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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없는 거북이 Mar 08. 2019

작지만 지극히 사적인 영화관

창 밖의 하늘에는 어둠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밤하늘의 빛인 달과 별은 짙은 구름에 가려져 그 존재를 뽐낼 수 없었다. 그 흔한 벌레 소리하나 들리지 않았고 어떠한 생명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너무나 어둡고 조용해 창 밖은 무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창 밖의 공허함 못지않게 방 안 역시 어떠한 빛도 소리도 움직임도 없었다. 모든 빛과 소리는 잠들어 있으며 그 어떤 작은 생명의 움직임 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유사함으로 인해 창 밖과 방을 구분하는 유리창은 마저 그 본래의 기능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안과 밖은 그 구분에 의해 나뉘고 다른 모습을 보이곤 하지만 이 날은 안과 밖의 구분이 불가능했다. 그렇게 모든 게 어둠과 부재에 의해 똑같아지고 피아의 구분은 모호해져 갔다.

하지만 방 안에는 한 남자가 누워있었다. 그는 그의 좁은 침대에 바르게 누워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그저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는 숨소리 내는 것을 드러내지 않고 소리 없이 누워있었다. 그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않았고 움직임에 대한 욕구를 느끼지 않았다. 그저 그는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그의 호흡기관을 관찰하지 않으면 그는 죽은 이와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방은 한 없이 어두워 그의 호흡기관이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는 죽어있는지 모른다. 죽은 자의 모습을 한 그는 어둠을 기다리고 있었다. 빛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어둠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어둠에 의해 가려지고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고 피아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간을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불명확해지고 구분할 수 없게 되면 현실과 비현실마저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러면 그는 눈을 감음으로써 영화관에 입장할 수 있다. 그는 그만을 위한 작지만 지극히 사적인 영화관에 입장했다. 그리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그를 위한 영화가 상영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온도

카페에 한 연인이 앉아있다. 그들은 창 밖에 내리는 비 오는 거리를 바라보며 서로에게 기대앉아있다. 창 밖에 비가 내려 거리를 젖어 있고 이따금씩 빗줄기가 카페 유리창을 건드린다. 그 연인은 무표정하게 유리창 밖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무심한 눈동자와 굳게 닫힌 입술은 그들이 어떤 감정으로 창 밖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게 한다. 창 밖의 거리에는 우산을 쓰고 다니는 이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모두 오늘 비가 올 것을 알았는지 우산을 쓰고 있다. 거리의 우산은 그 색이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검은색 우산을 쓰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투명한 비닐우산을 쓰고 있으며, 또 다른 이들은 무지개색 우산을 쓰고 있다. 평소에 생각지도 못 한 다양한 색의 우산들이 보이곤 한다. 하지만 거리의 우산이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우산의 색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처음 비 오는 거리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 연인은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커피에서 더 이상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의 커피는 차갑게 쓴 맛이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그의 커피잔 속을 한번 들여다 보고는 다시 그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창 밖의 비 오는 거기를 바라보았다. 그가 잔을 내려놓는 것을 그녀는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커피잔이 아닌 그의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녀도 그의 커피에서 더 이상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커피잔을 자신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커피와 다르게 그녀의 커피에는 약간의 따뜻함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커피잔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는 그녀가 그녀의 커피잔을 자신의 앞에 내려놓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녀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계속 몇 초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 앞에 놓은 그녀의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의 커피에는 아직 따뜻함이 남아있었다.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커피 잔에는 그녀의 립스틱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는 그 립스틱 자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커피잔을 들어 그녀의 립스틱 자국이 있는 곳에 자신의 입술을 대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고 그녀를 따라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창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모든 이들은 마치 오늘 비가 올 것을 알고 있던 것처럼 우산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다양한 색의 우산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한 연인이 카페에 앉아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 같이 무심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카페에는 잔잔한 음악소리와 가끔 빗줄기가 카페 유리창을 두들기는 소리뿐이었다.  

마지막 장면과 함께 모든 것이 흐려지며 영화의 막이 내렸다.  

장난

어느 늦은 밤 작은 방에 5명의 사람이 모여있다. 이들은 각자 준비해온 요리와 함께 술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이 준비해온 요리는 온갖 고기와 채소들을 재료로 만들었고,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요리를 바닥에 놓고 그 주위에 둥글게 모여 앉아있다. 그들이 모인 장소가 작은 방인지라 그 방에는 음식을 올려놓을 식탁이 들어갈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고 각자의 접시에 요리를 조금씩 담아 먹었다. 요리와 함께 그들은 술을 마셨는데 이날 그들이 마신 술의 종류는 와인이었다. 총 4병의 와인이 그들 앞에 놓여있었다. 세병의 레드 와인과 한병의 로제 와인이었다. 5명의 사람들은 4명의 와인을 모두 열어놓은 채 자신의 취향에 따라 조금씩 따라 마셨다. 어떤 이는 레드 와인만 마셨고, 어떤 이들은 로제 와인을 중간에 간간히 마시곤 했다. 

레드 와인은 각각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칠레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레드 와인은 빈티지 와인으로 연도가 쓰여 있지 않았고, 스페인과 칠레 산 레드 와인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와인이었다. 프랑스 산 빈티지 레드 와인은 그 맛이 비교적으로 달았고 가벼웠다. 스페인 산 레드 와인은 그 맛이 깔끔하고 살짝 단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칠레 와인은 드라이하고 특유의 매콤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로제 와인은 지난해에 만들어진 프랑스 산이었다. 그 맛은 단맛이 약했으며 상당히 드라이한 맛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요리와 술을 즐기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에 대한 근황을 시작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누구는 요즘 미세먼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은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이에 많은 이들이 호응을 하며 자신들이 겪은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누군가는 자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기도 했다. 미세먼지로부터 시작한 건강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누군가가 이성에 대한 고민을 꺼내놨다. 이야기의 주제가 미세먼지에서 이성관계로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어떠한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한 사람에 의해 이성관계로 넘어온 주제는 5명 모두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미세먼지와 건강에 대해 다소 흥미 없어 보이던 이들마저 이성관계에 대해서는 흥미를 보이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렇게 이성에 대한 이야기도 끝나고 이후에 다소 이질적인 주제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갔다. 이성 다음에 경제 문제가 주제가 되었고 그리고 최근 개봉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렇게 이야기의 주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5명의 사람들은 지치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이 준비해온 요리와 술은 바닥을 보였다.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치우고 새로운 술을 꺼내는 것에 대해 물었다. 그렇게 잠시 이야기는 멈추었고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이 먹은 요리와 빈 술병을 치웠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고 모두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리를 치울 것을 제안한 한 명이 한 손에 위스키와 다른 손에 얼음을 들고 나타났다. 그가 술과 얼음을 들고 자리에 앉자 다른 이가 일어나 새로운 잔을 준비했고 그렇게 5명의 사람들은 다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전과 똑같이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져갔다. 새로운 주제는 이전

주제와의 이질감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들은 마치 그 자리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 마냥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야기가 쌓일수록 시간은 점점 흘렀다. 한 남자가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는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그전까지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으나 시계를 보고 난 후 그는 갑작스러운 피곤을 느꼈다. 그가 시계를 보고 피곤을 느낀 후부터 그는 앉은자리에서 조금씩 졸기 시작했다. 다른 4명의 사람들은 그가 조용해지고 졸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4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갈수록 그는 그의 졸음에 점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의 졸음을 방해하는 다른 이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구분할 수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로 “내일은…”이라고 말하는 것을 끝을 잠이 들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모든 이들은 그가 잠들기 전과 똑같은 상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잠들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는 쏟아지는 잠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그가 잠깐 잠에서 깼을 때 그는 이전과 똑같은 자세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다른 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그가 잠들었을 때, 잠깐 눈을 떴을 때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이들이 참 대단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잠깐 졸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가 시계를 보았을 때 그는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는 잠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봐도 구분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시계를 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들은 내일의 일정에 대해서 서로 말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내일 관공서에 가야 하고, 누구는 내일 학교에 가야 했다. 이야기의 내용들은 한 없이 평범했지만 그는 그가 마지막에 들은 단어가 ‘내일’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유심히 다른 4명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하는데 빠져 옆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이 저렇게 많을 수 있는지 그는 신기했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그는 그들을 관찰하는 것을 멈추고 다시 쏟아지는 졸음에 몸을 맡기고자 했다. 그는 이전보다 더욱 편안한 자세로 졸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한 번 더 눈을 떴을 때도 이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는 꿈을 꾸었다. 그는 꿈속에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와 함께 술을 마시던 이들이 모두 멈춰있었다. 그는 멈춰있는 그들 중 한 명을 흔들어 물었다. “왜 이러고 있어?” 그러자 그 한 명이 고개를 그쪽으로 향하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네가 잠들어 있어서 우리도 그대로 멈춰있었어.” 그리고 그는 고개를 원 상태로 향했다. 그는 이상함을 느꼈다. 멈춰있는 그들은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는 자들 같았다. 숨을 쉬는지 알 수 없었으며, 그들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고, 어떠한 감정도 표정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을 계속 보고 있자니 그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들은 모두 친숙한 얼굴들이었지만 한 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그만해! 장난치지 마 재미없어! 봐봐 나 일어났으니 원래대로 돌아와!”그러자 그들이 움직이지 시작했다. 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는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그는 다시 앉아 이전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점점 그는 피곤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다시 꿈속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그가 잠든 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그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모두들 자리를 치우고 있었다. 그가 눈을 뜨자 모두들 그에게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그는 그들에게 시간을 물을 틈도 없이 집에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갈 채비를 마치자 모두들 작은 방의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마지막으로 문을 닫기 전에 불이 꺼진 그 작은 방을 되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밤의 흔적조차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빤히 자신이 앉아서 졸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꿈속에서 다른 이들의 괴기한 표정을 떠올렸다. 그렇게 그는 문 앞에서 서있었다. 다른 이가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감정 없이 “재미없는 장난이었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동시에 누워있던 그는 창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과 빛이 들어오는 순간이 너무 동시적이라 그는 빛 때문에 영화가 끝난 건지 단순히 우연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의 작지만 지극히 사적인 영화관에서 나왔다. 언제 또 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상영할지 모른다. 창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날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침대를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창을 열자 지난밤에는 느낄 수 없었던 창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창 밖의 상쾌한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와 그를 환기시켰다. 그는 아침 공기와 함께 지난밤의 영화관을 잠시 잊기로 했다. 그렇게 그는 방의 창문을 열면서 영화관의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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