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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뜨다.

-마음 풍경 -

by 산들바람

꽃을 뜬다.

꽃을 떴다.

크로셰 코바늘과 한바구니 가득 여러 색상의 실, 그리고 꽃을 뜨는 도안이면 된다.

날마다 꽃을 떴다.

좋아하는 동백, 장미, 해바라기는 여러 송이를 떠서 연결해서 붙였다.



어떤 사람들은 크로셰 뜨기 수준이 상당하다. 대부분의 크로셰 모티브는 작가가 도안을 하여 뜨는 방법을 기호로 설명하고 있다.

코바늘로 짧은뜨기, 빼뜨기, 한길긴뜨기 등의 기본 뜨개 방법을 알면 된다. 이 방법은 기호로 표시하고,그 기호를 보면서 어떤 뜨기법인지를 생각하면서 따라 뜨면 된다.

그런데 이게 참 기가 막히다. 어떤 때는 엄청 감탄한다. 왜냐하면 이 간단한 몇 가지의 뜨기 방법이 엄청나게 다양한 조합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지 생각하면놀라울 뿐이다.

기발한 발상에 새삼 사람들의 창의적 재능에 대하여감탄할 수 밖에 없다. 놀라운 패턴이 마법처럼 만들어지는 것은 그 기호를 보면서 완성하는 내 손안에서 이뤄진다.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웠던 코로나 시기를 크로셰 꽃뜨기와 함께 했다. 200송이 꽃 모티브를 몇 달간 계속하여 하나씩 기호를 보면서 뜨고 200개를 모두 뜬 후에는 그것들을 연결하여 두 개의 큰 조각을 완성하였다. 인간 승리 같은 기분이 살짝 들기도 했다.

‘내가 해냈구나..’

가족들은 그걸 왜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구박하기도 했다. 한 번 빠져들면 끝을 낼 때까지 주구장창 앉아서 뜨고 있으니, ‘밥은 언제 하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있는 사람이 그 관심에 빠져있는 것이 관심 밖일 것이다.

나에게는 빠져있는 그 순간이 그게 사는 맛이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로 하나씩 축축 쌓여가는 꽃 모티브를 차곡차곡 책 사이에 끼워 주름을 펴주었다.


뭔가에 몰입해있는 그 순간의 행복은 가장 최고의 시간이다.

주말 아침에는 얼른 모티브를 뜨러가기 위해서

집안 일에 손이 빨라졌다.

커피 한 잔, 그리고 바늘과 실, 도안책.

이게 행복의 조건이었다.

참 단순한 소유로도 한없이 행복한 순간에 빠져들 수 있다니..


거실 바닥에 펼쳐놓고보니, 실로 감격적이다.

한 송이, 한 송이 뜬 꽃이다.

모두 뜨고나서는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여기저기 치이다가 결국 창문가리개가 되었다.ㅎㅎ

가족들은 걸쳐놓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냥 걸었다.


손으로 꽃을 떠보는 행위는 무슨 의미였을까?

한 가닥의 실, 그리고 바늘 하나로 엮어가는 것이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 것인지 기대감 그리고 기호라는 모두의 약속을 풀어 해석하고 그것을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작은 기쁨이었다.


꽃 뜨기는 이제 하지 않는다.

코로나가 끝나면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졌다. 떠나온 후 뒤를 돌아보지 않지만, 집안 여기저기 널려있는 크로셰 덕후의 잔재를 보면서 떠올린다.

‘참 행복한 나의 시간이었다’

실과 바늘로도 행복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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