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예언
대학 때 학교 후문에 용한 아줌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막 신기가 들은 아줌마와 할머니 중간쯤 되는 분이 신당을 만들려고 학교 뒤에 작은 카페를 열어 커피를 판다고 했다. 음료를 마시면 무료로 사주를 봐준다고 했다.
그런데 아주 용해서 잘 맞춘다는 것이다.
전해준 사람 얘기가 신기를 막 받은 때가 순수하고 때도 덜 묻고 해서 가장 용하다는 것이다.
뭐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학교 후문으로 매일 들락거리고 그쪽 어딘가에서 수업 없는 시간에 커피 마시며 때우니까 귀가 솔깃해서 친구와 갔었다.
역시 막 열어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었다. 골목골목 분위기 좋은 카페가 수두룩 하니까 그런 집이 생겼는지 사실 누가 말해주기 전에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요즘 같이 인터넷이 있던 때도 아니고….
암튼 분위기라고는 전혀 없는 그 찻집은 할머니가 차를 가져다주어서 약간 송구할 지경이었다.
우리가
“사주 봐주신다면서요”
이야기를 꺼내자 할머니는 생년월일을 물으셨다.
할머니는 마치 눈에 보이는 듯 나에 대해 말하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국 가서 살 거라는 이야기였다. 외국에 들락날락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뿌리를 박고 살 거라고 했다.
사실 그 이야기는 전혀 안 와 닿았다.
꿈에도 생시에도 여행 말고는 외국에서 산다는 것을 바란 적이 없었다.
그 당시 유학생과 결혼해서 외국 가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아마도 그런 타입이라고 생각하고 던졌나 보다 하고 여겼다
다른 여러 가지 말도 해주었지만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친구에게도 어떤 남자를 만날 거라고 말해주었는데 훗날 정말 그런 남자랑 딱 결혼하게 되었다.
뭐든지 집에 와서 말하는 나는 그날도 점을 봤다고 엄마 아빠한테 신기해서 말했다.
“그 점 잘 본다는 할머니가 나한테 외국 가서 붙박이로 산다네, 엄마!”
나는 그냥 찌라시 전하듯 별 감정 없이 말하고 돌아섰는데 나중에 엄마 말이 아빠가 섭섭해하셨다고 했다.
그 말이 섭섭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전하는 내가 전혀 아무 감정 없이 하더란다.
외국 가서 산대, 어떡해 말도 안 돼, 엄마 아빠 여기 있는데 난 절대 안가 뭐 이런 식의 반응을 그 맥락에서는 했었어야 하는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 말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냥 전달하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어찌 됐든 결국 나는 그 말대로 되었고 지금까지 그 할머니 진짜 세상 신통한 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전혀 외국 갈 일도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외국으로 가게 되었고 결국 그 말대로 붙박이가 되었다.
이곳에서 지인끼리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어쩌다 우리가 미국에 와서 이렇게 타향에 살게 되었을까 하는 말을 하게 된다.
사실 마음먹고 이민 온 분들은 해당되지 않겠지만 잠시 일이나 공부로 머물러 왔다가 어찌어찌 코가 끼이면 결국 돌아갈 시점을 놓치고 그러다 보면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래서 모종도 때가 있듯 그 시점이 지나면 돌아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
우리가 왜 여기 살게 되었을까, 부모 형제 다 한국에 두고, 우리도 거기서 함께 살고 싶은데…
어쩌다 살게 된 사람들의 마음은 거의 비슷하다.
한국에 방문했다 돌아올 때 공항에서 가족들과 눈물 바람 하는 것도 마음 아프고,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방문했다 올 때마다 되풀이돼야 하고 그래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생이별이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날부터 목이 메어 함께 식사하는 것도 어렵다.
늘 함께 부모형제와 고국에 사는 사람은 결코 겪을 수 없는 고통이다.
결국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왜 이렇게 됐을까 떠들다 보면 사주 얘기가 꼭 나오는데 모인 사람들 대부분 역마살이 있다는 게 재밌다.
모두들 사주를 보면 한결같이 역마살이 제대로 꼈다고 하더란다.
그러니 거기 모인 타향살이 지인들의 공통점은 역마살인 것이다.
“사주가 맞긴 맞나 봐.”
우린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역마살 동아리가 된다.
우리가 이곳에서 부모형제를 애타게 그리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의지보다는 운명의 소용돌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누구도 매년 공항에서 엄마와 헤어지며 눈물을 흘리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화성에 식민지가 건설되고 우주여행이 실현된다는 마당에 사주에 역마살 이야기를 하는 건 좀 아니다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알 수 없는 우주와 운명의 신비를 우리는 역마살이라고 이름 붙여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손자 시대가 되면 화성에 모여 앉아 우리는 역마살인가 봐 하는 장면이 재현될 수도 있겠다.
무엇이 되었든 다음 생에는 역마살 이 딴 거 말고 부모 형제와 붙어살며 고국에서 만수무강을 누리는 사주를 받기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