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

칠흑같은 밤의 아련한 달

by 집없는 거북이

이별한지 고작 하루가 지났다. 겨우 하루인데 벌써 그 사람의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우리가 같이 했던 시간은 기억할 수 있지만, 그때 그 사람의 표정, 목소리가 슬픈 감정에 뭉개져 더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애써 지우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슬퍼만 했을 뿐인데, 어느새 내 감정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지워냄으로써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 있다면 내가 더욱 불행해할거라던 그대. 자신이 겪는 힘듦을 자기만이 느끼기 위해 나를 떠난다던 그대. 내가 내민 손을 잡고 나와 어깨를 같이 하지 못하고, 나를 자신의 옆으로 끌어내릴 것을 걱정하던 그대.


나는 그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참으로 착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당신을 기억할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을 기억하고 산다면 당신이 걱정한 것 만큼 내가 너무 슬프게 살아갈듯합니다. 다만 내가 후회하는 것은 나를 떠남으로써 후회하는 것보다 내가 추후 당신을 미워하게 됨으로써 느낄 후회를 무서워하는 그대를 안아주지 못 한 과거의 부족했던 나 자신입니다.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우린 영화처럼 기억이 사라진 채로 다시 만날 수 없겠지요. 칠흑같은 밤 하늘을 좋아하던 당신. 아련한 달을 좋아하던 당신. 오늘 밤 하늘과 달은 나로 하여금 참 당신을 그리워하게 합니다.

나는 이제 당신에게 감기 조심하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네요. 여기에라도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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