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을 안고 있는 아이의 마음으로 꽃과 잎을 바라본다.

꽃봉오리는 내 마음의 방패

by 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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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


딸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간다. 언제나 나를 부르며 환한 웃음으로 달려와 가슴에 폭 안기는 아이다. 사랑스럽다.

“엄마!”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조심조심 걸어온다. 귀엽고 작은 손등 사이로 무언가 감싸져 있다.

“오늘 고추를 심었어요.”

선생님 말씀에 바라보니, 잎이 대여섯 개 달린 모종을 심은 화분을 들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조심조심 손으로 감싸며 걷는다.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첫째도 그랬다. 식목일 즈음 되면, 어린이집에서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작은 화분을 하나씩 보내온다. 완두콩도 있었고, 작은 꽃도 있었던 것 같다.

기꺼이 베란다 한 켠을 딸아이의 고추나무에 내어준다. 작고 통통한 손으로 화분을 조심조심 내려놓는다. 내려놓은 화분에는 딸아이의 사진과 이름이 붙어있는 팻말도 있다. 귀엽다.

“두 밤에 한 번씩 물을 줘야 해. 가우리가 줄 거야!”

제법 잘 알아듣고 온 모양이다. 그러려니 했다.


첫째는 몇 번 물을 주다 화분의 존재를 잊었다. 결국 식물들은 완두콩 한 알, 작은 꽃 한 번 피우고 첫째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둘째는 달랐다.


물을 주기 시작한 고추나무는 초여름에 꽃봉오리가 열렸다.


꽃봉오리는 딸의 통통한 손등마냥 야무져 보인다. 꽃봉오리가 한참 여물어 꽃이 핀다. 하지만, 꽃봉오리가 다섯 개나 피었는데도 고추는 열리지 않았다.

‘수정을 해주지 않았구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안한 마음이 화분으로 간다. 그렇게 열매 한번 못 열어보고 죽을 것만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는 꽃이 피었다며 2~3일에 한 번씩 잊지않고 물을 주기를 계속한다.


물을 주며 고춧잎을 통통한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준다. 그리고 사랑한다며 뽀뽀해준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꽃봉오리가 올라왔다. 이번엔 꽃봉오리 두 개뿐이다. 다물고 있는 잎이 제법 야무지다. 고추가 열릴 수 있도록 꽃은 화분과 꿀을 열심히 만든다.


그때까지 잎을 열어선 안 된다.

꽃봉오리는 최소한의 자기방어인 셈이다.


여린 꽃봉오리는 딸아이의 손등을 닮았다. 야무져 보이기도 하고 한없이 여려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꽃봉오리가 터진다. 꽃이 활짝 피었다. 이번에는 딸아이에게 꽃잎을 만져줘야 고추가 열린다고 알려준다. 작은 손가락으로 꽃잎이 떨어지지 않게 꽃을 만지작거린다. 노란색 꽃가루가 아이의 손가락에 묻어난다.


그렇게 첫 번째 고추가 열렸다. 매일매일 딸은 열매를 만지며 물을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고추는 빨갛게 익어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나무에 달려있었다. 그렇게 떨어진 고추가 건고추가 되었다. 바싹 마르기도 잘 말랐다. 화분 옆에 딸 아이의 소꿉장난 컵이 놓이고 건고추가 놓인다. 그 뒤로 어렵사리 고추 하나가 더 달린다.





아이의 바구니에

초록색 고추와

빨간색 고추가

하나씩 나란히 있다.








어린 시절의 나


“그러니까 금방 양말이 어디 갔냐고?”

엄마는 언니와 나, 남동생까지 삼형제를 불러놓고 채근한다. 남동생이 퉁명스럽게 말한다.

“나는 안 가져갔어!”

“나도 아니야!”

언니도 아니란다. 엄마가 나를 바라본다.

“나도 안 가져갔어!”

분명 안 가져갔다는데, 한 박자 늦게 말하는 것이 수상해 보였는지 엄마가 잠시 내 눈을 응시하고 다시 묻는다.

“거짓말하면 혼나! 정말 네가 숨긴 것 아니야?”

한 번 더 물어본 것이 화가 나는지, 아니면 거짓말이 드러날까 봐 겁이 나는지 여덟 살의 나는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한다.


“정말 이번에는 내가 숨긴 것 아니야!”


왜 그럴까? 몰래 숨고, 몰래 숨기는 것이 재미있다. 그즈음의 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자꾸 숨기는 버릇이 있었다. 엄마도 그런 나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은 옥상에 숨어 숙제한다는 것이 너무 오래 있어 해가 져버렸다. 엄마가 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숨었다가 나갈 타이밍을 놓쳐버린다. 해가 지고 급기야 엄마는 어떤 놈이 잡아 갔나 싶어 울면서 나를 찾기 시작한다. 옥상에 올라온 엄마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끔찍한 느낌이 생각난다. 하지만, 거짓말은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다. 숨고, 숨기는 과정에서 내 잘못을 감추려다 보니 어쩌다 자꾸 상황이 그렇게 되는 것뿐이다. 거짓말은 하고 나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거기다 거짓말을 잘하지도 못한다.


이번에야말로 절대로 들켜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 내 말은 못 믿어! 내가 숨긴 게 아니라고!”

엄마는 언니에게 옷을 입히고 계셨다. 옷과 티셔츠, 양말까지 모두 꺼내놓고 차례대로 입히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 있던 양말이 없어진 것이다. 엄마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여섯 가족의 물건 하나하나가 장롱 어느 서랍, 어느 쪽에 있는지 모두 기억하신다. 양말을 꺼내놓은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누구든 다음에 또 그러면 정말 혼난다.”


휴~ 다행이다. 오늘은 무사히 넘어갔다.


마흔의 나를 여덟 살의 나에게 보낸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함께 느껴본다. 고작 여덟 살인 나도 나를 지켜내기 위해서 이렇게 고군분투했구나! 지금의 나는 나를 어떻게 지켜내고 있는가?


여덟 살 내가 불혹인 내 마음의 상처를 가만히 어루만진다.


어릴 적 거짓말이 익숙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의 나를 지켜내는 것에도 능숙하지 못했구나! 가만히 그리고 천천히 상처를 쓸어본다.







내 마음의 꽃잎에

힘을 주어

닫아본다.







꽃봉오리는 최소한의 자기방어


자기방어는 충동이나 감정으로 일어나는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을 하는 정신적 속성이다.

프로이트S. Freud에 따르면 자기방어는 갈등을 일으키는 충동들 간의 타협, 혹은 좌절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내적 갈등과 불안을 감소시키는 정신적 조작이다.

어린 시절, 나를 방어하려고 어설픈 거짓말을 했듯이 지금의 나를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다.




이 글은 신간도서 <나는 나를 위로한다(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셀프위로법)>에서 발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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