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기 힘들어

딸에게 남기는 부자의 태도(2)

by 사투리감별사

계획에 없던 이사를 하는 바람에 다들 고생이 많다. 4년 전에 찍은 도장 때문에 이 고생들을 하네. 자동차가 고장 나면 학교도 학원도 못 가니 원.


집 근처 중학교로 전학 안 하고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졸업까지 하겠다고 해서 아빠가 참 미안하고 고맙다. 아직 2년이나 더 다녀야 되는데도 말이야.


학교까지 왕복 80분 거리를 하루 세 번씩이나 (등교 왕복, 하교 왕복, 등하원 왕복) 운전하는 네 엄마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하겠니. 공부도 힘든데 차 안에서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니. 아침마다 눈을 못 뜨는 너를 보면 참 안쓰럽다. 너는 아빠를 닮아서 아침잠도 많은데 말이야.


아빠도 왕복 3시간을 지하철과 버스에서 시달리고 있으니 힘이 좀 드는구나. 특히 퇴근 시간에는 매번 꾸벅꾸벅 조는데 자리가 없을 때는 서서도 졸 수 있게 됐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아.


그런데 아빠는 요즘 아침 기상이 힘들지 않아. 아빠는 할아버지를 닮고, 너는 아빠를 닮아 우리는 아침잠이 많은 가족인데 말이지. 아빠 기억에 네 할아버지는 부지런한 분이 아니었어. 주말이나 방학 때 다른 가족들이 아침을 먹으면 네 할아버지는 주무시고 계셨어. 늦게서야 독상을 받으시고.


아빠도 잠이 많기로 유명했다. 고등학생 때는 별명이 '잠 OO (OO은 이름)'이었고, 군대에서는'Sleepy'였다. 명절에 처가에 가면 아빠도 남들 아침 먹을 시간에 늦잠을 잤지. 그럴 때면 이제 두세 살 된 네 사촌들이 아빠를 흔들어 깨웠어. 조막만 한 손으로 "이모부 이너나 (일어나)" 하면서.


직장 생활 초기에는 아침 기상이 너무나 힘들었다.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나고, 하기 싫은 일을 했었거든. 알람이 울리고 바로바로 일어난 기억이 없어. 주말에는 밀린 잠을 보충한다며 12시가 다 돼서야 일어나고.


이랬던 아빠가 아침 기상이 힘들지 않게 된 비결이 뭔지 알아? 꼭 나이 들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첫 번째는 생각을 가볍게 하기로 했어.


아빠는 이걸 '오포 (5가지 포기)'라고 부르기로 했어. 요즘 힘든 문제가 크게 다섯 가지더라고. 네 성적 문제, 네 엄마 문제, 직장 문제, 지금 사는 집 문제, 재테크 문제,


이 문제들이 누구 때문에 일어난 건지, 어떻게 해결할 건지 걱정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방법이야. 생각을 이런 식으로 바꾸는 거야. 졸업만 하자 (네 성적), 같이만 살자 (네 엄마), 출근만 하자 (직장), 꿀잠만 자자 (이 집), 똔똔만 하자 (재테크). 이렇게.


이렇게 생각만 바꿨을 뿐인데 어깨에 짐이 한결 가벼워졌어. 감정의 기복도 줄어들고. 그래서 요즘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이 생각부터 드는 거야. ' 아! 출근만 하면 되지?' 그럼 몸도 가벼워져서 침대에서 쉽게 일으켜져. 하루의 시작이 쉬워지는 거야.


두 번째는 나만의 규칙을 세우고 있어.


아빠는 1년 전에 32년간 피웠던 담배를 끊었잖아. 담배를 끊는 것도 생활의 규칙을 바꾸는 행위야.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담배 피우고 책상에 앉던 일상의 규칙을 조금만 바꾸는 거야. 밥 먹고 조금 걷고 책상에 앉는 순서로. 아빠가 해오던 규칙에서 커피와 담배를 걷어냈더니 아침 기상이 훨씬 쉬워졌어. 전날 잠자리도 쉽게 들고. 나만의 규칙이 중요해.


또 올해부터 근력 운동을 시작했어. 주 3회 1시간씩. 어른들은 보통 40세부터 근육량이 줄어들기 시작해서 근력 운동을 해야만 그나마 근육량이 유지 돼. 근육량이 유지되어야 살도 덜 찌고 덜 피곤하거든. 작년까지는 유산소 운동만 했는데 근력 운동을 추가했더니 항상 몸이 기분 좋게 뻐근해. 밤에 잘 자고 아침 기상도 쉬워지고.


올해부터 시작한 것이 또 있어. 지금하고 있는 글쓰기. 아빠가 10여 년 후에 퇴직하면 작가로 활동해 보려고 미리 연습 삼아 시작한 거야. 주중에는 피곤해서 못하고 오늘처럼 주말에야 글을 쓰는데 글쓰기 덕분에 주말 규칙이 잡혔어. 아침 먹고 동네 한 바퀴 돌고 도서관에 가서 카톡 보고 네이버 보고 조금 졸다가 일어나서 브런치 쓰기. 주말에도 규칙이 생기니까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고일어나게 돼.


우리가 그나마 다행인 건 24개월만 채우면 이 집과는 영영 이별할 수 있잖아. 벌써 5개월이 다 되어 가니 이제 19개월만 남았다.


생각을 가볍게 하고 너만의 규칙을 세워봐.

아침이 조금씩 달라질 거야. 하루가 달라질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