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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자전거

- 마음 풍경 -

by 산들바람

Life is like riding a bicycle. To keep your balance you must keep moving.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Albert Einstein -


포근한 겨울날이다.

날이 참 좋아서 일요일 오후, 산책을 나섰다.

주로 걷는 길은 서울 한강까지 연결되는 탄천이다.

사람들이 두툼하게 입었지만, 웅크리지 않고 가볍게걷는다.

나설 때는 추울까 싶었는데 막상 걸으니 봄볕처럼 햇살이 따스하다.


천천히 걷는 내 앞으로 자전거 라이더들이 시원하게바람을 가르며 앞선다.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몸의 근육을 통해 페달을 밟는 그 순간 라이더들의 심장 펌프질이 들리는 듯하다.

나에게 자전거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한 짝사랑과 같다.

바구니가 달린 노란 자전거를 타고 빵 봉투를 담아 오는 풍경은 아름다운 영화만큼이나 로망이다.

자전거는 그렇게 생애 아름다운 한 장면과 함께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어렸을 때 자전거를 배우지 못했고, 안 타본 자전거는 이제 못 타는 것으로 고정되어 버렸다.

자전거를 너무 타고 싶어서 배우려고 한동안 노력했던 적이 있다.

자전거 마니아 동료 선생님은 내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에 도움을 주고 싶어 하셨다.

자전거를 타고 수원에서 춘천, 심지어 부산까지 라이딩을 하신다.

제주는 올레길 걷기로만 떠올리는 나에게 자전거로 일주하는 여행이 얼마나 더 신나는 일인지를 몸으로 느껴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 좋은 세상과 시선을 제공하는 자전거를 타지 못하다니..' 하루라도 빨리 자전거를 배워, 자전거 세상으로 삶을 가볍게 살아보길 권하셨다.


학교를 퇴직하면 자전거를 고쳐주는 자전거 점포를 열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계시는 자전거 홍보대사이시다.

얼마나 좋으면.. 그럴 실까? 지금은 퇴직하시고 팀을 꾸려서 자주 자전거 여행을 떠나신다. 가끔 사진을 찍어서 춘천까지 라이딩을 가신 멋진 모습을 보내주시기도 한다.

그분이 어느 날 보조바퀴를 구해서 내 자전거 뒷바퀴에 달아주셨다.

넘어지지 않으니, 한 번 균형감각이라도 익혀보라고하신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두려움이 없어지면 보조바퀴를 떼버리면 된다고 하시면서..

나는 그렇게 보조바퀴가 달린 네 발 자전거로 페달을 밟아서 처음으로 자전거 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속도가 느리고, 페달을 밟기는 힘이 들었어도 기분이 좋았다.

머리카락을 날리는 맞바람의 시원함이 먼저 왔다. 두 발로 열심히 페달을 밟아야 하는 근육의 건강해짐도 느낄 수 있었고, 땅 위에서 보다 살짝 높아진 시선은 세상을 다르게 보이게 했다.

보조바퀴를 떼고 탈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날이 좋은 봄날,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끌고 여의도로 향했다.

여의도 광장은 나에게는 자전거를 타는 장면과 연상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넓은 광장에서 마음껏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부러웠다. 자전거의 모양새가 살짝 부끄러웠지만 타보려는 마음을 이기지는 못했다.

할 수 없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요가를 배울 때처럼 남들처럼 하지 못하는 나를 보는 것은 부족한 자신을 거울로 보는 것과 같다.

숨고 싶고, 화가 나기도 하고, 참 못난 사람이라는 자괴감도 떠나질 않는다.


자전거는 꼭 타고 싶다는 마음이 불타오를 어느 날이었다.

학교운동장에서 매일 자전거 타기 연습을 계속했다.자전거와 함께 넘어져 엉덩이를 다치고, 무릎이 깨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오른쪽 페달을 돌리고, 땅에서 발을 뗀 왼쪽 발을 페달에 올려 힘차게 돌리니, 기적적으로 넘어지지 않고 가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운동장에 둥근 원을 그리면서 몇 바퀴 돌았다.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타게 된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서 동영상 촬영까지 하였다.

자전거를 타는 긴 싸움에서 의기양양하게 이겼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자전거를 가볍게 끌고 다시 운동장으로 향해서 안장에 앉아 역시 오른발로 페달을 돌린 후 왼쪽 발을 올려 돌리려고 하는 순간 다시 또 넘어졌다. 그때 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몇 번을 다시 해보려고 하다 자전거와 함께 크게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는 덜컥 겁이 났다.

이 자전거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나를 다치게 하면서 타야 하는가? 마음 약한 생각으로 포기하고 말았다.

'못하면 안 하면 되지'라는 자발적 포기의 마음이었고, '할 때까지 해봤으니 이제는 되었다'는 나를 위로하는 마음도 있었다.

포기하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이유를 갖다 붙였다.

결국 나는 자전거를 이기지 못했다.

자전거를 배우려 넘어지면서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나에게 와서 도와주려고 '자전거는 이렇게 타라'라고 많은 사람들이 가르침을 줬는데, 그 많은 사연들을 뒤로하였다.


재작년 여름은 정말 기록적인 폭염의 날씨였다. 그렇게 더운 8월 한가운데, 폭우가 쏟아져 도로가 유실되는 기상 조건에도 우리 학교 선생님은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과 남편, 셋이서 경기도에서 출발하여 부산까지 자전거 라이딩을 다녀왔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근무지를 옮겨 더 막중한 일을 해야 하는 날을 앞두고 이제 중학생이 될 아들에게도 자신을 이겨내는 시간을 주고 싶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정말 영웅이었다.

삶이 반짝이는 금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 못하는 것과 안 해본 것.

문득 내 생애, 하지 못하는 것을 헤아려보니 끝이 없다.

자전거, 스키, 수영, 골프, 댄스, 노래, 악기, 마라톤..수많은 것들이 줄줄 따라 나온다.

못하는 것들이 이렇게 많은 삶이라니..


나는 해보려고 마음을 먹지 않았고, 1만 시간의 법칙을 들이지 않은 것일까?

최근 MALCOLM GLADWELL의 OUTLIER을 읽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1만 시간의 법칙은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지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1만 시간을 노력하기 위해선 그만큼 적절한 기회와 주변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와 환경을 바탕으로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것이 성공의 토대가 된다.


내가 못하는 것은 해볼 기회와 경험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온 시간들의 삶의 괘도를 따라가 보면 닥쳐온 일들에 늘 바쁘기만 하였다.

내가 뭘 원하고, 무엇을 못하고, 어떤 일상을 그리고있는지 살펴볼 수 없었다.

나의 눈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맞춰져 있었다.

짝사랑이자, 로망인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말콤 글래드웰의 법칙을 새롭게 해석하는 이유를 찾았으니 더 그럴듯하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니,

오늘도 나는 뚜벅이로 걸었다.

걸으니까 괜찮아.. 애써 괜찮다고 말한다.

이제 걷는 것마저도 내 마음처럼 할 수 없는 시간이 올 수도 있다.

이번 생은 자전거도 타지 못하고,

이렇게 망한 것일까?


자전거는 인생이다.

자전거는 내 마음에 사랑으로 찾아왔다가,

잠깐 사이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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