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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연구가 Aug 01. 2023

케빈 엄마에 대하여

모성애 그리고 양육행동

익숙한 거랑 좋아하는 거랑은 달라.
엄마도 나한테 익숙하잖아.


  영화 '케빈에 대하여'란 영화가 나오고 얼마 안 돼 포스터에 대문짝만 한 배우 얼굴을 보고 큰 흥미를 느꼈다. 영화를 본 첫 느낌은 단순한 엄마와 아들 관계가 아닌, 사이코패스 같은 아들의 성향이었다. 매서운 눈빛과 일반 자녀와는 다른 모습의 아들, 케빈을 보며 저 엄마 힘들었겠다, 저 아들은 왜 저럴까? 가 먼저였다. 넘어가는 장면마다 소름 끼치는 사운드와 아들의 표정과 이상한 행동에 러닝타임은 정말 빠르게 갔다. 한번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봐도 내 눈엔 케빈은 이상한 아들이었다.


최근에 영화리뷰를 담은 채널에서 이 영화가 다시 등장했다.

주변 동료들과 그 영상을 보고 다양한 얘기를 나누었고 나는 다시 이 영화에 궁금증이 생겼다.


몇 년이 흘러 다시 본 이 영화 속 케빈과 엄마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단순한 엄마와 아들 관계가 아닌,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의 기승전결을 잘 드러낸 느낌이었다. 케빈의 엄마는 하룻밤의 열정으로 케빈을 가지게 되었고, 확 달라진 자신의 인생에 있어 케빈은 준비되지 않은 생명체였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영아의 케빈이 우는 행동부터 옹알옹알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 케빈까지,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름 자신이 낳은 아이를 받아들이려 노력한 것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모습은 회피한 채 원하는 행동만을 바랬던 엄마의 모습이 두드러졌다. 모성애는 누구나 다 생기는 것이 아니고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과 자녀를 나아도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 장면을 통해 잘 전달해 주었다. 또한, 주변 인물로 등장하는 케빈의 아빠 또한, 케빈을 가까이에서 바라봐주는 시간은 짧았고 모성애 없는 부인을 헤아려 주는 데는 열정이 없어 보였다. 결국 케빈은 사랑과 관심을 가장 크게 바랬던 대상, 엄마만을 남겨둔 채 마을 내 학생들과 아빠, 여동생을 모두 살해한다. 자신을 버리고 갈 수 없도록, 엄마의 관심이 자신에게만 쏠리도록.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했고 안타까웠고, 이상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엄마의 입장에서만 케빈을 바라봤다면, 다시 본 장면들에서는 케빈과 엄마, 아빠와의 전반적인 상황과 개개인의 입장이 보였다. 


부성애, 모성애 그리고 양육태도로 인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바움린드 학자는 애정과 통제로 기준을 나눠 네 가지의 부모 양육태도를 이론으로 남겼다. 방임적, 허용적, 독재적, 민주적인 태도로 인해 자녀의 행동특성은 제각기 달랐다. 그도 그런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정환경이라는 말에 결국은 부모의 언어특성, 양육행동 그리고 경제적 능력, 문제해결능력 등 다양한 것을 담고 있기에 그중 양육행동도 자녀에게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바움린드(Diana Baumrind) - 부모 양육태도&자녀 행동특성




케빈의 부모는 경제적 능력이 좋았지만, 자녀를 대하는 태도는 서툴렀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자녀를 덜컥 가진 케빈의 엄마는 케빈의 꾸준한 못난 행동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보였지만 다시 되묻지도 않을 만큼 애정과 통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바움린드 이론으로 보자면 방임적인 태도라 볼 수 있다. 케빈의 부모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살아가고 싶지만 낳은 자식에 대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렇기에 부모라는 의무감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 돼 안되면 어쩔 수 없다는 듯 무관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임적 양육 태도를 겪어오며 자란 자녀의 행동 특성으로는 우울과 분노, 그리고 반사회적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로빈후드 얘기를 좋아하던 케빈은 생일날 아버지에게 받은 활로 사람을 죽여 결국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영화에는 케빈이 성장하는 그 과정 속에서 자식이 원하는 부모, 부모가 원하는 자식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기에 우린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사이코패스로 자란 케빈에게도, 그렇게 자식을 기른 케빈 부모에게도 돌을 던질 수 없다는 것을. 결국 모성애는 자식을 가진 모든 부모에게 생기는 것은 아니며, 자식을 가지는 것에는 상상 그 이상의 책임과 역할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교도소에 수감된 지 몇 년이 흐른 후, 케빈은 묻는다. 이런 짓까지 한 나를 사랑하냐고. 그리고 엄마는 케빈에게 묻는다. 왜 그랬냐고. 

자식은 끝까지 부모에 대한 관심과 사랑, 애정을 바랐고, 부모는 끝까지 자신이 원한 자식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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