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쓰는 글에 힘이 있을까?

사이토 다카시의 《글쓰기의 힘》을 읽고 나서

by homebody

지금으로부터 상당히 여러(무척 많은) 해를 거슬러 올라가 내가 열두 살이었던 시절 나는 글쓰기를 아주 좋아하는 초딩이었다. 친구도 많지 않았고, 많은 친구를 원하지도 않았기에(진짜임) 방과 후에는 대개 책을 읽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어머니는 항상 바쁘셨지만 가끔 학교에서 교실 하나를 비우고 청소년 권장 도서를 판매하는 행사를 진행할 때면 빠짐없이 오셔서 책을 한 아름씩 사 주셨다. 입력(input)이 있어서인지 나는 대학교를 포함한 학창 시절 내내 글을 쓰는 것(output)이 도무지 어렵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상 사회에 나와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하게 된 뒤부터는 글쓰기가 어렵고, 지겹고, 하기 싫고, 밉고, 확신 없고, 부끄러워졌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 같은 것이 생겨서일 것이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글을 잘 쓰는 것이 달란트(talent)로 취급 받던 시절은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끝나 버렸다는 기분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고, 나는 정말로 글쓰기 행위가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다수자들 속에 살다 보니, 그 안에서 홀로 중요성을 외치다가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하고, 우선순위가 높고, 지엽적이지 않은 것이 있어. 글쓰기는 중요하지 않으니 나중에'라는 무언의 냉담들과 맞서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지쳐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게다가 이젠 ChatGPT를 필두로 한 AI들에게 어떤 글을 써 달라고 적절하게만 요구하면 멋진 글 한 편이 뚝딱 나오는 시대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멀리했다. '멀리하다'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친근하게 사귀지 아니라고 피하거나 간격을 두다'라고 한다. 정말로 글쓰기를 멀리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점심을 먹다가 갑작스럽게 글쓰기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다. K 선임님 입에서 글쓰기 모임이라는 말이 나오던 순간 '글쓰기 미워. 글쓰기 싫어. 글쓰기는 쓸모없고 간지도 안 나'라고 되뇌던 내 마음이 벌렁벌렁일렁일렁벌렁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입력이 있었기에 출력이 있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독후감을 쓰기로 결정했다. 첫 책을 본새 나는 것으로 고르고 싶었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의 신간 《넥서스》를 펼쳤다. 어떤 입력도 없었다. 책은 잘못이 없고, 모든 것은 내 탓이지만 아무튼 우리 글쓰기 모임의 규칙은 2주에 한 편씩 글을 작성하는 것이므로 그 책은 적절하지 않았다. 규칙을 어길 시 5만 원이라는 큰 액수의 벌금이 있고, 나에겐 5만 원이 없지만 《넥서스》는 684페이지, 1044g이기 때문이다. 하드웨어가 그렇다는 것이고, 소프트웨어는 더욱 엄청날 것이다. 나는 2주의 기한을 맞출 수 있으면서도, 이 글쓰기 모임의 콘셉트에도 부합할 수 있는 유익한 책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회사 도서관에서 그 책을 찾았다. 바로 사이토 다카시의 《글쓰기의 힘》이다.

사이토 다카시, 《글쓰기의 힘》, 데이원, 2024. 8.

읽지 않는 시대에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사이토 다카시는 도쿄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의 학력과 이력에서 강하게 풍기는 인문학의 냄새가 마음에 들었다. 저서 목록을 살펴봤는데 주로 공부, 글쓰기, 독서, 철학, 인생에 대한 자기계발서였고,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거의 자기계발서계의 히가시노 게이고 같았다. 저서 목록 중 《메모의 발견》과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언젠가 내가 읽은 적(또는 읽다가 중단한 적)이 있는 익숙한 책이었다. 그때는 저자가 누구인지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글로 읽은 바를 정리하려고 하니 저자나 책에 대해 좀더 조사하게 되고, 저자가 책에서 한 말이 어떠한 경험이나 배경에서 나온 것일지 유추하거나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읽은 것에 대해 어떤 것이든 기록해 두려 할 때 진짜 내 것이 된다고 하는가 보다.

《글쓰기의 힘》의 뒷표지에는 ‘AI가 각종 문서를 대신 쓰고, 심지어 잘 쓰기까지 하는 오늘날, 우리가 직접 글을 쓰는 경험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라고 쓰여 있다. ChatGPT에게 직업을 빼앗길까봐 매일 전전긍긍 노심초사 좌불안석하는 나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문구였다. 이 책은 《사이토 다카시의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의 개정 증보판이다. 사이토 다카시는 구판을 출간한 2004년과는 확연히 달라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별다른 노력 없이 수준 높은 글을 완성할 수 있는 작금의 상황에 직접 글을 쓰는 힘을 익혀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구성력, 둘째는 머리의 끈기력, 셋째는 자기 형성이다.


구성력이란 하얀 종이 위에 지금까지 쌓은 지식이나 수집한 정보를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재구축하는 힘이다. 이 능력은 타인을 이해시키거나 타협해야 하는 일이 빈번히 필요한 사회 생활에서 자신을 지키는 힘이 되어 주며, 심지어는 AI에 무언가를 의뢰할 때도 더 만족스러운 답을 얻으려면 내용을 알기 쉽게 구성하여 질문하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함을 짚으며 구성력을 강조한다. 또한 글을 쓰는 행위는 다수의 지적 활동 중에서도 가장 고차원적인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문장 구성력에 대한 자신감은 지적 활동 전체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두 번째로 글쓰기는 엄청난 지적 강인함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이를 반복 훈련함으로써 쉽게 단념하지 않는 끈기가 몸에 배며, 지적 강인함이 심적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AI가 진화했다고 하여 글을 쓰는 근력 훈련을 멈춘다면 지적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계속 생각하는’ 작업을 방임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긴 글을 읽고 음미하며 생각하기 보다는 릴스, 숏츠, 틱톡과 같이 빠르고 짧은 동영상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작금의 세태를 예로 들며, 스스로 사고하기 보다 외부 자극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오늘날 한 주제에 대해 수개월 내내 생각하고, 매일 글을 작성하는 작업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성장시키는 귀중한 경험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글을 쓰는 힘을 익혀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자기 형성이다. 인간은 경험할 때 성장하며, 경험을 글로 쓰는 작업에서 한 번 더 그 경험을 인식하게 되어 의미가 확실히 굳어지고 진짜 경험이 된다고 말한다. 쓰는 것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신체를 이용하여 내면의 모호한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행위이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현대의 교육이나 사회에서 매주 중시하는 능력이다. 이 책에 따르면 글쓰기로 얻게 되는 자기 형성이란 다양한 체험을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마주하여 스타일을 구축해 가는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과 마주하고 자신을 형성하여 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스타일, 즉 문체가 형성되는 과정은 자기 형성의 과정 그 자체라고 말한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는 구구절절 맞는 말이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했지만 기술만능주의, 이과우월주의, 인문학무용론, 문과찐따론에 이미 찌들 대로 찌들어버린 이 세계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인지에 대한 의문점은 여전히 슬프고 무력하게 남아 있었다. 여전히 그들(나쁜 사람들)은 ‘그래서 그게 뭐가 중요해?’라고 할 것 같았다.


쓰는 힘은 구축하는 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나에게 유익하고 흥미로웠던 점은 ‘구축’에 대해 책 전체에서 거듭 강조하고 이를 자세히 설명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글쓰기는 즉흥적으로 그 자리에서 물 흐르듯 쓰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 작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구상한 것을 형태로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머릿속에서 구상한 소재를 꼼꼼하게 메모하고, 여기에서 키워드를 골라 쓰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해야 한다. 소재가 명확하지 않고 구체적이지 않으면 내용이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읽히는 글은 절대 쓸 수 없다.


메모를 통해 쓰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하였다면 이를 이용해 개요를 만든다. 개요는 쓰기 전 단계에서 구성이나 내용에 들어갈 항목을 정리한 것이다. 개요를 작성하면 전체적인 내용과 흐름이 명확해지며, 글 전체를 내다보고 다음은 어디에 살을 붙이면 될지가 한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논리의 등급을 틀리지 않는 것이다. 등급이 높은 순서대로 장을 구성하고, 절을 구성하고, 항목을 구성하여 분류하고, 장은 1, 2, 3으로 나누고 1장을 다시 ①, ②, ③절로, ①절을 다시 (1), (2), (3) 항목으로 나눈다. 이때 무엇이 장이고, 무엇이 절이며, 무엇이 항목인지 트리 모양의 대소 구조를 틀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디와 어디가 같은 수준인지, 어디가 중요한지와 같은 체계를 대략 파악하는 것이 구축력이다.


이 책에서도 계속 말하는 것이지만 이 구축력은 단지 글을 쓸 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글쓰기를 통해 훈련한 구축력은 1:1 대화를 할 때도, 1:다(多)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필요하고, 어떤 사안을 파악하여 자신의 시각을 정하고, 생각을 정리할 때도 필요한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는 ‘구축’에 대해서만 다루었지만 이 책은 사고력을 기르는 방법, 독서법, 인용법, 독창적인 문장을 쓰는 법과 문체를 다듬어 나가는 방법까지 글을 잘 쓰기 위한 다양한 팁을 제시하고 있다. 시중에 글쓰기에 대한 워낙 많은 자기계발서가 나와 있기 때문에 그들과 겹치는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글쓰기 공부를 처음 시작해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 주고, 나처럼 사실은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글쓰기를 멀리해 온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동기부여와 반성의 시간을 마련해 주기에는 충분한 책이었다. 동기를 부여함과 동시에, 글쓰기의 힘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멀리해 온 스스로를 반성하게 한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문장의 질은 독서 체험이나 인생 경험, 재능 등을 포함한 그 사람의 종합적인 능력과 연관이 있다. 갑자기 높아지지도 갑자기 바뀌지도 않는다. 질을 높이고 나서 양으로 갈 게 아니라, 양을 소화함으로써 질을 높인다고 생각하자. – p42


개인의 체험은 당사자에게는 분명 가치 있지만, 그것을 타인이 읽을 가치가 있는 글로 정착시키려면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고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타인을 대상으로 쓰는 글과 자신을 대상으로 쓰는 글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중략) 사람들이 그 글을 읽을 때 재미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힘, 문장의 매력, 개성 등이 생명력이다. 좋은 소설이나 에세이에는 생명력이 있다. 이 생명력은 문체에서 생겨난다. – p193~194


완독 후 반납하러 가는 길에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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