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이해받는 사이에 대하여
유사한 배경을 가진다는 것, 어린 시절을 공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아직 사회의 때가 묻지 않았을 때의 기억을 공유하는 주변 인물들을 생각해 보자. 학창 시절 친구들이 주가 되겠지.
정말이지 희한하다.
내가 다소 엉뚱한 생각을 표현하거나 심지어 조금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더라도, 적어도 그들에게는 이미 이해받고 용서받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인지 말로써 제대로 설명하기는 아무래도 어렵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혹시, 여기저기 다중의 가치들과 혼란 속에 얼룩진 지금의 나보다는 그때의 내가 ‘진짜 나’여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때의 진짜 모습들을 서로 공유하고 기억하고 있는 사이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내가 나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었던 그 시절에, 친하고 깊었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다지 진득한 관계가 아니었던 친구나 지인과도 거의 비슷한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너는 도대체 왜 그러냐 이 x꺄"와 같은 말을 지금 내가 그들에게 한다고 해도, 딱히 기분 나빠하지 않을 것을 안다. 오히려 형언하기 어려운 자신의 본질 자체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굳이 느낌을 묘사하자면 그렇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들이 당장 나의 이런 생각이나 글에다 대고 “아주 그냥 ㅈㄹ을 하고 있네 이거..”와 같은 표현을 한다고 해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다. 아니, 내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미묘한 따뜻한 느낌마저 들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친구는 아니더라도, 유사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누군가의 배경이라는 것은 그가 자라온 지역적, 지리적 환경이나 사회적 입장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배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의 모습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배경이 비슷하다는 것은 각자의 본모습이 만들어진 과정을 공유할 수 있으며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배경이 비슷한 자들이 (태도와 관계없이) 서로 이해받고 있다는 알 수 없는 이 느낌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최선의 설명이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서 만난 사람들은 이런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그냥 아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까워지며 깊이 친해진 사람들까지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친해지고 깊이 사귀기 어렵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물론, 사회 나와서 새롭게 가까워진 사람도 많이 있다.
다만,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기에 배려하고 걱정해 주는 등의 ‘진실된 마음'은 있지만, 배경이 비슷하거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는 지인들과는 그 따뜻함의 결과 색채가 다르다는 것이다.
나의 모자람일 수도 있다.
얼음이 되었다가 강물이 되었다가 물총 속의 물도 되었다가 라면 끓이는 물도 되었다가..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이것들은 모두 함께 H₂O로서 공통된 본질을 일부는 공유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있다면 누구와도 동질감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그저 나는 얼음이오.”, “난 라면용 물일 뿐이오.”와 같은 자세로 살게 된 까닭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물론,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도 여러 차례 그런 변화를 겪었겠지만.
따라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대한다면, 그 태도 자체가 ‘유사한 배경'과 같은 작용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또한, 진득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화학적 결합’이 어느 정도 일어나야 하는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따뜻함 같은 것을 함께 가지려면 말이다.
‘물리적 접촉’만이 주를 이루는 관계가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마치 로또 추첨통 안의 공들처럼 수없이 팅팅팅 맞부딪치긴 해도 결국 너는 너고 나는 나로 끝나고 마는 것 아니겠나.
본질을 나눠본 지인, 친구만이 진실된 인맥이고 나머지는 쓸데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인생 초중반인 이 시점에서, 앞으로의 인생은 새로 알게 되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서로 화학적 교류를 하고 본질을 나누는 사귐을 할 수 있길 바라본다.
그럼으로써, 위에 설명한 정도의 상호 이해도를 갖기는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편의점 냉장고 안의 ‘친한 듯하지만 실상은 서로 뻘쭘하게 서있을 뿐인’ 그런 음료수 페트병들 같은 관계가 되지는 말자.
나부터 달라져 보자.
텅 빈 접촉이 아닌, 진짜 반응을 시작하는 쪽은 내가 되도록 살아가자.
냉장고 안의 병들 사이에서, 내가 먼저 온기를 품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