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염려증과 골프

시달리세요? 해보세요

by ASAP

내가 대학 다닐 때 얘기다.

공부하느라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으려니 몸이 찌뿌둥했다. 팔을 쭉 뻗어 하늘을 찔러봤다.

허리를 살살 좌우로 흔들고 손으로 목 뒤를 마사지했다. 목이 매끄럽다가 무언가 툭 불거진 것이 만져졌다.

이게 뭐지, 뒤통수가 목과 만나는 부분에 혹같이 딱딱하고 동그란 것이 만져졌다.


가슴이 철렁한다. 후~일단 호흡을 하고 진정을 한 후 다시 만져봤다. 아직도 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엄마를 부르며 쿵쾅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부엌에서 일하던 엄마는 큰일이 난 줄 알고 덩달아 뛰어나왔다.


“왜, 무슨 일인데?”

엄마가 눈을 크게 뜨고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엄마, 여기 좀 만져봐.”

나는 뒷머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 순간 엄마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알만하다는 얼굴로 바뀌었다.


“또 시작이다. 공부는 안 하고 무슨…”

엄마는 만져보기는 커녕 부엌으로 가버렸다.

“엄마, 큰일 났어, 내 목에 혹이 생겼다니까”

나는 따라 들어가면서 말했다.

“그래? 그럼 또 병원 가야겠네. 무슨 검사를 받아야겠군.”

엄마는 시큰둥하게 말한다.


항상 몸 여기저기가 이상하다, 뭐가 생겼다 걱정하는 딸을 알기에 엄마는 상대를 안 했다.

그래도 끈질기게 물어본다.

“그렇지? 검사해봐야겠지?”

정말 진지하다.

“근데 엄마, 이건 무슨 과로 가야 하나?”

“글쎄, 내과도 가보고 정형외과도 가보고, 여자 선생님, 남자 선생님, 젊은 선생님, 나이 지긋한 선생님 다 만나봐야겠지, 다양한 의견을 들어봐야 하니까.

오래 걸릴 텐데 아예 입원을 해야겠네?”


나는 엄마를 째려봤다. 저러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중병이면 어쩌려고?

나는 전화를 걸어 외과로 예약했다. 이럴 때 아빠나 친척이 의사면 얼마나 좋아, 바로 진찰해주고 해결해 줄텐데.

저녁에 퇴근하신 아빠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러는 것 같으니 마음을 편하게 하라고 위로해주셨지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음날 병원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불안해서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와있기라도 하면 좀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마침내 순서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자 긴장해서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큰 병이면 어떡하지? 그러길래 엄마는 같이 오자니까…


의사는 생각보다 젊었다. 40대 초반? 경험이 충분한 걸까?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이 친근감 있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지요?”

의사가 내 차트를 보면서 물었다.

“뒷목에 뭐가 잡혀서요.”

나는 뒷목에 아직도 있는지 만져보며 말했다.

“언제부터 그랬죠?”

의사는 아직도 차트에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제 알았어요.”


의사는 찬찬히 목 뒤를 진찰했다.

아픈가요? 불편한가요? 어떤 증상이 있나요?

몇 가지 묻더니 차트에 뭘 쓰고 뒷장을 넘겨 읽어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뭔가 나쁜 징조를 발견했음이 틀림없어. 왜 저렇게 아무 말도 없지?


의사가 차트를 보면서 말했다.

“전에도 이런 게 생긴 적이 있었나요?”

무슨 시리즈로 생기는 병이 틀림없다.

“아니요…”

아직도 고개를 들지 않고 있는 의사 때문에 나는 불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이윽고 의사는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사 년 전에도 왔었어요”

“네?”

나는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누가요? 뭐가요?

“그때도 목 뒤에 혹 같은 게 있다고 했어요.”의사가 차트를 뒤적이며 말했다.

“만져보니까 크기나 위치가 같아요. 그러니까 같은 걸 가지고 오늘 다시 왔다는 얘긴데…

뭐 특별히 자란 것 같지도 않고… 가끔씩 지방이 뭉치거나 해도 이렇게 될 수가 있죠.”


그러니까 똑같은 혹 때문에 몇 년 전에도 왔었고 새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늘도 뛰어왔다 그 말이다.

나는 좀 무안해서 목 뒤를 만지다가 재밌다는 듯한 의사의 눈과 딱 마주쳤다.

아… 그래, 이 선생님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 했더니… 물감 번지듯 서서히 기억이 난다.


“신경 쓰지 마세요. 만지지도 마시고요. 매일 혹 잘 있나 인사할 필요 없거든요.”

발딱 일어나 후딱 나오려는데 의사가 중요하다는 듯 한마디 덧붙였다.

“다음에 올 땐 세 번째라고 미리 말해주세요.”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뒷목을 잡지 않는다.

그 대신 온몸의 장기가 돌아가면서 한 번씩 나 여기 있다 신호를 보내면 내과도 가고 내시경, 초음파도 하면서 병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결혼 후 미국에 살게 된 이후에도 가끔씩 내가 아프다고 투정하면 엄마는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아직도 그 병원 순례 안 끝났니 하신다.

남편은 “당신 오래 살 거야 그렇게 병원에 열심히 다니니…” 한다.


그러던 내가 어느 날부터 골프에 재미를 들이기 시작했다. (골프가 미국처럼 저렴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러자 시간 나면 골프 갈 생각 하느라 병원 예약할 틈이 없다.

나와 같은 증상이 있으신 분들, 정말 재미나는 취미를 하나 만들면 병원 가는 시간이 아까와서 어깨 아파도 파스로 때우고 발 아파도 소염 연고 바르고 말게 된다.


살면서 아프다는 건 삶에 대한 투정이며 하소연 같다.

병원 가서 괜찮다는 의사의 말을 들으면 날아갈듯한 마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마치 누군가가 마음을 이해해주고 안전을 보장한 것 같이…

밖에서 이해와 안전을 얻으려 하지 말고 즐거운 그 무엇을 '내게' 제공해주는 ‘해결책’을 나름 찾아냈다.

그래서 병원에 가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골프를 하러 간다.

어디 아픈가 집중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골프를 잘 칠까에 골몰한다.

내 생각이 잡고 늘어질 집중 거리로 운동을 제공해줬다.


그래서 병원을 졸업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픈 데가 전혀 안 떠오른다는 말도 아니다.

단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방법을 보증은 못한다. 하지만 효과는 있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그래서 삶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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