날까 설레는 기대감이 나를 이끌었다. 불안함을 누르고 끝까지 가다 보면 승객이 한 명 한 명 내리고, 어느새 나만 남아있다. 마지막 종착지로 갈수록 정류장 사이가 길어지면서 갑자기 딴 풍경의 세상이 나타났다. 한적하기만 한 시골마을, 계곡이 흐르는 유원지, 내려서 조금 더 걸으면 나타나는 숲 길 그렇게 낯선 공간에 내가 있었다. 더 멀리 가볼 대담한 생각에 간혹 점심을 굶고서 그 돈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느리게 살았던 하루였으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어느 날, 버스에 내려서 더 산길을 오르니 길 끝에 작은 암자가 있었다. 혼자 걸어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꾹 참고 더 올라온 길이었다. 잘 빗겨진 머리처럼 흙마당이 단정하고, 툇마루의 디딤돌에는 흰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온 사방은 적막하기만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에 절 뒤편에 있는 대나무들이 몸을 뒤척이는 소리만 가득했다나는 그 고요가 갑자기 너무 행복했다. 숨을 고르기 위해 마루에 걸터앉은 나는 그 풍경과 하나가 된 듯생각도 멈췄다. 사람은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눈이 열리나 보다. 주변의 온 산자락이 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분명 처음 와본 곳인데, 이 풍경 속의 나를 담그고 있는 그 시간이 너무나 익숙하였고, 아마도 억만 년 전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도 해보았다. 마치 이곳에 오기 위해서 태어나서 살고 있다는 생각도 하였다.


나는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의 나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무채색이다. 가장 화려하고 밝은 친구들과 달리 나는 그랬다. 이유는 있었지만, 당시는 이유를 몰랐다.

외로움이었다. 사람들을 만나 가까이하고 싶으나, 싫어질까 두려워 혼자를 택한 것이다.

외로움에 더하기 두려움이다. 사람들이 모두 내 곁을 떠나는 것도 미리 걱정하는 겁쟁이였다.

외로움에 더하기 두려움 더하기 무서움이다. 사람들이 무섭다는 생각도 있었다.

외롭고 두렵고, 무서워하는 것은 나의 감정이고, 사실은 그런 내가 나를 참 미웠했다는 것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나는 사람들 속으로 나왔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대학 생활이 끝나고 교사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또 다른 나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던 시간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수업을 하면서 학생을 만났고, 업무를 하면서 동료를 만났고, 학생 상담 등으로 학부모들을 만났다. 대략 해마다 500명의 학생과 100명의 동료들을 만나고, 덧붙여 학부모님들까지 고려한다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폭풍의 대전환이 나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것이다. 나는 휘오리 바람처럼 덮쳐오는 상황에 엎어졌고, 좌절했다. 나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되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마치 통돌이 세탁기 안에서 그저 돌아가는 빨랫감이 되어 상황에 이리저리 휘말려 들어갔다. 내 의지와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일상에 놓이게 된 것이다.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떨지 않고 말하는 것이 큰 숙제였고, 사람들의 밥 먹자는 흔한 대화도 부담이 되었다. 느리게, 느리게만 살았던 나는 이제 빠르게, 더욱 빠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했다. 더욱 괴로웠던 것은 나를 내가 쏘아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 평생의 숙제와 같은 사회성! 그 사회성이 이렇게나 부족한 나인지를 자꾸만 어쩔 수없이 바라보게 되면서 나를 자책하는 날들도 늘어만 갔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토닥토닥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어느 날 나는 류시화 님의 책을 읽다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본래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작가의 말에 나도 모르게 그동안 참 많이 힘들었던 나를 떠올렸다. 혼자서도 고요하고 평온하게 살았던 나는 온 우주에서 작은 모래톨 한 알이고, 그 작은 모래처럼 처음부터 맑고 고요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마음속에 찾아오는 생각과 감정들을 적으로 여기지 말고 협력자로 만드는 것이 명상의 기술이다. 마음을 관찰하는데 도움을 주는 협력자로.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나는 잠시 화가 났을 뿐이지 화가 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잠시 두려울 뿐이지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며, 잠시 슬플 뿐이지 슬픈 사람이 아니다. 본래의 나는 맑고 고요한 존재이다. 우리는 어떤 감정보다 더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 류시화, 좋은 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

나를 미워해서는 안되었다. 온전히 나의 생각만으로살아갈 수 없는 현실의 내가 본래의 모습이 아니기에 그 시간들을 헤매고 있는 나를 괜찮다고 말해줘야 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적어도 나에게만은 스스로 다독여줘야 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나는 소중했던 무색투명의 시간적 내 생애의 공간이었음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어떤 모습과 색깔로 살아가든, 그것은 그 시간에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 모래 -


보석이 빛나듯,

사람들은 자신의 빛을 낸다.


억만년이 흘러서

잘게 잘게 부서져가며

쌓여있는 시간들을 몸에 담는 모래.


바닷물에 철썩철썩 온몸을 맞아가면서

견뎌온 한 톨의 모래.


이리저리 파도에 쏠려 다니고

더 이상 더 작아질 수 없는 데까지 이르러

밤하늘의 별을 만나서

이제 꿈을 꾸는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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