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여주인공 마츠리는 난치 희귀병에 걸린 사람으로 나온다. 그래서 영화는 병원실에서 여주인공이 같은 병실을 쓴 사람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우연히 동창회에서 남주인공 카즈토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의 연애는 정말 어렵게 시작된다. 결국 난치 희귀병을 갖고 있던 여주인공은 사실을 말하며 남주인공 곁을 떠나고, 느꼈던 감정들을 책으로 남기며 세상을 떠난다.
나에게 남은 인생이 10년이 있다면? 아니 10년이 아닌 5년? 3년? 1년이라면.
여주인공이 왜 그렇게 마음 아프게 삶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 큰 두려움을 보이는지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된다. 시한부 인생이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솔직히 살면서.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는 생은 아니고 하고 싶은 걸 다하며 산 인생도 아니며,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아서 그걸 꼭 해야 속이 후련한 것도 아니지만. 지금 나름 하루하루를 재미나게 살고 있고, 좋은 사람들과 내 삶을 꾸려나가고 있기에 뭐 큰 미련이라던가 그런 건 없는 듯하다. 목적 없이 인생을 살아보자는 올해의 다짐처럼 뭔가를 이루고 싶은 것도 없어서 그런지 괜찮다. 그래도 시한부라는 말을 듣는다면,
무얼 제일 하고 싶을까? 무얼 제일 먼저 떠올릴까?
나란 사람을 이렇게 열심히 탐구하고 있는 이 시간에 더집중하기 위해 미리 적어두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지만 가고 싶은 여행지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스위스. 미래의 남편과 함께 가고 싶었던 신혼여행지, 스위스로 떠날 것 같다. 눈으로 담기도 힘든 말도 안 되는 풍경을 맘껏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루하루가 생각보다 빠르게 흐를 수도 있고, 언제 죽나 달력을 보며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나란 사람은 하고 싶은 걸 계획하여 실행할 사람이기에 소중하게 여행지를 고르고, 행복한 추억을 남기고 올 듯하다.
그리고 튼튼하고 멋진 자동차를 뽑아 국내 곳곳을 여행하며 다닐 것 같다. 당연히 여주인공처럼 몸과 마음이 아파 힘든 부분도 있고, 한계도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많은 곳에 다양한 추억을 쌓고 싶다. 항상 갔던 내 소중한 장소도 당연히 들리고 낯설고 생소한 곳들도 다녀보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경험치를 쌓고 싶다.
그러면서 가끔씩 내한하는 외국 가수들의 콘서트 피켓팅에 성공하여 떼창도 불러보고, 영화제에 스태프로 참여해 그 분야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기도 하다. 평소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겐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니, 최대한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며 미쳐보고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또 떠올린 건 결국 인간, 관계였다. 당연히 나의 가족, 아끼는 동료들, 마이 프렌즈, 내가 사랑할 사람 등이 먼저 떠올릴 거고,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낼 듯하다. 동시에 내가 일터에서 몇 년 동안 해왔던 일들 그 속에서 배웠던 점들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너무 좋은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사랑과 무한 애정을 받으며 살아온 이 짧은 인생을 조금 되돌아보니, 갑자기 고마운 마음이 커진다. 그래도 그 사람들 덕분에 내가 성인군자를 꿈꾸는 사람처럼 살다 갈 수 있으니.
나도 잘 몰라 이렇게 글을 쓰며 알아가고 있는 요즘, 타인의 생각에 영향을 받으며 만들어진 나는 아닐까? 사실 걱정도 했었다. 내 남은 인생이 정해졌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보니, 결국 난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들어보며 다양하게 형성시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중했던 시절 인연, 더 소중한 지금 인연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감사함을 느끼며 인사를 나누고 싶다.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남은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 영화를 보고 나서, 시한부 인생을 상상하여 적어보니 단순하다. 그리고 나에게 남겨질 것도 단순하다. 복잡한 듯 단순하게 살아온 시간이었고, 그렇게 대단하고도 큰 감정이나 일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내 남은 인생은 몇 년일까? 여주인공처럼 남은 인생이 10년으로 정해져 있든, 아니 남은 인생을 미리 알려주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해도 어떻게 살아갈 것 같은 지는 조금은 그려진다. 단순하되 촘촘하게 나의 시간을 채워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