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꽃봉오리를 피우다

꽃잎을 여는 것은 자기통제의 시작

by 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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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나


어릴 적 기억은 유치원부터 시작된다. 두 살 터울인 언니가 학교 가는 것을 보고 따라가겠다 했단다. 덕분에 다섯 살 때부터 유치원을 2년이나 다닐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다 신기하다.


그래서 다섯 살의 난 무엇이든지 하염없이, 가만히, 그대로, 멈춰 서서 계속해서 바라본다.


작은 꽃은 작은 꽃대로 큰 꽃은 큰 꽃대로 예쁘다기보다 신기하다. 꽃에 꿀벌이 날아와서 앉는 것도 신기하고 꽃 주변에 꽃가루가 흩어져 있는 것도 이상하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탐구하는 것처럼 무한대의 관찰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렇게 바라보던 꽃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꽃이 분꽃과 사루비아(샐비어)이다.

분꽃은 따서 뒷부분을 쭉 빼면 귀걸이처럼 늘어진다. 반팔 티셔츠에 아래는 팬티만 입은 네 살배기 남동생이 아빠의 큰 슬리퍼를 찍찍 끌고 나와, 분꽃을 따고 있는 내 옆에 선다. 남동생 귀에 분꽃을 걸어주고 머리를 묶어준다. 남동생과 ‘까르르’ 웃는다.


포근한 햇살이 남동생의 눈동자에 반사된다.


사루비아는 따서 뒷부분을 쪽쪽 빨아 먹으면 꽃향기와 함께 달달한 맛이 난다. 꿀 따 먹는다며 마당에 있는 사루비아 나무에 팬티 바람의 남동생과 같이 매달린다.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엉덩이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 시절 마당의 팬티 바람 남동생과 어린 나 사이에 마흔의 나도 같이 서본다.


주황색 사루비아 꽃망울에 입을 대고 쪽 빨아본다. 달콤함이 입안을 감싼다. 풀향기가 코에 배어들고 따뜻한 햇살이 스며들어 몸이 따뜻해진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다. 남동생과 나의 웃는 얼굴이 햇볕 사이로 사진처럼 배어든다.


유치원 화단을 걷던 기억, 남동생과 함께 마당에 있었던 기억을 되새기며 알게 된다.


다섯 살, 내 기억의 꽃은 모두 활짝 피어있다.


활짝 피어 꿀과 꽃가루가 가득한 꽃이 내 마음속 기억의 꽃이다. 영글기 전, 꽃봉오리가 여린 꽃잎 한 장 한 장의 힘을 모아 꽃가루와 꿀을 사수한다.


꽃봉오리는 식물이 가진 최대한의 자기방어다.


그렇게 꽃가루가 영글어지고, 꿀이 차기 전까지 식물은 에너지를 최대한 높이며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준비를 마치면, 비로소 꽃잎은 다물던 잎에 힘을 뺀다.


내 것인 꿀을 놓아주고, 또 다른 나인 꽃가루를 성장 시키기 위해서….








사루비아의

달콤하고 향긋한

꿀맛을 느껴본다.










현재의 나


이상하다. 인생의 반을 향해 걷고 있는 이 시점의 내가 느끼기에 인생은 식물의 꽃봉오리와는 반대로 진행되는 것 같다. 20대 시절 꽃잎을 활짝 열고 사람을 대하다가 미처 영글지 않은 꽃가루와 꿀을 뺏기는 일을 경험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내 마음의 꽃은 점점 꽃잎을 움츠리게 된다.


마음의 꽃잎은 나이가 들수록 더 굳게 닫힌다.


그렇게 닫힌 내 마음 안에 이제 꽃가루와 꿀이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하고 산다. 내 마음의 꽃가루와 꿀은 나도 모르게 영글어졌을까? 남동생의 귀에 분꽃을 걸어주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보면, 활짝 핀 분꽃처럼 내 마음의 꽃잎에 잠깐이나마 힘을 뺄 수 있을까?


이제 와 마흔의 내가 잊고 있던 마음의 꽃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의

꽃잎을

활짝 열어볼까?










꽃잎을 여는 것은 자기통제의 시작


자기통제는 자기가 바라는 이상·가치·도덕·사회적 기대 등을 얻기 위해 자신의 내적인 상태와 과정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상처받아 힘이 들어간 내 마음의 힘을 뺀다. 그렇게 마음의 통제를 시작할 수 있다.




이 글은 신간도서 <나는 나를 위로한다(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셀프위로법)>에서 발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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