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이 그린 물방울
몇 년 전 엄마와 보던 다큐에서 김창열 작가를 처음 보았다. 그는 끊임없이 물방울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외국을 돌아다니며 전시하였고, 꾸준히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몫을 다하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큐 속 그분의 모습을 보며 든 생각은 '왜 물방울에 빠자게 된 걸까, 물방울로 무얼 표현하고자 하는 걸까?' 정도의 의문점이었다. 거대한 물방울 그림이 화면에 비치는 순간, 그 궁금증들은 사라졌다. 저 그림을 꼭 직접 보고 싶다는 희망만 품게 되었다.
얼마 전 김창열 회고전(2025.08.22.~2025.12.21.)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품었던 희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왔다. 6, 7 전시실에는 작품들이 챕터별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었고, 8 전시실은 '작가의 방'으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엽서, 인터뷰,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상흔, 현상, 물방울, 회귀 이렇게 나눠진 챕터 속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전쟁이라는 격동기 시절을 겪으며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첫 번째 상흔 챕터는 시작했다. '제사'라는 제목인 작품들을 여럿 볼 수 있었고 그 속에서 전쟁의 상처를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띄는 건 뉴욕에서 전시했던 물방울 작품의 초기 단계가 기억에 남는다. 1970년대 초, 그가 그린 물방울 회화의 첫 여정은 생각보다 색이 다채로웠고, 신기한 모양을 띄고 있었다. 물방울의 시초가 저런 모습이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가 선보인 물방울 연작은 정말 현실적이었다. 그가 끊임없이 표현하고자 한 물방울은 표면적 이미지가 아닌, 격동기에서 겪은 상처, 슬픔 등을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그린 물방울은 한자 위에도 있었고, 영자 신문과 콜라주를 하기도 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끝도 없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보며 저 작품을 그렸던 다큐 속 김창열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어떤 생각을 하며 물방울을 그리는 것이 아닌, 어떤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물방울 그린다.'라고 인터뷰했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그림 위에 얹어진 물방울들은 말 그대로 정말 경이로웠다. 7 전시실 마지막에 김창열 작가의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물방울을 처음 봤던 그 순간의 경이로움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내가 물방울 연작을 통해 느낀 경이로움이 과연 그가 느꼈던 그 경이로움과 같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