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나의 세상, 당신의 세상

by 집없는 거북이

나는 집에 있던 물건이 사라지면 온갖 상상을 하게 된다. 우선 이런 상상의 출발은 “왜? 사라지지?”이다. 내가 물건을 잃어버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분명 잘 간수했으며, 어디다가 버릴 이유도 없다고 여긴다. 내가 어딘가에 놓고 찾지 못 할거라며 구석구석 찾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제부터 발생한다. 찾을 수 없다. 아무리 찾으려해도 찾을 수 없다. 그때부터 내 신경은 모조리 잃어버린 물건과 버뮤다 삼각형과 같은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그 의심이 향한다. 특히 그 타인은 나의 어머니가 된다. 이 집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을거라 여겨지는 나의 어머니. 난 그녀를 추궁하고 공격하기 시작한다. 나의 압박에 못 이겨 어머니는 나와 함께 혹은 대신 물건을 찾아주곤 한다. 신비롭게도 많은 경우 물건을 찾는다. 동시에 많은 경우 찾을 수 없다. 찾지 못하는 경우 나는 분노하고, 찾을 수 없는 이 집의 구조를 탓한다. 결코 원인은 집에 없으며 온전히 나에게 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분노는 애꿎은 어머니에게도 향한다. 물건을 관리해주지 않았다는 억지로 말이다. 결국 잃어버린 것에 대한 분노, 억울함, 상실감은 스스로에게 향하고 나는 온갖 자기합리화로 잊으려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물건을 잃어버렸고, 찾을 수 없다는 강박에서 헤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버닝은 과연 이와 얼마나 다를까? 이해할 수 없다는 괴로움은 부조리를 낳았다. 그리고 그 부조리는 타인으로 인해 해결될 수 있다 믿는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해결했다 믿고, 자신을 이해시킨다. 버닝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나약한 인간의 몸부림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 하기에 이 영화에 공감한다. 이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이해하려 노력한다. 비록 그 방식에 주어진 정답은 없으며, 각자의 방식만이 존재한다. 나의 세상이 당신의 세상일리가 없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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