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 글을 쓸 수 있다.

- 마음 풍경 -

by 산들바람

겉돌고 있다. 살아지는 모든 것들이 그냥 스르륵 지나가고 있다. 숨 한가닥이 쉬어지고, 그래서 살아진다.

생명에는 반드시 따라오는 병과 죽음에 대해서 어찌할 수 없는 무너짐 앞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그 의미를 어떻게 글로 담아낼 수 있는지 아직 감도 잡지 못하겠다. 난생처음 맞이하는 생명 끝자락 어디쯤에서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내 고향은 남쪽이다. 그곳에서 어쩌다 보니, 수도권으로 오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어디에 정착하고 살아야 하는지 고향이 없는 사람으로서 자주 이사를 했다. 결혼 30년 동안 살던 집을 11번을 바꿨다. 전세에서 전세로.. 조금 살다가 다시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거나, 때로는 그 집에 살고 싶지 않아서 자발적으로 옮겨 다녔다. 그렇게 잦은 이사는 이삿짐을 옮겨가면서 단지 살던 집이 바뀐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젊은 날이었다.


어느 날 살던 집이 바뀌고, 주소지가 달라지면 아이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아울러 학교를 옮겨 다녔다. 친구를 사귈 만하면 다른 학교로 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무지했던 부모였다. 학교를 옮기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수인 줄도 모르는 철없는 부모 탓에 아이들의 마음에는 피멍이 들었나 보다. 어느 날 학교 가는 것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시간의 지우개가 있다면? 딱 그 시간을 지우고 싶은 그런 날들이었다. 아이들의 어린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도무지 짐작도 못했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무지함의 무게가 한없이 무거웠던 어리석은 시간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친구들로부터의 폭력적 상황에 무방비로 놓여있었다는 것을 한참이나 벌어진 이후에 알았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상이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게 무너졌다.


아이는 바들바들 떨면서 따뜻한 꼬물거림의 작은 생명체를 가슴에 끌어안고 싶어 했다. 그래야 무너지듯 싸늘한 시간을 살아낼 수 있겠다 생각했나 보다. 생명체가 나에게 오면 더 힘들어질 나의 상황이 눈에 보였고, 나눠줄 사랑과 행복을 전할 공백의 여유가 없어서 안 되겠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아이의 소망 앞에서 그런 걱정은 솜털처럼 가벼웠다.

그래서 난생처음 작고 꼬물거리는 생명체를 품에 안았다. 깜짝 놀랐다. 그 따뜻하고 푹신한 감촉에..

물컹거리는 그 살덩이와 눈을 마주쳤을 때, 나도 모르게 다짐했다.

'그래, 같이 살아보자' 품에 안고 돌아오면서 자꾸만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아이를 제대로 돌볼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또 하나의 생명체를 데려오면서 잘 살아보자고 약속했다.

결론적으로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여전히 사는 것이 바빴고, 나만 쳐다보는 생명체를 외면하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날이 쌓여갔다.


작은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집에 왔다.

그렇게 16년이 흘렀다.

그 아들은 이제 장성하여 결혼을 하였고, 자신의 가정을 꾸려 우리 부부 곁을 떠났다.

나에게로 온 소중하고 작은 생명체도 내 곁을 떠나려고 한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한다.

여전히 따뜻한 생명을 품에 안고 시간을 같이 하고 싶으나, 너무 오래 혼자 있어서인지 나를 자꾸 멀리한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구석에 혼자 웅크린다. 심장 판막에서 혈액이 잘 공급되지 않아서 배에 복수가 차올라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주사기에 넣어서 먹여주고 나니 조금 위급한 상황은 넘어갔지만,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다.


현관 앞에서 내 발소리를 기다렸던 날들, 잔디밭을 바람처럼 가르듯 뛰어놀던 날들, 내 곁에서 조용히 잠들던 날들, 그 모든 날들이 돌아올 수 없다. 살아가는 모든 날들을 함께 바라봤던 날들을 마음에 안고 기어코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 것이다.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는 생명은 단 하나도 없다.




사람이 한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색조를 띤 스펙트럼의 다리를 건너야 하는가?

너무나 즐거웠던 시간도 참 많았다. ~ 그런 시간들은 잘 건너가듯 지나갔다. ~~ 그래서 기억이 잘나지않는다.

너무나 힘들었던 시간은 참 짧았다. ~ 그런 시간들은 잘 건너가지 못했다. ~~ 그래서 오래 기억으로 남는다.


나는 어떻게 내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왔을까?

나는 어떻게 힘든 시간을 앞으로 지나갈까?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왔고, 지나고 있을 때 무엇으로 살까?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무슨 이유가 있으며, 어떤 묘책이 숨어 있으며, 그 순간의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그냥 사는 것이다. 살다 보면, 힘든 날에도 웃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내 마음을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생명 그 자체였다.

여전히 펄떡이는 내 심장, 그리고 내 품에서 똑같이 뛰고 있는 심장을 가진 생명.

그냥 살아있으니,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가고 있으니, 어느 날은 의미도 있는 날이었다.


글을 쓸 수가 없다.

글은 쓰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연들이 그냥 저절로 흘러갔다.

많은 장면들이 그냥 저절로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저절로 스쳐갔다.


사연, 장면, 사람들의 의미를 붙잡지 못했고, 시간 속에서 파묻혀버렸다.

글을 쓰는 것은 자꾸 달아나는 뭔가를 붙잡고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무는 일이었다.

나는 어떤 것도 붙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또다시 열리는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