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 아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혜 Nov 01. 2024

(10) 엄마가 되다

큰 아이를 낳았다.

차도, 돈도 없던 우리는 3일 만에 구급차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아이를 안고, 기숙사 친구들에게 자랑하러 달려갔다. 통증도 붓기도 그대로 짊어진채 나는 추운 바람은 맞으며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한 걸음 한 걸음 어그적거리며 걸었다. 눈이 잔뜩 온 1월이었다.      


  나에게 아이는 선물이었다. 실의에 빠져있던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 아이와는 마음이 연결되어 있었다. 서로 눈을 마주칠 수 있었고, 내가 이야기하면 아이는 반응했다. 유모차를 끌고 마트에 갈 때도, 내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있었다. 함께 꽃을 보면서 산책하고, 느끼고, 놀이도 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아이는 웃었다. 나도 웃었다. 신학공부를 해야 하는 남편 대신 나는 밤마다 네시간 세탁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남편이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으로 우리 식구들 생활비를 해결해주는 것이 좋았다. 출산과 양육을 하면서 밤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함께 가정을 세워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무뚝뚝한 영국 사람들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따뜻한 이들이 생겼다. 세탁소 아르바이트 담당자 로위나는 나의 영어 수준에 맞춰 대화해 주었고 매년 큰 딸 생일에 직접 사흘씩 정성을 다해 생일 케이크도 만들어 주었다. 딸에게는 “한국에는 한국 할머니지? 영국에는 나, 영국 할머니가 있어.”라며 예쁜 머리 방울로 머리도 묶어 주었다. 할머니를 모르는 아이에게 따뜻한 할머니의 사랑을 알게 해준 사람이었다. 우리 모녀의 무엇이 로위나의 마음을 흔든 것일까…    

   

  남편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어했고, 친구들과 같이 스터디동아리에 참여하고 싶어하기도 했다. 남편이 그토록 하고 싶어했던 것들이기에 나머지(장보기, 양육, 저녁아르바이트 등)는 내가 해내야 했다.  마트는 걸어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나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매 주마다 장을 봤다. 이동거리도 길었지만, 장을 보다가 아이가 울면 화장실에 들어가 모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다 보면 장보는 시간은 4시간이 훌쩍 넘었다. 유모차의 트렁크(?)에는 장을 본 음식재료들을 가득 담아, 돌아오는 길의 유모차는 묵직했다. 가족을 세우기 위해 함께 협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그 시간을 보냈다.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에 집중했다.


  큰 딸이 세 살때, 동생이 생겼다. 아이를 좋아하는 나인데, 임신이라는 소식이 기쁘고 반갑운 것만은 아니었다. ‘왜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걸까? 아이를 키우는 건 좋은데, 이 기분은 어디서 올 걸까?’ 늘 그렇듯 일기장에 내 마음을 풀어놓았다. 임신 기간 동안, 큰 딸의 얼굴을 보며 버텼다. 큰 아이는 참 편안한 친구였다. 내가 가장 원했던 온기가 아이에게 있었다. “엄마가 뱃 속의 동생과 같이 오래 걸어서 피곤한 데, 30분만 잠을 자도 될까? 그동안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볼 수 있어.”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큰 딸 뒤에 누워 손을 잡고 잠시 잠을 청했다. 아이는 내가 자고 일어나면 아무런 말 없이 미소를 지어 주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게 일어난 모든 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일기에 적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도 적고, 마음 아프거나 수용되지 않아 포기한 생각도 아주 자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그 외로움 사이는 아이가 주는 행복이 가득 행간을 채우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9) 괜찮아, 사랑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