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태어나고, 학교 기숙사 친구들이 축하하러 왔지만, 나는 급격한 허리 통증에 힘들었다. 초등학교 때, 친구가 내 양말을 콩알탄으로 구멍을 나게 해서 그 친구를 골탕 먹인 일이 있었다. 그 일로 화가 난 친구가 나를 향해 달려 발로 차 넘어지게 되어 그때부터 허리가 자주 아팠다. 아이를 키우며 쉴 수 없고, 아이를 안아야 하니 허리에 무리가 갔다. 꼬부랑할머니가 된 것처럼 허리를 펴고 걸을 수 없었다.
아이가 2명이 된 그때 남편은 영국 브리스톨에서 교회 목사로 부임해 있었다.
“내가 허리가 너무 아파서 그런데 둘째를 잠깐 앉고 교회에 들어가면 안되요?”
“양복이 다 구겨지잖아. 유모차를 갖다 줄테니까, 거기에 앉히면 되지.”
남편은 교회에서는 아이 한번 안아 주지 않고, 일에 몰두했다. 남편은 내가 모임에 참여하길 바랬다. 내가 사람들을 챙기고, 대화하면서 모임이 잘 될 수 있을 거라며.
“지금 그렇게 하기에는 내가 많이 힘든데. 둘째도 거기서 아직 잘 적응이 되지 않았고.”
그 당시 둘째는 새로운 사람들을 보면 긴장해서 울고, 안겨 있어야 울음이 그치곤 했다. 남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큰 딸만 데리고 모임에 들어갔다. 나는 둘째를 데리고 모임 밖에서 하염없이 걸었다. 모임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남편 학교 졸업식이였다.
나는 아이들이 울거나 지루해할까 싶어 졸업생 근처에 앉지 못하고, 식장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남편은 함께 한 교회사람들과, 교수들, 학교 동기들과 함께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었다. 아내에게 학사모를 씌워주며 고맙다는 말을 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가족들에게 고맙다며 안아주는 졸업생도 있었다.
나와 아이들은 졸업식장 뒷자리에 앉아 2명의 아이를 울지 않게 챙기며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는 남편의 모습을 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함께 한 교회사람들과의 대화로 가득찼다.
7년의 영국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