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속 해안 찾기
아니 관리자의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제 생각도 그래요.
아니라고 말씀드리려면 근거가 필요하니
업무담당자는 그 근거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대뜸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몸서리가 쳐지는 요즘,
퇴근할 때쯤 또다시 나의 앞길을 막는 천둥번개 같은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어머, 내가 이걸 이제 보고 결재를 해버렸네요. 회의에 없는 사람은 등록부와 달리 회의록 사인은 받을 필요가 없고...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앞으로는 이 문서는 어쩌고 저쩌고..."
올해 자신의 앞가림을 조금이라도 해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것 같은 관리자의 주 역할은
모든 사람들의 피곤과 노고와 한숨과 짜증, 분노를 맡고 있는 듯했다. 물론 본인은 모른 채.
내 옆자리 부장은 제2의 관리자처럼 비슷한 어투와 행동을 보이고 제 역할을 잊은 채 열심히 자신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나는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겠고,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열심히 일해보고 싶었고 가르쳐주는 걸
잘 따라가고 싶었고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일한 지 8년 차이지만 매년 일하는 건 새롭고 매일 예측 불가한 일들이 생성되는 사회생활에서 겸손은 필수이고 성장은 나에게 에너지와 자극제 역할을 하기에, 내 감정은 배제한 채 최선을 다해 참여하고 싶었다. 당연히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할 곳이고 공적으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선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올해 그게 무너졌다. MZ 세대를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며 꼰대 문화를 지양한다 자칭하는 같은 사무실 사람들은 사실상 위계질서를 따졌고, 나이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해 대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나의 일이 생겨 그걸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옆자리 부장은 관리자에게 휘둘려 판단력이 흐려졌고, 그로 인해 담당업무자인 나는 생각보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어제오늘 말이 다른 관리자는 이번 일의 잘못된 결과를 나의 탓으로 돌리려 와서 상처되는 말만 내뱉었고 부장은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 우리 부서의 일을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몹쓸 책임감에 부원의 힘듦은 헤아리지 못한 채 일을 밀고 나갔다. 그 뒤로 나는 모든 이들의 얼굴을 붉힐 만큼 내 감정을 얼굴에 다 드러낸 채 3주간 회사를 나갔고, 결국 부서의 분위기는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 그 누구 하나 나에게 말 거는 이가 없었으며 조금이라도 말을 걸려하면 나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3주 동안 생각하고 또 고민해 보았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이 생활에서 현명하게 내 생각을 잘 전달하되 감정은 잘 배제한 채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점이 무엇일지. 여러 영상이나 책을 참고해 보며 똑 부러지게 말을 잘 전달할 수 있되 상대방이 자신의 문제점을 기분 나쁘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결국 3주간의 서러움이 한방에 터져버린 날이 와버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노이로제를 느낄만한 벨소리가 울렸고 통보와 지시만 가득한 관리자의 말들을 들었다. 그 결과, 일일이 발로 뛰어 받은 결재사인판이 필요 없어졌고 누가 올리던 상관없다고 생각한 문서에 책임을 마치 나에게 다 전가하고 싶은 관리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이성을 갖춘 채 옆자리 부장에게 의문점을 갖고 질문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저의 생각은 이런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돌아오는 옆자리 부장의 말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전전긍긍한 그는 여전히 늘 똑같은 태도였고 결국 관리자와 다름없는 마인드를 내비쳤다.
"부장님의 생각은 결국 그게 맞다는 말씀이신 거죠? 근데 결국 정확히 뭐가 맞는지 답이 정해져 있지도 않는 이 과정을 왜 바꿔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장님이 말씀하시는 근거를 찾기 전, 관리자가 먼저 그 말을 하는 것에 대한 근거를 갖고 와서 저에게 말을 해야 되는 게 순서이지 않을까요? 뭐가 정답이 아닌 일에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그 근거를 찾아야 하고 결국은 그거대로 바꿔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뒤로 나는 3주간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들을 큰 목소리로 전달했다. 내가 가졌던 의문점과 해결해야 할 부분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타난 문제점 그리고 옆자리 부장 너의 잦은 부재와 무책임한 행동들 그리고 제대로 하지 못했던 역할들까지도 하나하나 짚어 전달했다. 대신 분노와 짜증, 답답함과 서러움 그리고 서운함 그 모든 것들은 최대한 전달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3주간 생각했던 잘못된 점들은 내 주관점이 되어버렸고 그렇기에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끊임없는 부장의 변명들을 칼방어하며 내 목소리를 높여갔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두 다리 뻗고 깊은 잠에 잘 수 있었다. 속 시원한 후련함을 느꼈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칭찬과 그 간의 서러움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며 잠에 들었다. 어떤 이는 말한다. 사회에서 그렇게 잘못된 모든 점들을 일일이 다 바꾸거나 그런 생각을 전달하기에는 힘들다고. 그냥 넘어가기에 바쁘고 스스로 삭이는 편이지 나처럼 말하지 않는다고. 나도 그 점을 알기에 3주를 버텼다. 다만, 나를 위해서 내 목소리를 내보았다. 그 사람들이 변하기를 기대한 것도 아니고 문제점이 바뀔 거라고 확신하지도 않지만 그저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리고 그걸 말할 수 있는 나라는 사람을 확인해 보려고.
이번 3-4월의 일들을 겪으며 확실히 배운 점은 사회에서 기대는 사치고 실망은 더 큰 사치라는 것과 그 안에서도 나는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늘 느끼는 점은 사회는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고 보석과도 같은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