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풍경 -
일은 해야 하는 것이기에 스트레스를 함께 동반한다
일은 해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어차피 해야 할 일을 조금 가볍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궁리하게 되었다.
생각의 계기는 집안일의 요리이다.
요리는 잘 못하는 일이라서 머리가 무거운 버거움이다.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때는 멘붕이 된다.
뭐부터 해야 하는지 착착 순서대로 하고, 싱크 작업대를 어지르지 않고도 하는 것이 내가 세워놓은 원칙이다.
갑자기 일이 몰려올 때는 그 원칙과 해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나는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만다.
머리에 열이 올라오는 것을 느낄 만큼 압박감이 느껴지면서 어쩔 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이 아니 기쁘고 즐거운 일인가?
나는 그럼에도 왜 이처럼 무게감을 느끼고 가족에게마저도 얼굴에 힘든 기색을 숨길 수 없을까?
그것을 고민하는 중에 나름 그 원인을 찾아냈다.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었고, 또 하나는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나는 집안일을 하는 데 내가 만든 원칙, 고정관념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음식은 식사하기 직전 따끈따끈, 또는 시원시원하게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들이 그런 것이다.
밥은 따끈해야 하기에 금방해야 하고, 국이나 찌개도 식탁 위에서 펄펄 끓어야 한다.
김치는 꺼내놓으면 느글 해지므로, 시원한 느낌으로 김치냉장고에서 식탁으로 바로 직행해야 한다.
금방 한 음식, 방금 꺼낸 음식, 그리고 정갈하게 차려진 개인적으로 먹기 편하게 차려진 밥상이 내가 추구하는 것이었다. 음식을 하는 것에도 사람들은 추구하는 것이 있다.
추구하는 방식을 따라서 아무리 작은 사소한 것이라도 그 원칙에 따라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요즘 겨울방학으로 학교에 출근하지 않으니, 집안일을 하는 데 갑자기 나에게서 유연한 동작이 발견되었다.
퇴근을 하고 나면 옷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나서 정신없이 바쁘게 음식을 하다 보면 늘 머리에 열이 가득 올라왔다. '왜 나는 이런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싶어서 원망하는 마음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하루종일 시간이 자유롭다 보니, 나는 저녁에 먹을 음식을 미리 오후 2~3시가 되면 준비하고 있었다.
차분하고, 침착하고, 여유롭게..
그러다 보니 일이 힘들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심지어 한가한 주말에도 언제나 해야 하는 시간이 다 되었을 그 순간에 촉박하게 쫓기듯 일을 했을까?
그것이 문제였구나.. 를 알았다.
집안일을 하는 방식에 관한 질문의 연결은 내가 학교 일을 하는 방식을 떠올리게 하였다.
나는 지금의 자리에 있기 전, 교사 시절에 가령 시험 문제 출제 등을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대개는 마감 기일보다 길게는 한 달 전에 끝내던 타입이었다. 5월 중에 1학기 1차 지필평가 시험문제를 출제해야 한다면, 이미 4월 중순에는 출제를 대충 해두었다. 시험문제는 여러 번의 검토와 점검을 거쳐서 신중을 기해야 하는 중요한 일임인 만큼 그렇게 출제한 문제는 여러 상황에서 몇 번이고 읽으면서 점검한다.
늘 보던 책상에서 보이지 않던 문제의 아주 작은 오류가 침대에서 누워서 읽어보면 발견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동료 교사들은 각자 자신들이 일하는 방식을 말하곤한다.
누군가는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지듯 닥쳐야 일을 된다고 하는 선생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일을 하면 조급한 마음이 들고, 머리에 열을 올라오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 되고, 어쩔 줄 몰라하면서 심각한 실수를 하게 된다.
먼저 하고,
천천히 다시 보고,
여유롭게 지내는 것이 내가 일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야 일이 편했다.
쳬계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해야 하는 시간보다 한참 전에 먼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나에게 여유를 가져와 좀 더 느긋하게 주변까지 돌아보면서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했다.
사람들도 눈에 들어오고 필요하면 도움을 주기도 하는 여유도 생긴다.
문득 중, 고등학생으로 공부하던 시절에도 그런 방식이었음을 깨달았다.
고등학생 때는 내가 공부하던 방식을 잘 알지 못하고, 공부의 터널 가운데서 헛다리만 짚었다.
학업에 관한 욕심과 현실의 성적 사이에서 스트레스만 끝이 없었다.
그러다 사범대학에 들어갔고 지금처럼 임용고시가 시행되지 않고 졸업성적에 따라서 발령이 나던 시절이었다. 고등학생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였다.
빨리 발령을 받아 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싶은 장녀의 마음이 작동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 더 높은 성적을 올리지 못한 이유가 뭘까를 고민했다.
어떤 친구는 시험이 닥쳐야 공부가 된다고 하였다. 과제도 마찬가지로 마감 시간이 촉박해야 된다고 하였다. 나도 그런 친구의 경험담으로 해보려고 급하게 하다 몇 번 망하고 말았다.
나는 미리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또 하나 잠이 문제였다. 나는 밤 10시를 넘기지 못한다. 9시가 넘으면 졸리기 시작한다.
뭘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약국에 가서 잠이 오지 않는 약을 달라고 해본 적도 있다. 남들이 해본 것처럼 졸리면 깨려고 찬물에 세수하기, 밖으로 나가서 걷기, 뾰족한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기 등.ㅎㅎ별 걸 다해봤다. 그럴 때는 잠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가, 어느 순간 졸고 있다. 참 한심한 모습이었다.
四當五落이라는 말을 믿고 살았다. 하루에 4시간 자면서 공부하면 대학교 가고 5시간 자면서 공부하면 대학 못 간다는 뜻이다. 그 말을 진짜처럼 따르고 싶었다. 정말 4시간만 자고 싶었다.
10시가 되면 너무 졸려서 '일단 자고 일어나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자'하고 생각했다가, 결국 새벽에도 일어나지 못해서 폭망 했던 경험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렇게 해보려고 생각했다.
10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공부하고, 다시 6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자.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지만, 6시에 다시 잘 수 있으니 견딜만할 것 같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물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은 너무 고역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또 잘 수 있으니까.. 그렇게 대학에서 공부했고, 공부의 재미를 드디어 느끼게 되었다.
새벽 3시, 아무도 일어나 있지 않은 적막한 그 시간은 온전히 나의 시간이었다.
간혹 들리는 풀벌레 소리만이 나와 함께 했다.
가족들마저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공부한 줄 몰랐다. 10시부터 주욱 자고 일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공부의 기쁨을 느꼈으니 심지어 시험 때를 기다리기까지 했으며, 성적도 좋았다.
입학할 때는 학과에서 겨우 합격한 불량한 성적이었으나 우수한 학점으로 수석 졸업을 하게 된 결과다.
사람의 개별성은 다양한 곳에서 찾아야 한다.
성격, 외모 등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개별성의 전부를 말해주지 않는다.
일하는 방식도 남들이 정해놓은 공식을 따라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공부하는 방식에서도 나만의 루트를 찾아낸 것처럼,
일을 하는 방식에서도 이미 정해놓은 원칙을 깨트려서 다시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전말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나는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서 여유가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가장 최상의 업무 코스라도 시간 여유가 없으면 모든 게 흩어져버리는 사람의 성향이 바로 나였다.
나는 그런 성향을 존중하면서 일을 해야 했다.
음식을 맛을 생각하고, 꿈꾸던 비주얼로 차려내는 것처럼 가장 우선은 그 일을 하는 나를 쫓기듯 밀어붙이면 안 되었다. 그러니 내게 여유를 주어야 한다.무슨 일을 하든…
나는 오늘 천천히 시장으로 향했으며, 평상시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식재료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코다리, 아보카도.. 뭘 할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음식은 무조건 패스했다가 이젠여유 있게 미리 할 거라서 오늘은 구입해 봤다.
차근차근하면 나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최소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사람이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잘 쉬어야 함을 뜻하기도 하지만,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 여유를 갖고, 천천히 해야겠다.
느린 소걸음으로..
천천히 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