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은 어디에서 오나?

- 마음 풍경 -

by 산들바람

행복이란 많은 경우 결핍에서 충족으로 넘어가는 '짧은 순간'이라고 말한다. 결핍에서 느끼는 불쾌에서 만족을 느끼는 쾌감으로 넘어가는 과정으로 "빠른 이행"으로 봤다. 행복은 짧은 만족의 시간으로 찰나와 같이 금방 지나간다. -쇼펜하우어 -


내 속에 있는 것들

쇼펜하우어의 행복에 대한 정의는 '짧다'는 동사형이다. 모든 좋은 것들은 짧게 지나간다. 내 속에 머무는 기억의 시간도 짧다. 환하게 웃었던 아름다웠던 날들은 잘 떠오르지 않고 가라앉아있다.

반면 고통의 순간도 짧았지만, 그것이 내 속에 머무는 시간은 너무나 길게 나를 붙잡고 있다.

즐거웠던 찰나의 시간은 '왜 내면에서 쉽게 떠나가버리고 말까?' 고통스러운 찰나의 시간은 '왜 내 안에서 길게 붙잡고 늘어지고 있을까?' 과거형으로 떠나간 어떤 때는 행복했고, 아름다웠다. 또한 어땐 때는 고통스러웠고, 간혹은 아팠다.

삶의 배경 밑그림은 아름다웠으나, 간혹 아팠던 그 장면들은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다. 두뇌 비디오 재생 버튼을 누르면 아픈 순간만이 보인다. 또다시 기억하고 마는 돌아오는 부메랑 같다. 아픈 장면의 비디오를 보고 나면 마음의 물 상태는 온통 흙탕물이 되어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질퍽한 공포나 살인 영화 등을 잘 보지 않는다. 장면들이 머릿속에 길게 남는다.

'나는 왜 이런 사람인가?' 그 질문을 해본다.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마음이 가벼운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다. 그저 툭하고 마음을 놓고 있는 상대방의 말을 듣다 보면 순한 비누향이 느껴진다. 그 마음이 잠시 내 안에 찾아와 나를 잠재운다. 그러나 잠시 뿐이다. 나는 곧 나의 성향으로 돌아가고 만다.

'나는 나라서 마음의 순환이 이렇게 일어나는 것인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웃는 순간을 잃어버렸구나.'

오늘 내 속에 있는 작용과 반작용의 마음을 조금은 알아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들

참으로 아름다운 오월이다. 오월 첫 주는 단기방학이었다. 이 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선물 같은 휴식이다. 더군다나 오월이 아닌가? 말을 해서 뭘 하나? 오만가지 모든 것들이 세상 아름다운 것들 천지다.

미리도 알았지만, 떠나보니 더 알았다. 아름다운 것들이 이와 같구나..

아름다움은 보고 알아채는 것이거나, 온몸의 세포가저절로 일어나 깨어나는 것이었다. 보고 있자니,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눈부시게 아름다운그런 날, 더 멀리까지 떠나보기로 했다.

대학 때 이후로 가보지 못한 지리산 노고단, 남해 고흥반도의 원주도 작은 섬, 곡성의 섬진강, 영암의 월출산.

산, 바다, 강..

싱그럽게 아름다운 것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햇살은부드러웠고, 반짝였고, 찬란했다. 바다는 고요하게 푸르렀다. 지리산, 월출산은 그 자리에서 그냥 우두커니 나를 바라봐주었다. '잘 지내왔고, 잘 왔다'라고 말을 하는 것 같다. 산이 나에게 말을 하듯 가까이 다가왔다.

이 날을 위해서 새 차를 출고했다. 부모님은 첫 시승을 하시면서 여러 곳을 돌아보니 편안하신지 몸을 조금 가볍게 움직이셨다. 오월의 풍경을 둘러 부모님은 '너 때문에 산다.'라고 하시면서 웃으신다. 웃으시니, 그것으로 되었다 싶다. 얼마나 또 그런 모습을 뵐 수 있을 것인가? 얼마나 또 이런 시간을 가질 것인가?

별거 아닌 일상에 즐거운 추억의 한 장면을 가져오는 오월에 부모님과 함께 내 마음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강아지를 차량 뒷자리에 앉혀놓고, 어딜 가도 안아주고, 많이 보여주고, 많이 쓰다듬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들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까지 아름다움이 차오르지 않았다. 단지 아름다운 것들을 그저 감탄하며 바라보는 시각 작용에머물고 말았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가운데에서도 이유를 모를 허전함과 외로움이 한편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은 잘 갔다. 달콤한 사탕을 오랫동안 물고 있을 수는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달콤한 추억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내 눈에 보이는 온갖 아름다운 풍경의 오색찬란한 것들이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것들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도 차오르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천둥같이 요란한 소용돌이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의 오월은 조용하고 잔잔하게 아름다웠지만, 아름답지 못한 이름으로 오월이 지나가고 있다.

오월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다그침이 한동안 마음을 붙잡았고, 그 마음에 이끌려 여기저기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튕기듯 돌아다녔다. 수면에 던져지는 물제비 같은 모양새이다. 이름은 여행이나, 정작은 잠시 머물고, 또 다른 곳을 향한 질주와 같았다.

그렇게 오월의 봄날이 간다.


나는 왜 나를 못살게 할까?

누가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살다 보면 수많은 갈등과 혼란 상황에 빠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좋지 않은 그 어떤 상황이 나에게 떠밀려 온다. 사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 말이다. 당연하다. 쉽지 않으니, 삶이다.

문제는 상황이 아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 작용이다. 일어날 수 있는 힘들었던 그 어떤 상황이 끝났을 때에도 민첩하게 뇌가 움직이지 못한다. 심지어 아무 일도 아닌 상황이었다는 것도 재빨리 눈치를 못 챈다.

나는 계속 마음의 진흙탕 안에서 머물러 있다. 마치 그 안에 내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음 작용이 이렇게나 참 무서운 일이다. 어둡고 침침한 터널과 같은 곳에 스스로 가두어놓고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던져놓고 보는 나를 본다.


살아가는 그 어떤 날이 대체로 평화롭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가는 날들이 나는 불안하다.

마치 폭풍 전야와 같은 고요처럼 느껴진다. 나는 스스로 엄청나게 어려운 일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정신의 외줄 타기를 하는 사람이다. 정신이 나간 사람 같다. 고통을 기다리고, 어서 오라면서 힘든 상황을 기다리는 이런 나를 설명할 길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일요일 아침이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할 작정을 했다. '어디에서 뭘 할까?'의 다그침을 오늘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참 우스운 일이다. 뭘 하지 않기로 하는 것을 더 작정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니..

정말 오랜만이다. 나에게 명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어떤 일과 계획을 짜고 살아가는 당김줄을 멈춰 서라고 조용히 타일렀다. 명상하듯 오늘은 가만히 앉아 생각을 들여다보는 나를 찾으라고..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일요일이라도 일어나 의미 있는 뭐라도 해야 한다고 끝없이 몰아세웠다. 하다 못해 집 앞의 산을 오르거나, 공원을 걷거나, 좋아하는 카페를 가려고 하거나, 쇼핑을 하러 가거나.. 나는 나를 못살게 한다.

왜 자꾸 숙제를 하듯 살아갈까? 모든 살아가는 행위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빨리 하라고 밀어붙일까?

그냥 저절로 흘러가게 두면 되는 것을.. 왜 이러는 것일까?


아침 창문을 활짝 열고, 마음껏 햇빛을 들여보내고 책상에 앉았다. 어느 날에도 들려왔을 새소리가 오늘은 들려온다. 빨랫줄에 널린 홑청이불에 가만히 내려와 한 올 한 올을 말려주는 햇살이 오늘 내 마음에도 비친다.

어느 날에도 있었을 장면이다.

오늘 그 장면이 내 마음에 다가왔을 뿐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걸…

나무 그늘에 앉으니, 바람이 느껴졌다.

봄날의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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