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난 마흔이 되어버린다

by 글서

드디어 감성에세이 <나는 나를 위로한다(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셀프 위로법)>이 발간되었습니다.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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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는 내가 서른이 되면 삶이 안정적으로 변할 거라 기대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되어있을 것이라고 나의 30대를 상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렵 봤던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30대 즈음 되면 모두 전문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30대가 되면 드라마의 주인공은 허구였음을 알게 된다. 어설펐던 20대를 지나 현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진짜 인생에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마흔이 되면….


그러다 마흔이 되면서 알아차리게 되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성공적인 삶이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 이것이 바로 살아짐이라는 것을…. 사는 것은 처음도 끝도 지금과 같은 연장선이라는 것을….


지금보다 나아짐이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


다만 나아감만이 있을 뿐….



그래서, 우린 40세를 불혹이라고 칭한다. 불혹(不惑)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는 마흔은 어쩌면 어 느 정도 현실적인 삶의 인정을 의미하리라….

뇌과학 연구 결과,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전두엽에 서 행복감을 느끼는 수치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정적인 감정의 느낌은 둔감해진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가 연령이 높아질수록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 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삶에 대해 내려놓게 되었음을 의미하 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마흔이 되었다.


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과목을 들은 적이 있다. 교수님의 강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면 그 과목명이 떠오르곤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에 치여 상처받고, 지친 나를 이제 생에서 어떻게 끌고 가야 할까?’


삶이 너무나 힘들었던 30대의 마지막 해 어느 날, 네 살배기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이었다. 공원을 걷다 문득 하늘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어릴 적,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가만히 하늘을 보던 때가 떠올랐다. 구름이 소리 없이 지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 시간을 참 좋아했다.


그렇게 나의 여섯 살 소녀 시절로 돌아가 본다.


소녀 옆에 지금의 내가 가만히 누워본다.


소녀가 보고 있는 구름을 가만히 바라본다.


가만히….


아래 있는 구름이 더 빨리 지나가고, 위에 있는 구름 이 더 천천히 지나가는 속도를 느껴본다. 그러다 갑자 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무엇이 중요한가?

일이 중요한가, 내가 중요한가? 다른 사람이 중요한가, 내가 중요한가?

나의 삶은 누구의 삶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 글은 신간도서 <나는 나를 위로한다(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셀프 위로법)>에서 발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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