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풍경 -
마냥 나쁘지 않다. 어떤 힘든 상황에 대해서 말이다.
뒤집으면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많다. 뒤집어보고, 거꾸로 봐야겠다. 사람에 대해서 말이다.
안 보이는 것들이 많으니 그저 짐작하고 추측하여 생각하면 상대방이 억울하겠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 가운데 있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거 같은 한계를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은 내가 그 사람이 아니기에 하나 되기만을 추구할 뿐이다. 둘이 하나가 될 수 없다.
그 계기는 오래된 불면에 대한 고통이 가져온 것이다. 밤이 이토록 괴로운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정신세계를 추구한다지만, 결국 생명의 기본 요소로 움직이고 말하고 있다. 밤이 되면 잠드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나 당연하지 않았다. 수면에 도움이 되는 각종 보조제를 먹고, 전문가가 조언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따라 해 보고.. 그래도 잠들지 못한 밤에는 깨어있는 뇌의 각성 상태는 사람을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 모르게 정신의 사막을 밤새 헤매고 있다.
‘잠을 청하지 말자.’라는 마음속 약속은 결국 무너지고 만다. 또다시 애걸복걸 매달린다. ‘제발 졸려서 죽은 듯 의식이 없어지기를..’ 그래도 안되어 꼬박 밤을 새우고 난 다음 날, 나는 내가 아니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생소하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놓고도 친정엄마에게 한마디 툭 내뱉고 만다. 그러려고 전화한 건 아닌데.. ‘왜 이러는지..' 그런 나를 미워하게 된다. 사람을 대하는 기본 모드가 까칠을 장착하고 있다.
잊고 살았다.
몸을 벗어날 수 없는 작은 생명 단위의 나를.
먹고, 자고, 호흡하는 생명 활동이 나였다. 육체의 기본 배경 위에 모래로 성을 쌓았다. 몸의 밸런스가 자칫 깨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 손가락 끝에 박혀있는 가시 하나로도 불편한 사람이었다. 허망하다.
사람이 어떤 몸으로 내 앞에 있는지 짐작도 못한다.
우리는 어떤 개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다. 사소한 일들이 일상 가운데 무수히 깔려 오늘 하루를 만든다. 특히 지금 만나고 있는 어떤 사람의 몸 컨디션은 웬만해서는 알아채기 어렵다. 나를 보니 더욱 알게 되었다.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하는 상황은 사소하지만 결코사소하지 않다. 그런 ‘나’로 그런 ’나‘를 모르는 누군가를 대하는 상황은 보통의 선을 넘어서기 일쑤다. 그런 내가 어떤 돌발적 말이나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똑같은 말을 들어도 참을 수 없는 그런 내가 도사리고 있다.
나는 수천 가지 모양으로 변하는 생물체이다. 나는 감정의 기복이 춤을 춘다.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까지 나를 좌지우지한다. 밤에 잠들 때 분비되어야 하는 멜라토닌 호르몬까지도 생명의 밸런스 안에서 작용하는 물질이라는 것을 겪고 나서 몸으로 그 역할을 정확하게 알았다. 오랫동안 불면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면 오히려 뇌가 각성된다. 수면 강박 장애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내 몸으로 알게 되었다. 사람이 몸으로 겪어서 알게 되는 것은 고통스러운 상황이 가져온 어쩌면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는 동전의 이면이다. 잠들지 못하는 고통으로 나를 바라보니, 몸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속 깊은 아픔을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몸으로 다가왔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난생처음 한 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시리즈이다. 모차르트 - 베토벤 - 바흐 - 헨델 - 쇼팽, 리스트 작곡가의 생애와 곡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위대한 곡이 등장하게 된 스토리와 함께 곡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클래식을 만나는 이야기 책이다. 책에서 알게 되었다. 그 위대한 음악가들도 인생 후반 몸의 고통에 몸무림 치면서 작품을 썼다는 것을.. 음악은 들어야 한다. 그런데 베토벤은 듣지 못했다. 악보는 보여야 한다. 그런데 바흐와 헨델은 보지 못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라단조, 작품번호 125 합창교향곡>은 이미 청력을 잃은 상태에서 지휘대에 올라 연주 후에도 청중의 박수갈채를 듣지 못했다. 보다 못한 알토 가수 카롤리네 웅거가 베토벤의 손을 잡고 청중을 돌아보게 해 비로소 박수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베토벤 연구자인 로빈 월리스는 베토벤의 음악은 청각 장애에도 불구하고, 청각 장애 덕분에 나왔다고 말한다. 바흐와 헨델은 똑같이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해서 동일한 안과 의사에게 수술을 받아서 실명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품을 작곡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덕분에로' 역전된다.
나는 잠들지 못한 밤을 '불구하고' 잠들지 못한 '덕분으로' 어떻게 이끌어갈까?
사람에게 어떤 결론도 미리 지어내지 말자. 몸을 가진 사람이 나이고, 내 앞에 있다. 그 사람의 몸의 배경이 깔려서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한다.
나는 그 사람의 지금 몸의 기본 배경지식 없이 만나고 있다.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 설사 말을 해줘도 얼마만큼의 고통인지도 짐작도 못한다. 그런 우리가 만나 서로를 간혹 탓한다.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냐고..‘
누구나 어느 구석이 조금은 불편하고 아프다. 붙잡고 있는 작은 끈이 호흡에 매달려있다. 마음도 따라서 아프다. 안 아플 리가.. 결국 우린 생명이라 아플 것이다. 아프지 않고 살다가 잠을 자듯 생을 마치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가! 몸에 움직이는 모든 생명이 측은하다.
잠들지 못한 밤을 '불구하고'
잠들지 못한 '덕분으로'
몸으로 새겨서 얻은 것이다.
누구라도,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니 이해하려고 들자.
그러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