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를 파괴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면 과연 이 권리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양도할 수 있을까. 즉 타인이 나를 파괴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나를 파괴한다는 것이 결코 건강하지 못 한 삶이라고 해도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살아가야할 것이다. 나는 결코 나의 삶에서 타인이 아니다. 나를 파괴하는 나는 그 파괴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면 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나를 파괴할 권리를 과연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을까.
타인이 나의 삶을 파괴하도록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물론 이때의 타인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생면부지의 타인이 아니라 그럴만한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에 부정적인 사람을 물론이고 긍정하는 자이더라도 그 권리를 타인에게까지 준다고 하면 이에는 부정적일 수 있다. 내가 나를 파괴하는 것은 결국에 내 삶에 책임을 지는 것이지만 그것이 타인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타인은 파괴된 나의 삶에 결코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이는 무책임하고 부조리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파괴되는 사람이 타인에 의해 파괴되고 재구성되는 자신의 삶에서 그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면, 자신의 파괴에서 가치를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아무리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파괴당하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삶의 의미를 파괴에서 찾는 것이 평가할 가치도 없게 느껴질지라도 그들이 그 안에서 살아있는 것을 느끼고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누구보다 삶을 사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즈 사강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떠올려본다면 “생을 느낄 수 있는 한, 나는 타인이 나를 파괴할 권리를 양도할 수 있다”이라고도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