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소설가의 반짝이는 에세이를 읽는 마음

장류진,《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을 읽고 나서

by homebody
장류진,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오리지널스, 2025. 2.


어느 날 문득 나는 공허한 기분이 들 때마다 나도 모르게 교보문고 앱에 접속해 '장류진'을 검색하는 나를 발견했고, 그 오랜 습관을 발견했을 때 '어머 나 이 작가 좋아하나 봐 어머어머...' 하고 생각했다. 그 사실을 의식하기 전에는 그의 책을 사 모으면서도, 누군가에게 책 선물을 할 때면 주저 없이 그의 첫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 2019. 10.)을 고르면서도 내가 이 작가를 이토록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 이 책,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의 출간 소식도 어느 날 갑자기 이 ‘습관적 장류진 검색 행위’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심지어 예쁘게 생기기까지 한 이 책이 제목 앞에 '예약 판매'를 걸고 하도 많이 검색해서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검색 결과 목록 상단에 자리 잡고 있었다. 뉴페이스를 보고 나는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즉시 바로 빠르게 결제를 진행했고, 책이 오기만을 아기다리고기다렸다.


나의 '장류진 콜렉숀'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은 장류진 작가의 첫 에세이로, 작가가 15년 전 교환학생 신분으로 6개월 간 핀란드의 ‘쿠오피오’에 머물 때 함께한 친구 ‘예진’과 10일 동안 다시 핀란드로 리유니언 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담았다. 나는 자라면서부터 누군가의 친구가 되고 싶다는 느낌을 가져 본 적이 거의 없다. 대개 외향인 친구들에게 간택되어 그들의 ‘I’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두 친구의 관계,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과 함께 만든 기억, 서로를 아끼고 귀여워하는 마음들이 너무 예쁘고, 부럽고, 질투 나고, 샘나서 원통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나에게도 ‘류진’과 ‘예진’의 관계와 같은 친구들이 있다. 그냥 그랬다는 것이고, 그럴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 상대의 마음이 ‘들린다’고 표현할 수 있고, 상대가 자신의 거울 같다고 느끼며, 상대와 있으면 스스로가 정상 같이 느껴진다는 이 관계가 보기에 무척 좋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여행은 두 사람이 15년 전 머물렀던 ‘쿠오피오’에서 시작되어 ‘탐페레’를 지나 ‘헬싱키’로 이어진다. 이들이 여행에서 보고, 느끼고, 즐기는 것들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도 틀림없이 핀란드를 좋아하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핀란드에 대해 북유럽 국가라는 것, 수도가 헬싱키라는 것, 그들의 교육이 평등을 추구하고 경쟁을 배제하며, 교육 기회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무상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나는 이 사실을 등록금을 내고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육학 수업에서 배웠다), 그리고 내 세대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핀란드인은 자기 전에 자일리톨 껌을 씹는다.’ 정도의 정보만 알고 있었을 뿐, 별다른 정보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작가의 애정이 묻어나는 이 나라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를 읽으면서, 나는 <패딩턴 1>을 보며 런던을 좋아하게 되었던 느낌을 다시 경험했다. 여기에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남겨 본다.


핀란드인들은 다른 남유럽이나 서유럽 사람들 혹은 미국 사람들처럼 길에서 만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반갑게 인사하지 않고, 스몰 토크 같은 것도 하지 않고, 좀처럼 웃지도 않는 성향인 데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늘 개인 공간을 확보해주어야 하는 내향적 성향이라는 사실과, 그러한 성향에서 비롯된 여러 상황에 대한 우스갯소리들이었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 외출을 하려는데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으면 현관문 앞에 숨죽이고 있다가 엘리베이터가 떠난 다음에야 집 밖을 나선다든지, 좌석버스에 탔는데 모든 2인 좌석에 한 명씩 앉아 있고 내가 반드시 누군가의 옆자리에 앉아야 하는 상황에서의 난감함이라든지, 쇼핑하다 우연히 만난 지인과 실수로 인사하기라도 했다가는 쇼핑하는 내내 그를 피해 다녀야 하는 불상사에 처한다는 식의 고충 등. 이런 내용만 담은 『핀란드인의 악몽』이라는 핀란드 작가의 그림책이 시리즈로 있을 정도다. – p89~90

나랑 이 나라 국민들. 잘 맞을 것 같다.


핀란드에는 ‘만인의 권리’라고 하는 개념이 있다. 일종의 관습법인데, 핀란드에 거주하는 사람이든 방문한 사람이든 누구나 사유지를 포함한 모든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는 권리로, 핀란드 ‘신뢰 사회’의 상징이기도 하다. 핀란드의 국토는 75퍼센트가 숲, 10퍼센트가 호수와 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누구나 자연에서는 소유주의 허가 없이도 야생 열매, 버섯, 꽃을 채집할 수 있다. 누구나 캠프를 세워 야영할 수도 있고, 자유로이 걸어서 사유지를 통과해도 되고 자전거나 말을 타고 다닐 수 있다. 심지어는 스키를 탈 수도 있다. (중략) 물론 너무 어리거나 번식기에 있는 동물과 새를 방해하면 안 된다거나, 함정과 그물, 릴과 미끼를 이용한 낚시는 안 된다거나, 타인의 사생활을 침범하거나 불을 피우거나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거나 하는, 선을 넘는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역시 함께 마련되어 있다. – p105

쩐다...


'오디'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준비한 100살 생일 선물’로 불린다고 했다. 세상에, 나는 이 수식어만으로도 벌써 오디에 반해버릴 것만 같았다. 이러한 별명이 붙은 이유는 오디가 핀란드 독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설립된 도심 한복판의 공공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지 100주년이 되는 딱 하루 전날인 2018년 12월 5일 개관한 이 도서관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고, 모두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도심 속 공간’을 모토로 건축 디자인 및 설계부터 이름까지 모두 시민 공모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 p320~321

질투난다…


‘하이퍼리얼리즘 소설가’라고 불리는 저자의 작품들은 현재의 2030 세대에게 마치 자기 자신 또는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읽힌다. 내가 장류진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다. 작품 속 상황이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고, 인물들의 대사, 생각의 전개, 묘사 같은 것들이 너무도 생생하기가 그지없다. 문장은 간결하고, 유려하고, 재치 있다. 그래서인지 쉽게 읽힌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며 ‘이런 글은 나도 쓸 수 있겠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담컨대 그들은 절대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쉽게 읽히는 글을 쓰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에 현실을 핍진하게 담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역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소설들처럼, 이 에세이의 문장들도 재치 있고 쉽게 읽히는 탓에 남은 페이지가 빠른 속도로 줄었고,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실제로 내가 여행할 때 느끼는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계획된 일정을 소화하며 행복한 하루를 꽉꽉 채워 보내고 있지만, 자꾸만 남은 시간이 줄어들어 여행을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아쉬운 마음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두 사람의 여행을 나도 함께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책의 곳곳에서 작가의 전작 <탐페레 공항>이나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가 탄생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나, 작가가 작중에서 한 초콜릿의 맛 묘사는 어디로부터 왔는지와 같은 소소한 이야기도 볼 수 있었는데, 나 같은 오타쿠에겐 마치 보너스 같았다. 쿠키 영상 같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정말이지 혼자 있을 때는 아무 소리도 내질 않는 사람이고, 혼잣말을 하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적막이 흐르는 방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 그것도 꽤 자주 그랬다.


앞으로도 ‘습관적 장류진 검색 행위’를 지속하며 다음 작품을 기다릴 것 같다.


책이 예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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