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간직한 딸
미국에 살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새벽에 전화가 울리는 것이다.
새벽의 전화는 급한일이라는 뜻이고 이것은 곧 가족 중의 누군가가, 대개 부모님이 위중하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경우 운이 좋으면 빨리 서울로 와야 할 것 같다 이고 운이 나쁘면 돌아가셨다는 전화다.
위중할 경우에 서둘러도 임종을 지키기 힘들다.
당장 비행기 예약도 힘든 경우가 많아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가 많다.
운 좋게 티켓을 바로 사서 당일 떠난다 해도 열다섯 시간 비행시간을 생각하면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개 비행시간 내내 애를 태우다 내려서 병원이 아닌 장례식장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다.
돌아가셨다는 경우에는 도착하면 장례 중이거나 끝나고 난 후이기도 한다.
지인의 경우 서울서 입원하신 부모님을 돌보다가 잠시 볼일로 미국에 돌아왔는데 JFK 공항에 내리자마자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듣고 바로 서울 가는 비행기를 되잡아 타고 간 일도 있다.
그래서 외국에 사는 교포들은 새벽에 전화가 울리면 가슴이 철렁한다.
자다가 벨 소리에 깜짝 놀라 허겁지겁 어두운데 부딪쳐가며 전화를 받았는데 잘못 걸린 전화면 화를 내기보다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다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카톡을 봤는데 아빠가 쓴 글이 보였다.
순간 괜히 가슴이 철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아프셔서 응급실에 와있다는 것이었다.
혼비백산해서 전화를 했는데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검사를 하고 있다고 하셨다.
여덟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항상 몸이 약했지만 큰 병은 없었는데 팔십이 넘으면서부터 엄마는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병원 신세를 지셨다.
특히 정신이 흐려지면서부터는 더욱 스스로 몸을 돌보지 못해 체력도 떨어지고 운동은 꿈도 못 꾸게 되었다.
팔십 중반이면 아직도 건강할 수 있는데 안타깝다.
엄마 친구분들은 요새도 계를 하면서 서로 안부도 확인하고 다정한 잡담 시간도 즐기시는데 …
미국 딸네 집에 놀러 와 머물다 가시면 엄마는 옷을 남기고 가곤 하셨다. 작은 가방을 가져왔다가 돌아갈 때는 서울 손주들 선물이며 사다 보면 공간이 모자라게 되어 여기서 입던 옷을 남기고 가셨다. 서울서는 그래도 친구들 만난다고 좀 차려입으실 때도 있었는데 미국에 오면 누가 보냐며 항상 버릴 옷을 챙겨 와서 입다가 그것도 아까와 못 버리고 남겨놓고 가셨다.
옷이라야 집에서 입는 막 바지와 티셔츠 같은 것들이었는데 잘 빨아서 보자기에 곱게 싸서 먼지 안 타게 장 한구석에 조그맣게 넣어두시면서
“ 내가 더 이상 못 오게 되면 이것들 그냥 다 버려라.”
지나가는 말처럼 하셨다
“ 내가 여깄는데 엄마가 어떻게 못 올 수가 있어.” 별소릴 다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침내 거짓말처럼 그런 일이 일어났다.
엄마는 십 년 전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미국에 못 오셨다.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오시겠지, 그동안은 내가 한국에 나오곤 했는데 결국 이렇게 엄마 말이 현실이 되는 날이 왔다.
옷은 방금 벗어놓은 것처럼 생생한 모습으로 얌전히 개켜져 있다.
그 옷을 입고 부엌으로 화장실로 다니던 엄마가 너무도 생생하다.
엄마는 이제 우리 집에 오셨었다는 것조차 기억을 못 하신다.
아침에 새소리를 듣고 일어났다고, 마당에 토끼도 있고 사슴도 왔다 가더라 하면서 좋다고 하셨는데 엄마는 이제 다른 세계에 계신 것처럼 기억을 못 하신다.
엄마의 수술은 이제 또 하나의 파도이다.
파고가 낮고 기세가 약한 그저 일렁임만 멀미를 주는 가벼운 파도이기를 바란다.
평생을 아끼고 절약하며 가족을 위해 살아오신 나의 엄마, 엄마의 남은 생이라도 반짝이는 조약돌처럼 햇빛의 보호를 받기 기도한다.
나는 다시 옷을 싸서 서랍에 넣었다.
엄마가 건강해지고 그래서 열다섯 시간 비행을 거뜬히 견디며 우리 집 마당을 다시 거니는 그날까지 다시 서랍에서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엄마도 조금만 기다려 내가 곧 갈게
미국이고 한국이고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함께 있으면 되지
곧 만나 사랑해 나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