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위로한다(포스트 코로나 시대 셀프 위로법)

프롤로그

by 글서

나에게서 나에게로의 연결고리를 찾다



컴퓨터 자판을 힘주어 꾹꾹 누르며 프롤로그를 적는다.

학창 시절 읽었던 그녀의 첫 작품은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의 꿈을 꾸었던 작가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노트에 연필로 꾹꾹 눌러 적으며 작가가 되는 모습을 희망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렇게 힘주어 꾹꾹 눌렀다고 적힌 《외딴방》의 한 부분을 나는 힘주어 여러 번 읽어 내렸다. 그렇게 난 어린 시절 화목하지 못했던 집안의 우울함을 그녀의 책을 읽으며 꾹꾹 눌렀다.


‘지금의 상황 때문에 우울한 것이 아니라 이 책 때문에 우울한 거야!’


그렇게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깊은 우울감에 충만하곤 했다. 설사 그녀의 작품 일부가 표절이었다 하더라도 그 시절 내겐 더없이 큰 위로를 주는 친구였다. 나의 어린 시절을 견디고 또 글로 승화하는 힘의 원천이 되어준 신경숙 작가에게 이 책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렇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이어진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과거가 쌓여 현재의 내가 되고 현재가 쌓여 미래의 나를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는 복잡하게 얽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복잡하게 얽힌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뿐이다. 줄곧 책만 읽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독서광인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하지만 실제의 난 자신만의 상상 속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 있었을 뿐이다. 상상 속 세상은 내 맘대로 꾸밀 수 있다. 그 안에서 현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다양한 나를 가지고 있다.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현대인의 가장 큰 특성으로 멀티 페르소나를 언급했다. 멀티 페르소나는 자아가 여러 개라는 뜻으로, 개인이 상황에 맞게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회식할 때의 나, 남자친구와 있을 때의 나, 혼자 있을 때의 나, 회사에서의 나는 모두 다른 모습이다. 이 중 진짜 나는 누구일까? 우린 다양한 상황에서 제각각 다른 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나는 ‘다른 사람도 알고 나도 아는 나’, ‘나는 모르고 다른 사람만 아는 나’, ‘ 다른 사람은 모르고 나만 아는 나’, ‘다른 사람도 나도 모르는 나’ 네 가지로 분류된다.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지 않는 ‘나’가 있다. 깊이 있는 비밀은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하고 홀로 간직한다. 그래서 진짜 나는 나밖에 알지 못하고, 깊이 있는 상처의 진정한 위로는 나만 할 수 있다.


이때 힘든 시절의 나와 보듬어주는 나의 시점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 힘든 일이 있었다면, 현재의 나를 과거로 보내 ‘과거의 나’를 위로한다. 지금 내 아이를 안아주듯이 따뜻하게 안아주고, ‘괜찮아!’라고 말하며, ‘사랑해!’라고 속삭인다. 지금의 내가 힘들다면, 어린 시절의 나와 미래의 나를 지금의 내 옆에 오게 한다. 그리고 안아준다. 그렇게 나를 보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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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이혼을 경험하며 나를 위로했던 방법을 적은 글이다. 이혼이나 사별을 경험한 이들을 추적 연구한 결과 평균수명이 5년 정도 줄었다는 논문을 본 적이 있다. 이혼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그 깊이의 아픔을 설명하기 힘들 정도의 상처를 받는다. 당시에는 친구나 가족, 지인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할 만큼의 상처가 생겼다. 견디기 힘들 정도의 정신적 데미지는 나를 수렁 안으로 빠뜨렸다. 보수적이던 내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었고, 현재 상황을 수용하기에 마음은 점점 척박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다. 책상에 앉아 에피소드 하나하나 쓰면서 내 마음을 보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인 여든 살의 나와 일곱 살의 내가 양쪽에 앉아서 마흔의 내 등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지금의 내게 그건(이혼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을 쓰고는 이혼 후 처음으로 대성통곡했다. 일곱 살의 난 이혼이라는 단어의 무게감, 사회 고정관념을 모르는 나이고, 여든 살의 난 이혼을 깊게 생각할 만큼 삶이 길게 남아있질 않았다. 두 가지 상황에서 벗어난 위로는 척박했던 내 마음을 조금씩 아물게 만들었다. 그 후 다른 사람의 위로가 귀에 들어왔다. 가족의 위로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고, 친구들에게 나의 슬픔을 말할 수 있었다.


내 삶의 어느 상처를 보듬어야 하는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연결고리에 관해 충분히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은 나뿐이다. 그 힘든 시간은 어린 시절일 수도 있고, 현재일 수도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가 내 힘든 시간을 선택하고 그 시간으로 나를 보내 힘들게 하는 원인을 찾아 연결고리를 끊고 자신을 보듬을 수 있길 바란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열렸다. 풍요로운 뷔페에 가서 먹고 싶은 음식을 편안하게 고르고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자유를 만끽하던 시절은 잠시 멈추었다. 대인관계가 활발하던 사람들도 잠시 멈추어야 하는 시대가 지금이다. 화상전화나 SNS가 대신해주기에 뭔가 부족하다. 가뜩이나 ‘혼밥’, ‘혼술’하던 우리에게 더없이 가혹하고 외로운 현실이다. 내가 이혼의 아픔을 위로했듯이 자신에게 필요한 그 누군가를 독자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