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성과 비현실성
제조업을 한 독일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인형, 생물 모형을 만들었다는 론 뮤익(Ron Mueck). 그의 전시를 다녀왔다. 전시장을 처음 들어서면 바로 나오는 그의 자화상(마스크 2)은 비현실적인 크기로 나의 시선을 압도했다. 실제크기의 4배라는 점이 놀라웠고, 뒷면의 텅 빈 마스크의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 더 놀라웠다. 이렇게 사람의 얼굴을 압도되는 크기로 본 순간, 새로운 시선과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얼굴이란 껍데기 속 우리는 어떤 자의식을 갖고 살아가는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SNS에서 슬쩍슬쩍 봐왔던 작품들을 실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중 <유령>, <젊은 연인>, <쇼핑하는 여인>에서 긴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유령>이란 작품에선 신체가 변화하는 사춘기 소녀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본인 스스로 이상하고, 어색하며 조금은 낯선 그런 감정이 소녀가 응시하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몸이 변화된 것을 들킨 것 같고, 소녀도 성인도 아닌 느낌이 얼굴에 다 나타난 듯한 이 감정을 나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작품 <젊은 연인> 속 연인은 서로가 붙어서 무언가를 얘기하는 모습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아닌, 그러면서도 남자가 여자의 손을 뒤로 잡는 것에서 느낄 수 있는 연인의 감정, 심각한 대화가 오고 가고 있는 듯한 두 남녀의 표정 등 흔히 연인에서 느껴지는 애매모호한 기류를 잘 느낄 수 있었다. 둘은 너무 사랑하고 애틋하면서도 심각한 대화를 오고 가며 서로의 다름을 맞춰 나가려는 것 같은 연인의 모습이었다.
아이를 가슴팍 쪽에 안고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쇼핑하는 여인> 은 정말 사실적이고 현대적인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여인은 양육과 가정 내 본인의 역할을 양손에 무겁게 들고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했다. 자녀를 기르는 여인의 비언어적인 표현을 통해 사회가 회피하고 있으며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엄마의 무게를 잘 표현해내고 있었다. 품 안의 아기는 여인에게 온전히 의지하고 있었고, 여인은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이 혼자 양손의 짐을 견뎌내고 있었다.
론 뮤익의 작품은 실제 크기를 다 무시하여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때론 거대하고, 때론 엄청 사실적이며, 세심하게 표현해 내었다. 작품 속 인물이 응시하고 있는 시선을 따라 감정을 떠올려보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적이고 비현실적인 작품을 통해 내 인생 속 내가 응시하고 있는 곳이 어디고,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게 되었다. 내가 무얼 볼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나의 감정은 결국 어떤 표정을 만들어 내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