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생채기
원래라는 말이 참으로 우습지만, 토니 타키타니에 대해서 말할 때 원래만큼 필요한 말이 없을 것이다. 토니 타키타니는 원래 외로운 존재였다. 그는 의도치 않게 외롭게 살았다. 그의 출생부터 성장까지 그는 한 없이 외로운 존재였다. 그는 타인을 증오하지 않았다. 그저 그는 생겨먹은 대로 살아왔을 뿐인데 결국 그 혼자 남았다. 그는 잘 못 한 게 없으니 그를 탓할 순 없었고, 누구를 탓하자니 딱히 탓할 누구도 없었다.
그런 외로운 토니 타키타니는 또 다른 외로운 여인을 만난다. 마치 바람처럼 공허한 그녀를 만났다. 바람과 같은 그녀는 토니 타키타니에게 외로움을 낯설게 만들었다. 낯설어진 외로움은 토니 타키타니를 다시는 외로움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바람처럼 공허한 그녀는 쉽게 날아가지 않게 옷으로 그 무게를 만들곤 했다. 새로운 옷은 그녀에게 현실에 머물 수 있는 무게를 주었다. 그런 그녀가 더 이상 새로운 옷으로 현실에 닻을 내리지 못하게 되자 그녀는 바람과 같이 토니 타키타니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바람은 토니 타키나티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다.
생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생채기는 죽을 거 같은 아픔을 주진 않았지만 한 없는 공허함만을 남겼다. 토니 타키타니는 그 생채기를 굳이 떼내려고 했지만, 생채기를 그럴수록 깊어만 갔다. 그렇게 생채기는 토니 타키타니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토니 타키타니는 다시 원래대로 외로워졌다. 다만 그에게는 이전에 없던 생채기가 생겼을 뿐이다.
가랑비가 내릴 때 우리는 그 비를 직접 느낄 수 없다. 그 비가 얼마나 내리는지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옆 사람의 우산에 가랑비가 맞는 소리이다. 생채기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생채기는 느껴지지 않다가도, 타인의 생채기를 통해 나의 생채기를 되뇐다. 내가 가진 외로움을 잊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잊고 있었다. 어쩌면 한 없이 외로웠는데 굳이 잊으려고 했다. 내 마음의 생채기를 떼낼 수 없기에 일부러 잊고 있었다. 토니 타키타니의 생채기를 내가 보기 전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