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풍경 -
생기를 잃어가던 호접난 화분을 밑지는 셈 치고 집 마당에 내놓았다.
그리고는 돌아보지 않고 그냥 두었다. 가끔 마당에 나가서 살펴보니, 점점 살아나고 있었다.
뿌리가 아기 치아처럼 뽀얗게 흙속에서 삐져나와 방긋 웃는 듯했다. 더운 여름날이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그냥 두었다. 한 여름의 햇볕이 가혹하게 화분을 뜨겁게 달구었고, 태풍이 지나갈 때는 비바람을 견디었다.
하루가 다르게 잎사귀가 더 짱짱해졌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힘들게 하는 것이 마냥 나쁘지 않다. 모두를 더 강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겨울이 되어 날이 추워지니, 이제는 집 안으로 들여와서 거실에 놓았다. 그리고는 가끔 물만 듬뿍 주고 일부러 무심하게 그냥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꽃대가 올라와 있었다.
마침내 엊그제 드디어 꽃이 방긋 피었다.
꽃은
사람이 피워내는 것도 있지만,
오히려 내버려 두면 스스로 꽃을 피우기도 한다.
사람은 가끔 꽃을 죽이기도 한다. 너무 물을 많이 줘서 썩게도 만들고, 가까이 두고자 실내에서 바람을 쐬지 못하게 하면 시들어 죽는다. 많은 꽃과 나무들이 내 손에서 죽었다. 살려보고자 애를 쓰면 이상하게 더 죽었다.
호접란은 수원에 있는 학교에 근무할 때 어느 선생님께서 이 꽃으로 나를 떠올리면서 주셨다.
벌써 7년 전이다.
처음에는 여러 포기였는데, 유일하게 한 뿌리가 살아남았다. 이 화분도 거의 죽일뻔했다.
내가 계속 들여다보면 식물이 죽는다. ㅎㅎ
안 보고 놔버려둬야 한다. 과도한 관심이 죽음을 부른다. 안타까워 물이 부족한 줄 알고 물을 더 줬다가 모두 죽었다.
토분 여러 개를 구입해서 이름도 특이한 유럽 제라늄들을 마음껏 심었다. 꽃들이 장미처럼 피었다.
그릇 욕심은 없는데, 예쁜 화분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항아리, 화분, 꽃병, 라탄 바구니는 애착 물건들 목록이다.
예쁜 제라늄들이 올 겨울에는 얼어 죽었다. 주택이라 베란다 온도가 너무 추웠나 보다.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지금쯤 서서히 잎사귀가 생기가 나야 하는데, 줄기는 모두 댕강 말라지거나, 썩었다. 참으로 몹쓸 손이다. 내 손.
다육이는 키우기 쉽다는 말을 듣고 여러 다육이들을키웠다. 모두 죽었다. 나에게 오면 식물들이 죽는다.
그럼에도 꽃을 좋아해서 꽃을 심고, 꽃씨를 뿌린다.
전원주택에 이사를 가서 몇 년 동안 살았던 이유도 꽃을 마음껏 심고 싶은 마음이 때문이었다.
지심도에는 동백꽃이 한창일 텐데, 올해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동백꽃을 너무 좋아해서 몇 년 전 친정집에 갔다가 동백을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죽일 것 같아서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욕심을 버릴 수 없었다. 엄마가 키울 때는 동백꽃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활짝 피었었다.
겨울에 추워서 얼어 죽을까 봐, 우리 집 계단에 들여놓았는데, 꽃망울이 열릴 기미가 없다.
조금 날이 풀리면 마당에 내놓으려고 한다. 마당에서 꽃을 피울 것이다. 작년 봄에 동백이 열렸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서 참 예쁘다고 하셨다.
동백은 누구나 좋아하는 꽃인가 보다.
한 번쯤 모두 돌아본다. 동백꽃을..
꽃 피는 봄이 온다.
학교 사무실이 궁금하다. 존경하는 선생님이 개나리와 벚꽃 몇 가닥 가지를 꺾어 병에 꽂아주셨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피어있을까?
꽃피는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