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잡이 4편 / 내 생각의 순도와 밀도를 높이는 일
불혹이 되었으나, 아직 나의 생각은 명쾌하지 않다. 삶에서 여전히 답답하고 막막한 측면이 더 많다.
확실히 내면이 깊어진 것 같긴 한데, 정말 그런지 증거는 없다.
책을 먼저 잡는 이유는,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미궁 속에 빠져있는 듯한 이 생각을 바로 붙잡기 위해서다.
예전과 지금은 내 독서 방식과 목적이 다르다.
과거, 나의 독서는 우리 사회에 장기간 드리워진 주입식 교육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학생 때 여러 교과 과목에서 배우는 내용은, 마치 세상과 인생에는 정답이 있어서 그것만 잘 익히고 행하면 좋은 인생이 따라오는 거라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독서도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책을 한 권, 두 권 계속 볼 수록 정해진 하나의 정답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인생에는 하나의 정답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다른 답을 가질 수도 있고, 같은 사람이라도 찾아낸 답을 조금씩 변경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불혹을 불과 몇 해 앞두고 깨달았던 것이다.
주입식 교육 탓일까, 내 모자람 때문일까.
이제껏 내가 가져왔던, 아니, 내 것이라고 여겼던 생각들이 사실은 내가 나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온전한 ‘내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1개의 정답, 1개의 출구만을 추구하며 현재의 행복을 ‘언젠가'로 유보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말 다행이다.
그럼 독서의 방식은 어떻게 바뀌었나.
예전에는 마치 교과서 보듯이 쭉 읽고 끝이었다.
“책을 열심히 본다”라는 것은 아마도 “교과서를 통으로 씹어 삼키듯"이라는 옛 표현이 주는 뉘앙스와 비슷했던 것 같다.
저자의 의도를 곱씹으며 책의 내용과 소통한다는 측면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책을 법전처럼 생각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제는 독서 방식과 태도에 있어서 개선의 필요성을 알았고,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
읽는 과정에서 의문을 품어 보고, 읽고 나서도 끊임없이 질문을 이어간다.
책의 도움을 받아 나만의 문장을 만들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쌓아간다.
불혹에 제대로 시작한 독서는 세상에 대한 나의 ‘해석력'을 길러주고 나를 표현하는 ‘재료'를 쌓아주는 루틴이 되었다.
지금 나에게 독서란, 단순한 ‘지식의 수용'이 아니라 ‘생각하는 루틴'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해석과 재배열의 과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
불혹잡이에서 ‘생각을 붙잡는다’는 것은 누가 시키는 삶, 타인이 정한 답을 따르는 맹종이 아닌, 내가 기준이 되는 삶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책을 통해 배운 세상의 원리에 내가 몸으로 직접 살아내는 삶의 경험을 연결해 나갈 것이다.
지식의 습득만이 주요 목적이 되는 독서는 이제 하지 않는다.
세상이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어서 세상이 있다는 새로운 형태의 배움이 시작된 것이다.
불혹이 된 이 시점에서, 나는 이제라도 내 생각의 주인이 되려 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책이다. 독서가 내 생각의 순도와 밀도를 높여줄 것이다.
세상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고 내 방식으로 소화하는 절차가 독서라면, 그를 통해 빚어낸 지혜와 깨달음을 표현하는 행위도 필요하다.
읽기와 쓰기가 함께 교차될 때 세상과 나의 소통도 쌍방이 된다.
또한, 생각한 것은 쓰는 과정을 거쳐야지만 온전히 내 것이 된다.
그래서 나는, 책 다음에 ‘펜’을 잡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