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넘어서야 나다운 삶이 시작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덫을 벗어날 용기

by 호미오

얼마 전 친한 동생의 고민을 들어주는 시간이 있었다. 그의 부모,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굉장히 보수적이고 꽉 막힌 아버지의 자신에 대한 기대, 거기서 오는 가치관의 충돌과 불화에 대해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언제나 이런 경우에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을 해주곤 한다.

차갑게 들릴 수 있지만,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독립이라고 하면 경제적 독립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독립에 있어 첫 단계가 되는 것이 경제적 독립이긴 하지만 이게 전부라고 보면 안 된다.


부모로부터의 경제적 독립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사실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않고는’ 사상적 독립으로 가는 데 필요한 힘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물과 음식, 생존이 없이는 뭔가를 느끼고 배우거나 미래를 꿈꾸기가 매우 어렵다는 논리다.

그러나 사실, 부모의 ‘사상에 대한 극복’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 중요도는 경제적 독립보다 더 상위에 존재한다.


부모가 우리에게 쌓아 올린 퇴적물에는 유익한 것도 많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인생을 망치는 요소들도 뒤섞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주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토대로 단단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요소들을 잘 발라내어 재소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버릴 것은 벗어던져야 한다.

부모가 준 것이기에 가슴은 아프지만, 본인의 삶을 위해 이겨내고 극복해야만 한다.

이것은 집안과 국적을 떠나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4일 오후 08_11_10.png


경제적 독립이 우선순위에 있어서는 앞서는 것이 맞지만, 경제적 독립을 이룬다고 해서 부모로부터의 진정한 독립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경제적 독립으로 가는 과정 속에서 ‘내면적’ 독립에 대한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엔진 없이 겉면만 광택처리한 차체에 불과한 것이다.

경제적 독립을 최초의 목표로 삼는 것은 아주 건전하다. 그러나 부자 되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의 생존력을 본인 손으로 확보하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건전한 인간으로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 좋은 차를 타는 것보다 중하다. 그것이 사상적 독립이 경제적 독립보다 더 중요한 이유다.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다.

제각기 태어날 때부터 보유한, 그리고 태어난 후에 영향받게 될 환경요소로 인한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선천적, 후천적 장단점은 어디에 가장 크게 기인하는가? 바로 부모이다.

즉, 부모가 보여주는 행동이나 해주는 말, 양육 방식, 태도 등은 자녀들과 당대의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모두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참다운 인간이 될 수 있는가?

경제적 독립을 추구하되 그 과정에서 나만의 사상과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연적으로 물려받은 세계 안에는 감사하게도 부모가 준 장점은 자연히 포함되어 있겠으나, 그 세계를 붕괴시키거나 구축을 끊임없이 저지하는 위험 요소도 존재한다.

그 위험 요소는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생성되었고, 동일한 이름으로 자식들을 지배하며 그들의 인생을 갉아먹는다.

그렇게 주입되어 온 엉터리 요소들이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그런 사례는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이 있다.

따라서 ‘스스로 피땀 흘려 구축해 낸 나만의 사상’이라는 최첨단 필터를 통해 잘 여과하고 극복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상적 독립이 가능하다.


쉽지 않은 과정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삼라만상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세상에서, 부모의 좁은(훌륭하든 그렇지 않든) 가치관 안에 묻힌 채로 꼭두각시처럼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날개를 달고 인간으로서 훨훨 날아볼 것인가.

선택은 개인에게 달려 있다.


부모로부터 벗어나고 독립하라는 것이 부모를 배척하고 미워하라는 뜻으로 오해하는 경우는 없길 바란다.

부모가 우리에게 내려준 정신적 자산에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강점이 있고, 또한 어느 집안보다도 더 못난 구석(이래서 사랑하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집구석'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 같다)도 있는 법이다.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인간으로 태어나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가는 여정에 도전해 볼 기회를 준 부모에게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못난 구석을 발라내는 것에 있어서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부모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되, 그들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을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극복하고 소화해 내는 데 성공한 사람. 나는 훌륭한 사람은 결국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로부터의 건전한 독립을 이뤄낼 때, 비로소 경제적 안정과 정신적 풍요를 모두 얻게 되고 세상을 보는 건강한 눈을 갖추어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나 또한 그를 위해 노력 중이다.

모두가 다른 미래를 꿈꾸며 살겠지만, 대다수의 구성원이 이러한 방향성은 필수적으로 갖추고 살아가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