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연구가 May 29. 2023

닭의 다리는 2개

인성을 합리화시키는 대단하지 않은 능력

부서원 한 명이 가져온 치킨박스와 피자박스에 신이 나 다 같이 모여 콜라도 따르고, 접시도 돌리며

먹을 준비를 했던 어느 날이었다. 야무지게 치킨 한 조각을 뜯어먹으며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던 중 너무 맛있었던 치킨 조각을 더 먹으려 박스를 보았다. 가지런히 놓여있던 다리 2조각이 사라졌다. 내 눈을 의심했고 방금까지 있었던 다리 2조각의 행방을 찾던 찰나, 부장 접시에 다리뼈 2개가 나란히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닐 수 도 있었던 일이라던가, 누군가에겐 그게 뭐 그리 충격적인 일인가라고 말할 수 있는 거겠지만, 사실 이건 큰일이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을 때
그 사람의 인성, 배려, 예의 모든 게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그게 맞는 것이었다. 치킨 조각 중 닭다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한국 사람이라면 예의상 닭다리 들기 전엔 "혹시 닭다리 드실 분?" 아니면 자기가 정말 먼저 먹고 싶다면 "혹시 닭다리 제가 한 개 먼저 먹어도 될까요?"라는 예의상의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이 부장은 외국 사람도 아닌 한국 사람. 대체 어디다가 인성과 배려, 기본적인 예의라는 걸 던져두고 온 것일까?


너무 황당한 나머지 나는 직접 대고 부장에게 말했다. 아니 어떻게 닭다리를 두 개 다 가져가서 드실 수 있냐고, 내 평생 오래 살진 않았지만 여태껏 살면서 치킨 닭다리를 혼자 두 개 다 드시는 분을 본 적이 없다. 등 아주 솔직하게 돌려 까기를 시전 했다. 부장은 당황했는지 자기도 두 개를 다 먹고 나서 아차 싶은 마음에 멍 때리고 있었다는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기의 흑역사와도 같은 인성부족 스토리를 들려주더니 이번엔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의 유형이 좋다는 둥 말도 안 되는 말로 행동을 합리화했다. 


부장의 말은 즉슨,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등 자기는 이런 스타일이며 예전부터 그래왔고 그래서 이게 좋다.라는 말이었다. 황당 그 잡채. 자신이 내뱉는 말로 '그래, 나 이렇게 커왔고 그래서 어쩔 거야?, 이게 난데?' 약간 이런 느낌을 줌과 동시에 그래서 이 행동은 괜찮고 좋은 편이라는 말로 주변을 합리화시키는 이 사람을 도대체 어디에 분리수거시켜야 하는 걸까? 이 사람의 인성부족 스토리 끝은 어디일까?


역시나 가 역시나였다. 올해를 겪으며 여러 사람을 조금씩 알아보고 다양한 가치관과 생각, 의견을 나눠보며 해마다 성장해 가는 요즘, 나는 정말 더 단단해지고 파워가 세져간다는 걸 느낀다. 부장 덕분에 나는 무례한 사람을 대하는 자세부터 무례하지 않지만 대놓고 돌려 깎는 말 전달법 등 다양한 방법을 터득하는 중이다. 정말 무던하게 성장하는 올 한 해가 즐겁고, 사람을 가려가며 현명하게 대하는 내 주관을 뚜렷하게 만들 생각에 지금의 스토리 작성 시간이 행복할 따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3주간의 묵혀진 서러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