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숲에서 밤새 헤매다.

- 마음 풍경 -

by 산들바람

한 권의 책이 온다.

학교에는 도서관이 있다. 새삼스럽다. 서가마다 책이 수없이 꽂혀있다. 이미 많은 고전책들이 있고, 일 년마다 수천 권의 신간 도서가 들어오는 도서관은 책의 숲이다. 가끔 도서관에 들려본다. 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이 반갑고 고맙다. 뭔가를 ‘읽는다’ 그 행위 앞에 무한한 의미를 담아본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 나를 이끌어준다. 지금껏 읽는 책들은 9할이 이끌어준 것이다. 나는 그 책을 읽는다. 먼저 읽었던 책을 나중 읽는다. 그녀가 책 속에 파묻혀 어느 문장에 감동의 흔적을 묻혀두고 떠났다. 연필로 그어진 밑줄, * 표, ㅋㅋ. 나는 또 그 흔적에서 같이 동감한다. 왜 그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지 고개가 가웃 해질 때는 다시 읽는다. 놓치는 어느 지점을 찾으려 다시 되돌아가서 읽는다. 그 페이지마다 펼쳐진 단어들의 나열에 대한 맥락과 의미를 찾으며 읽어야 한다. 책을 읽다가도 길을 잃는다. 맥락을 놓치고 만다. 단어를 '읽기'만 하고 있다. 누군가 먼저 읽고 줄을 그어놓거나, 이모티콘이나 짧은 메모를 발견하면 마치 보물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다. 책이라는 거대한 숲 속에 숨겨둔 작은 종이조각, 보물이다.


이런 시간이 참 좋다. 같은 책을 뒤를 따라 읽으면서 앞사람의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는 것 같다. 나는 그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면서 길을 잃지 않는다.

‘아, 사람이 아름답구나 ‘ 책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책 속에 묻혀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은 삶을 사랑하고, 주변인도 사랑으로 넘쳐난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상을 책 징검다리를 건너서 사람을 향한다.


나도 읽는다.

혼자 읽거나, 함께 읽는다. 문득 배움과 느낌이 있는 책은 혼자 누리기 아깝다. 그래서 남편에게 슬쩍 권해본다. 일독해 보기를.. 며칠째 그대로 그 책이 놓여있다. 때론 그런 종류의(?) 책을 읽고 싶지 않다고 거절한다. 그래서 나는 또 깨달았다. 사람이 통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같은 것을 바라보는 그 좋아함의 시선이 겹쳐져 있는 사람은 나와 통하는 사람이다.


<난생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을 읽다가 뒤를 이어 <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를 읽는다. 난생처음으로 클래식을 들으면서 읽어보고, 미술 작품을 보면서 읽는다. 나는 읽으면서 알았다. ‘알게 된다’는 사실은 ‘그 차이를 읽어가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들어도 잘 모르는 클래식, 봐도 잘 모르는 작품들 속에서 헤매지 않는 실마리를 던져준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홀로 오는 것은 없다. 음악과 미술의 세계에서도 시대의 흐름, 예술가의 삶 스토리 맥락 가운데 함께 있다. 역사와 과학, 인문학의 흐름을 벗어나 있는 그 어떤 것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두 개의 시리즈 책을 읽으면서 작품의 탄생이 가져온 예술가의 삶을 연관 지어야 한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잠들지 못한 밤, 단편소설책을 읽는다.

언제부터인지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았다. 픽션의 설정이 나를 이끌어가는 속절없는 무저항의 빠져들어감이 부담이 되었다. 힘없이 무작정 발이 빠져드는 상상력의 세계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의 한계가 못났다. 나의 세계는 이렇게 좁은 것이다.


요즘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날들로 고통스럽다. 잠들고 싶고, 푹 자고 싶고, 힘들었던 하루를 마감하고 싶으나 내 의식은 그럴수록 더욱 멍하게 또렷해진다. 정신이 맑지도 않으나, 의식은 깨어있는 상태가 밤새 내내 지속된다. 누워 잠들어보려는 헛된 희망을 접고 아름다운 그녀가 ‘이 책은 꼭 읽어보라던' 단편 소설책을 들었다. 휴일을 앞두고 눈이라도 감고 있으려는 마음을 놓아버렸다. 핏발 어린 충혈된 눈을 뜨고 소설책을 읽으니, ‘이 밤이 참 괴롭구나’라는 감정이 조금은 객관화되어 가라앉는다. 잠들려고 하는 마음도 욕심이구나. 나이 들어서 욕심의 끝은 아주 당연하고 아주 작은 것에서도 온다는 것을 알았다. 잠들려고 하지 말자. 강박이나 불안은 뭔가를 해내고 싶은 마음이었으며, 잠들려고 하는 것처럼 그저 스르륵 오는 것에도 적용되는 감정이었다. '잠이 오는 것'을 애써서 끌어내려는 강박이 생길수록 이상하게 더 멀어지는 것이었다. '그래. 잠들지 말자.' 욕심을 버리자. 나는 이상문학상의 수상작품인 너무 멋진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의 내용보다는 내 안의 고민과 생각에 더 집중했던 상황이었다.


소설의 내용은 무채색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소설이 끝나고 작가와의 대담으로 실린 글들을 읽으니, 소설이 새롭게 보였다. 작가의 의도를 알고 난 후 보게 된 소설은 다른 느낌이었다. 결국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소설의 전개 바닥에 있는 밑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쉽게 읽으려는 소설에 대한 나의 짧은 생각을 잠시 깨달았다. 단편소설 [일렉트릭 픽션]에서 김기태 작가는 말한다. "나는 혼자 읽고 쓸 때도 문학을 좋아했지만, 타인들과 함께 읽고 쓰고 서로 흠잡고 상처받으며 문학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 문장에서 나는 예상외의 단어로 이어지는 문장에 흠칫 놀랐다. "서로 흠잡고 상처받으며"라는 표현으로 연결할 것이라고 상상해보지 못했다. 맞다. 마냥 좋을 수는 없다. 흠과 상처로 애증이 쌓여 서로를 향하는 애틋함이 더 좋아하게 된 이유로 자리 잡는다.


글쓰기의 두려움.

책 가운데 있으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많은 문장의 나무들이 빼곡히 심어져 있는 책 숲을 상상했다. 숲 속을 거닐다 보니, 자꾸 작가의 의도와 소설의 내용에 내 안의 고민들과 현실들이 함께 버무려진다.

나는 잠들지 못한 밤에 한 권의 소설을 읽으면서 글을 쓴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 나의 의식과 만났고, 나를 탓했고, 나를 또 위로했다.


브런치에서 글쓰기가 두려워진다. 나의 글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일기를 쓰는 것 같다. 그 일기를 사람들에게 굳이 왜 보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아마도 어젯밤 읽은 소설가의 말처럼 "내 사랑이 내 두려움보다 크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인 듯하다. 글을 쓰는 동안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내 글의 문장은 어디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모른다. 의도가 없는 글을 무작정 쓰고 있으니, 일기를 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쓴다.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책 숲에서 나를 만났고, 그런 나를 위해서 쓴다. 다른 독자들에게 읽히고 싶은 생각도 없지는 않으나, 지금 이 시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을 기록하고 훗날의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더 크다.

진짜로 나는 나의 두려움보다 나를 사랑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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