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공식

- 마음 풍경 -

by 산들바람

가끔 눈을 감아본다.

느티나무 아래 한가롭게 앉아 바람을 느낀다. 나뭇잎을 살랑이면서 햇살에 눈부신 바람이 분다.

바람이 좋다.


바람이 불어오는 날,

내 마음에도 부드럽고 편안한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바람 불어 좋은 날에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나뭇잎, 햇살, 공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나는 아주 잠시라도 눈의 감각으로 보던 것을 잠시 덮어본다. 또 다른 감각들을 깨워보기 위해서다.


보고 싶은 것들, 보고 싶지 않은 것들

세상에는 ‘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역설적으로 세상에는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너무 많다. 그냥 눈을 뜨고 있는 한 ‘보이는 것들‘이다. 선택적일 수 없는 시각 작용에 의해 무작위로 노출되어 있다.

‘보이는 것들’ 앞에서 ‘보고 싶은 것들’을 찾는다.

수동적인 눈의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것들의 시각 정보 홍수다. 나는 너무 눈이 피곤하다. 어느 날부터 맑은 눈을 뜨고 있는 것도 어려웠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도 눈을 감고 있는다. 눈을 뜨고 있는 그 일도 내게는 어쩌면 보통의 일이 아니다. 죽음을 뜻하는 영원히 눈을 감았다는 그 표현이 다가온다. 살아있는 사람은 본다.


무작정 ‘보이는 것들’ 가운데, ‘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보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풍경

보고 싶은 책들

‘보고 싶은 것들’을 일부러 찾아 여행을 떠나보고, 사람을 만나보고, 책을 읽어본다.

그럴 때 더 보고 싶은 바쁜 마음으로 눈은 방황한다.

눈길을 어디를 둬야 할지 모르는 순간은 아름다운 장면 앞에서 마구 흔들리는 날이기도 하다. 물론 정반대의 상황도 그렇다.

오늘처럼 산들바람이 불어 푸르른 날, 나는 눈을 감아본다. 세상이 궁금하고 싶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다. 매일 보이는 것들이다. 나는 보고 싶은 것들을 보고 싶다.


보이는 것, 그리고 보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그리고 보고 싶지 않은 것


이별, 그 쓸쓸함

이별이 참 힘들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어쩌면 함께 해서 잊었던 나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두려웠던 같다. 혼자 있는 시간에 나를 보는 순간은 맨얼굴로 거울을 대하는 거 같았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잘 흘러갔다. 학교에 근무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헤어진 줄 모르게 이별했다. 안 보면 못 살 거 같았는데, 엄살이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일 년이 가고, 십 년이 갔다.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릴 때쯤 불현듯 이별의 아린 감정이 떠오른다. ‘잘 가라’라는 말도 못 하고 떠나는 이별이 더 많았구나. 이제야 말해본다. ‘잘 가라! 함께 보고 있어 좋았어! 그리고 한동안 보고 싶었어!’

내 마음에 남아있는 이별 감정에 이별식을 해본다.


이별의 공식 하나

사람들은 자기 삶의 색깔이 있다. 보이는 색깔에 신선 했다. 나를 잊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를 떠나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는 시간은 그들의 삶에 물들어가는 것이었다. 나의 다른 모습을 상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영원한 순간은 없고, 영원한 사람도 없다. 보이는 유한의 존재들을 잊어가고, 잊히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것이 세월이었다.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이별이었다. 이제는 익숙하지

않은 이별이 쉬워지는 공식을 가져야 했다.


'다른 공간, 그 어딘가에서 그들은 그들 각자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을 거야. 그러니, 괜찮아. 너도 그렇게 살면 되잖아.‘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름답게 잘 살고 있다는 상상의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내가 정한 이별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별이 낯설고 생소하지 않았다. 잘 떠나보낼 수 있는 마음도 생겼다.

나의 일상을 그냥 살아가고, 그들은 그들의 일상을 그냥 살아가고.. 서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이별이었다. 이별의 순간, 뒤를 보고, 다시 또 뒤를 돌아본다. 슬픔으로 울었다.

이별은 울어야 하는 순간이지만, 웃어야 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서로가 잘 살아가는 행복한 상상을

해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올 때이기도 하니까..


이별의 공식, 둘

얼마 전 학교 선생님들을 많이 힘들게 했던 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이제 다른 학교로 가요.'라고 말하던 그 학생의 눈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왔다. 하지 않아야 할 행동으로 학교 생활을 하던 학생이 자신으로 인해 힘들었을 선생님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이 순간 느껴졌다. 힘들었을 그 친구의 행동 안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의 고충을 그냥 조용히 바라보기만 한 내 부족한 모습이 떠오른 슬픔이었다. 대부분 슬픈 감정은 상대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던 설움이나 부족함, 외로움 등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별의 슬픔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모든 삶의 필연적인 이별 앞에서 나는 두 번째로 나만의 이별 방식을 정했다.

이별할 때 슬퍼하지 말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에게 마음으로 가까이 하자'는 것이다.


산들바람이 분다.

눈을 감아본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어렴풋 보인다.

보이는 것들 가운데, 보고 싶은 것들을 찾아도,

바람이 왔다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바람은 있다.

바람이 불어 기분이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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