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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없는 거북이 Feb 22. 2019

또다시 자유

 복잡한 기술적인 문제는 간단히 하고 가장 중요한 자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지금에 걸맞다고 생각된다. 정부는 https에 대한 개인의 인터넷상 활동을 제한하고자 한다. 정부가 내세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불법 및 음란사이트에 대한 제재이다. 일명 리벤지 포르노 혹은 몰래카메라 등으로 인한 개인의 신체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자유가 침해됨으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불법 및 음란사이트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방법으로 http보다 좀 더 보안에 적합한 https에 대한 개인의 내역을 확인하고 접속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지금까지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리벤지 포르노 혹은 몰래카메라 음란 동영상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러한 온라인상에서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이번 정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역대 대한민국 정부들은 조금씩 온라인상에서의 정부의 감시 영역을 확대해왔다. 대표적인 예시는 지난 정권 당시 ‘대테러 방지법’이었다. 그리고 이번 정부는 지난 정부보다 좀 더 적극적인 제재를 가하려고 한다. 조금씩 온라인상 자신의 힘을 키워온 정부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개인의 온라인에서의 행위를 제한하겠다는 것이 이번 정책의 의의일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언론들은 이번 정부의 정책에 관하여 자유의 측면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히 ‘남성들의 음란 동영상에 대한 접근을 막았다.’라는 단순하고 편 가르기에 급급한 제목의 기사를 쏟아낸다. 이번 정부 정책의 문제는 단순히 음란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인터넷상 자유가 얼마큼 개인에게 보장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미국의 한 판례를 기억해야 한다. 래리 플린트의 사례이다. 래리 플린트가 운영하는 포르노 잡지인 허슬러 매거진과 파월 목사의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래리 플린트의 허슬러 매거진이 승리한다. 미 대법원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기반하여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사회적 물의를 유발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당시 미국 대법원의 판결문 중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At the heart of the First Amendment is the recognition of the fundamental importance of the free flow of ideas and opinion on matters of public interest and concern. The freedom to speak one’s mind is not only as aspect of individual liberty -and thus a good unto itself -but also is essential to the. common quest for truth and the vitality of society as a whole. We have of therefore been particularly vigilant to ensure that individual expressions ideas remain free from governmentally imposed sanctions.”
-Keeton v. Hustler Magazine, Inc., 465 U.S. 770 (1984)-
 
“수정헌법 제1조의 핵심은 사상의 자유로운 흐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것이다. 생각을 자유롭게 얘기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의 일면이자 진실 추구에 핵심이며 사회 통합에 필수적이다. 존경스러운 동기와 거리가 먼 것과 행해진 경우도 많지만 늘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보호돼왔다.”
 
허슬러의 판례는 이후 많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역할을 했다. 사회적으로 저급하다고 여겨지는 포르노 잡지가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았다면 다른 개인의 다양한 의견은 개인 자유의 실현으로 보장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핵심은 동기가 아니다. 위 판례의 핵심은 개인의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얼마나 고귀하고 정의로워야 하는가가 아니다 아무리 저급하고 정의와 거리가 멀어도 그 행위는 개인의 자유로서 보장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국가 혹은 사회가 하나씩 이유를 들어가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가면 결국엔 개인의 수중에 남는 자유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러한 움직임을 차단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조치라고 미국 사법부는 위 판결에서 수정헌법 제1조를 해석한 것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혹자는 위 판결을 보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저긴 미국이고 여긴 한국이다.” 혹은 “지금껏 혹은 앞으로 개인의 신체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침해받을 개인에 대한 보호를 위해 인터넷상 자유는 어느 정도 희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등 수많은 이의가 제기될 수 있다. 이의는 제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상호 간의 이의를 바탕으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는 일방적으로 정책으로 제재를 실행하고자 한다. 우선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차적인 정당성에 하자가 있다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에 대해 국경은 중요하지 않다. 미국의 개인이나 한국의 개인이나 인간이라면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함은 당연하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인권의 전제일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무고한 개인이 인터넷에서 유포되는 불법 촬영 동영상으로 인해 개인의 신체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침해받았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을 떠나 개인의 자유가 침해된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철저하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문제를 처벌해야 한다. 개인의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면 사회적 구조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불법 촬영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것이 개인이라면 그 개인을 처벌하고 재생산하는 주체가 기업 혹은 특정 집단이라면 그 기업과 집단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 내 일부 범죄자들에 의해 가해지는 행위에 대해 사회 전체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우리는 수많은 개인의 자유의 문제에 있어서 그 하위의 차원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를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성, 지역, 계급, 세대, 종교의 차원에서 구분하고 피아를 구분한다. 더 큰 차원에서 다뤄야 할 개인의 문제를 하위의 차원에서만 접근하면 본질적인 해결책은 찾지 못하고 임시방편만 강구하게 된다. 우리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아야 한다.
 오늘날 시행될 https에 관한 온라인상 제재가 어떠한 국면을 맞이할지 우리는 지켜보고 행동하여야 한다. 단순히 ‘음란 동영상을 시청할 권리’가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현실에서 한 개인이 자유를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개인의 자유에 대한 문제이다. 이번을 통해 국가가 개인의 온라인상 행위를 불법 및 음란물에 관하여만 제재한다고 할지라도 앞으로 이 영역이 얼마큼 확장될지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확장된 영역이 우리의 코앞까지 다가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 한번 축소하기 시작한 자유의 영역은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관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껏 우리의 역사가 그렇게 말해주고 우리 인류의 역사가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https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못하느냐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일부분인 가상현실인 온라인상에서 개인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느냐 그 자유가 제한받는가의 인간 개인의 문제이다. 우리는 밀실과 광장 두 공간이 보장받고 온전히 선택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그 누구도 우리의 밀실과 광장을 멋대로 제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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