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풍경 -
그림을 잘 모른다.
모르는 것이 꽤 불편하다고 느낀다.
태생부터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안목을 타고나지 않았다고 치부하고 말았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잘 모르는 것은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처럼 부족한 나를 말해주는 것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돌아봐달라고 말해도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생애를 얼마나 짧게 살아가고 있다는 말인가?
아름다운 것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그 미적요소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고, 타고난 안목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그것은 알지 못함의 문제였으며, 관심 영역에 대한 문제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의미를 아는 순간, 비로소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또한 내 옆에 지금 누가 있는가? 그것이 중요하다는것을 요즘 느낀다.
그녀는 학교 동료다. 사랑스러운 그녀를 가까이하면서 내 일상이 풍요로워졌다. 책을 따라 읽고, 세상의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된다. 그녀의 브런치스토리를 읽고,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여행의 기술'을 따라 읽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것들을 낯설게 다시 보는 감동을 함께 느껴보고 싶었는데, 그 재미가 엄청 쏠쏠하다.
'여행의 기술' 책 본문에서 눈을 열어주는 미술 (장소 : 프로방스, 안내자 : 빈센트 반 고흐)을 읽었다.
프로방스 여행과 그곳의 아름다움을 그린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세계에 관하여 알게 되었다.
알게 된다는 것이 일상의 행동으로 나를 또한 이끌고 있다.
사람을 알게 되고 -> 이야기를 나누고 -> 책을 따라 읽고 -> 앎과 느낌을 채우고 -> 행동하게 한다.
사람이 중요하다. 행동을 이끄는 첫 단초가 사람이기에.
눈이 많이 내린 설 전날, 설음식 준비를 후순위로 하고 가족과 함께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으로 향했다.
빈센트 반 고흐 작품을 보기 위해서다. 가족들도 모두 좋아했다.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해주고 싶어서 그림을 그린다는 고흐의 말처럼 가족모두 이제 눈을 뜨고 싶었나 보다.
제대로 알아야 아름다운 것들도 볼 수 있다.
미술관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대기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다른 날보다는 관람객이 다소 북적이지 않아서 짧은 기다림 끝에 드디어 입장하였다. 사전에 준비한 큐피커 앱을 통해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꼼꼼히 들어가면서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네덜란드 시기의 여인의 두상, 직기와 직조공
반 고흐의 드로잉 작품의 감자 먹는 사람들
파리 시기의 자화상, 파란 꽃병에 담긴 꽃들
아를 시기의 씨 뿌리는 사람들, 조셉 미셀 지누의 초상, 생트마리 드 라 메르의 전경
생레미 시기의 착한 사마리아인, 슬픔에 잠긴 노인, 협곡
오베르 쉬즈 우아즈 시기의 젊은 여인의 초상, 구름 낀 하늘 아래의 밀더미, 가셰 박사의 초상
관람객들은 큐피커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작품 앞에서 더 많이 모여 있었다. 특히 자화상과 착한 사마리아인의 작품 앞에는 한참이나 오래 머물러 감상하고 있었다.
알아야 보인다.
나는 유독 한 그림 앞에 더 많이 머물렀고, 더 오래 보았고, 혼자 미소를 지었다.
사이프러스와 과수원이라는 그림이다.
그녀의 브런치스토리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사이프러스를 읽었기 때문이다.
사이프러스가 줄곧 내 생각을 사로잡고 있어, 지금까지 내가 본 방식으로 그린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놀라워. 사이프러스는 그 선이나 비례에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만큼이나 아름다워. 그리고 그 녹색에는 아주 독특한 특질이 있어. 마치 해가 내리쬐는 풍경에 검정을 흩뿌려놓은 것 같은데, 아주 흥미로운 검은 색조라고 할 수 있어. 정확하게 그려내기가 아주 어렵지 -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책 인용
마치 회오리처럼 감겨 올라가는 그 나무는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림으로 그리기 전에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작품의 배경이 된 아를 지역의 올리브 숲과 사이프러스는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되어 사람들이 고흐의 작품과 실제 광경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단다.
아무튼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올리브 나무의 형태가 어떻게 뻗어나가는지를 화가의 눈으로 다시 보게된다.
비단 형태뿐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색깔이 대체로 한 가지로만 보이고, 그렇게 단조롭게 표현한다.
밀밭의 황금색은 녹색을 띤 황금색, 노란색을 띤 황금색, 분홍색을 띤 황금색이다.
레몬빛 노란색, 분홍색, 녹색, 파란색, 물방울색, 이 색들은 모두 별의 색을 묘사한 표현이다.
천재 화가의 그림으로 형태와 색채를 세밀하게 보는것이니 참 아름답게 다시 눈을 뜨는 것이다.
마지막 작품을 보고 돌아선 순간, 벽면에 다음 글이 내 마음에 깊이 가라앉았다.
예술이란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가. 본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허무하지도 생각에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고독하지도 않을 것이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본 것들을 잘 기억할 수 있을까?
잘 기억하고 싶다.
허무하고, 목마르고, 고독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기에..
2025년 첫 달.
소중한 사람들에게 새해 달력을 선물 받았다.
제라늄을 진심으로 예쁘게 잘 키우는 분이 소포로 보내준 탁상형 달력,
이 달력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사무실 책상에 올려놓고 꽃을 보듯 날자에 해야 할 업무를 메모하고 있다.
그리고 메트란폴리탄 미술관의 작품을 하나씩 넘기면서 볼 수 있는 달력.
이 달력은 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 책상 겸 식탁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언제든 볼 수 있는 나만의 자리에 딱 위치를 잡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잔을 내리고, 자리에 앉아서 오늘 날자의 작품을 넘긴다.
나는 날마다 그림을 본다.
하루, 하나씩 나는 보는 눈을 뜬다.
오래도록 본다.
자주 본다.
언젠가는 아름다운 안목이 태생에 타고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지 않고 알기 위해서 본다.
인생은 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