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나오는 밤

봤나요 귀신얼굴

by ASAP

남편이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


“진짜? 난 못 데리고 간다고?”

난 소리쳤다.


여지껏은 남편 출장이 있으면 대체로 따라다녔다.

남편이 일 보는 동안 천천히 아침을 먹고

근처 쇼핑 몰을 다니던지 도시를 탐험하던지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이 동행이 있어서 같이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쩌냐 당신… 혼자 자야 하네. 할 수 있겠어?”

남편이 걱정 반 놀림반 말한다.


결론은 나는 집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사실문제는 밤에 불 끄고 혼자 자는 것, 그것이다.

내가 그 어려운 걸 못한다, 진짜로…

왜냐고? 귀신 때문에!

나는 세상에서 귀신이 제일 무섭다. 다행히 아직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왜 무섭냐고? 볼까 봐! 귀신을 볼까 봐 너무 무섭다.

귀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귀신이란 걸 아는 순간

기절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서로 마주 쳐다보게 되면 어떡할지…


그 밤을 불 킨 채 꼬박 새리라 결심했다. 불을 안 끄면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비가 억수로 퍼붓고 바람이 엄청 불어

유리창이 흔들리고 나무들은 거의 사십 오도로 기울어 있었다.

저러다가 다 뽑히는 거 아냐, 지붕이 날아가는 거 아냐

왜 하필 남편이 없을 때…


중얼중얼 걱정을 하며 창 앞을 왔다 갔다 했다.

저녁을 혼자 먹고 나니 약간 졸리면서 추워졌다.

이층의 흙 침대에 가서 따뜻하게 몸을 지지고 싶어 졌다.

하지만 이층에 있으면 지붕 위로 뭐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고

또 아래층에서 누군가 걸어 다니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서 절대 그럴 수 없다.


드디어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어둠이 집 주위를 덮었다.

가장 겁내는 시간이 온 것이다.

만반의 준비를 하기 위해 소파 옆에 물을 갖다 놓고 핫 백도 가져다 놓고 티브이를 켰다.

이곳 거실이 집안의 중심이고 앞쪽에 현관문이 있고 뒤쪽엔 뒷마당으로 가는 문이 있고 왼쪽은 차고로 가는 문이 있어 무슨 일이 생기면 어느 쪽으로든 도망갈 수 있으므로 가장 안전한 곳이다.

여기서 보이는 벽장이나 방문은 모두 닫혀있다.

열려있으면 시커먼 공간에서 뭔가 나올 것 같아서 마음이 산란하다.


영화에서 보면 전기가 나간 집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용감하게 혼자 지하실로 내려가는 여자들이 꼭 있다.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절대!

그러다 다시 못 올라오는 수가 있다. 영화에서는 항상 그렇다.


티브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소파에 누워있는데 현관문 밖에 그림자가 슬쩍 지나간다.

가슴이 툭 떨어진다.

뭐지? 빨리 보안 시스템을 켜려고 간다.

빨간 불이 들어오며 보안이 되려면 45초를 기다리라고 카운트 다운을 한다.

1초씩 줄어드는데 내 가슴도 졸아든다. 마침내 알람 글자가 뜨며 보안이 되었다.

믿는 구석이 생겼으므로 조금 용기를 내어 현관문을 기웃거려본다.

아까 그림자는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려 현관 창에 비치는 것이었다. 휴…


소파로 돌아와 재미난 프로를 찾으려고 애쓰지만 오늘따라 심각한 다큐에 사고 뉴스에 영 그렇다.

이런 때는 영어보다는 한국말 프로를 봐야 더 안심도 되고 몰입도 된다.

친구에게 전화를 하면 좀 나을까 싶지만 가족들하고 재미날 시간인 것 같아 그만둔다.

비는 점점 더 쏟아진다. 바람도 못지않다. 금방이라도 쾅 현관문이 열어젖혀지며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왜 미국 집은 현관이 곧 대문이어서 이렇게 허술한지 모르겠다.

문에 유리가 한두 짝씩 끼어있어 주먹만 꽉 쥐고 밀어도 깨지게 생겼다.

정말 도둑을 부르는 형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귀신에 도둑까지 합세해서 겁준다.


그때 전화가 울린다. 불길한 생각이 든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작고 떨렸다.

“뭐해? 목소리가 왜 그래?”밝은 목소리가 주위를 환희 비추는 것 같다. 친구다.

“우리 남편 출장 가서…”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친구가 소리친다.

“나도 나도, 우리 남편도 출장 갔어, 얼마나 좋은지…”

“좋아?”

“그럼, 저녁도 안 하지, 늦게 놀다 들어와서 지금 누워 티브이 봐.

밤새도록 그동안 못 본 한국 드라마 다 뗄 거야. 너무 편하다, 그렇지?”


그래? 잠시 충격이었다. 그럴 수도 있구나.

그래, 쓸데없이 무서워 벌벌 떨지 말고 생각을 바꿔 즐기는 거야.

혼자 있는 이 귀중한 시간을…

전화를 끊고는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물컵을 치우고 핫팩을 치우고 뭘 해야 할까 생각했다.

그래, 방에 올라가서 그동안 손도 못 댄 책들을 떼야지, 그리고 영화도 다운로드하여 봐야지.


용기에 가득 차 이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차고 문이 열리고 알람을 끄는 소리가 난다.

남편이 잔뜩 젖은 채 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선다.

“어떻게 된 거야?” 달려가며 묻는다.

“비에 폭풍에… 당신이 무서워할 것 같아서 출장 미루고 오는 거야… 밥 있어? 아직 안 먹었는데…”

반갑기도 하고 뭔가 미진한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막 용기 있게 무언가를 해보려는데 불발된 아쉬움… 마치 맛있게 구워놓은 빵을 손도 못 대고 돌아서는 기분…


하지만 이 밤에 혼자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은 확실히 기쁘다.

남편의 젖은 옷을 받아 들며 헤실헤실 웃었다.

혼자 있는 연습, 혼자 즐겨보는 도전은 다음 기회가 또 있겠지.

그래, 혼자 있는 건 아무리 재밌는 드라마 열 편과 함께라도 싫어.

오늘도 나는 귀신의 얼굴을 모른 채 넘어간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평생을 두고 마주칠 일은 없기 바란다.

오늘 밤은 두 다리 뻗고 편히 실컷 잘 수 있겠구나. 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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