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 이제는 내가 나를 쓴다

불혹잡이 5편 / 생각이 글이 되는 순간, 나는 주인이 된다

by 호미오

펜을 잡는다”라는 표현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담고 있다.

내가 ‘불혹잡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40세를 기점으로 더욱 진취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내겠다"라는 태도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잡다'라는 동사가 불혹뿐만 아니라 펜에도 사용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는 왜 펜을 잡고 싶었을까?


책을 읽으며 얻은 간접 경험으로 내면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야만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말로 풀어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무언가를 자기만의 언어로 꺼내 표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자기 안에 녹아든 지식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지식이나 깨달음을 자기화하기 위해서는 얻어낸 내용을 직접 표현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방식의 표현이 가장 적절할까에 대한 고민도 뒤따르게 된다.



글쓰기를 선택한 이유


표현 방식에 딱 정해진 답은 없다고 본다.

나는 말로 풀어내는 방식을 가장 선호한다. 내성적이었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쭉 그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생들의 공부법 관련해서도 ‘배운 것을 친구에게 설명해 보는 것'이 확실한 개념 이해를 위한 탁월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 어떤 것을 이해하거나 이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라는 방법을 사용한 건 아니었다.

생각한 것을 바로 전달할 수 있다는 즉흥성, 그리고 표정, 몸짓, 말투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표현의 풍성함 때문에 말하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순간적으로 재치 있는 표현을 외부로 출력하기 위해서는 말로 내뱉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말하기에는 큰 단점이 있다. 한 번 내뱉은 것은 주워 담기 어렵다는 것.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한 사람 5명만 떠올려 보자. 그들 중에 한 번 잘못 내뱉은 말 때문에 고역을 치른 경험이 있는 사람이 2,3명 이상은 될 것이다.

소리로 세상에 뿜어진 말은 그 원본의 삭제가 불가능하다. 매우 효과적이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한 것이다.

이름나지 않은 일반인의 경우에도, 말이 주변의 오해나 미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면 글쓰기는 어떤가? (표현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말과 글 두 가지로 좁혀서 생각해 보겠다.)

글쓰기 또한 문자로 남겨지기에 주워 담기는 어렵지만 수정의 여지는 있다. (종이 편지가 아닌 이상)

애초에 오해를 사지 않는 현명한 글쓰기를 해야겠지만, 방법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글쓰기의 경우 소리나 표정 등의 요소를 가미할 수는 없지만, 충분한 시간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해서 담을 수 있기에 깊이 있는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한 가지 더 들어보자면, 글쓰기는 여러 매체를 통해 내 생각을 널리 알리고 소통하는 데 유용하다.

말한 것도 녹음하거나 촬영해서 전파할 수 있지만, 유튜브와 같은 영상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서는 글만큼 큰 확장력을 갖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나는, 이해를 위해서든 소통을 위해서든 가장 좋은 표현 수단은 글쓰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생각은 불혹이 가까워져서야 강하게 자리 잡았고, 펜을 잡고자 하는 마음의 시작점이 되었다.



쓰는 것의 힘


읽거나 본 것, 생활 속에서 깨달은 것 등을 글로 적어 보는 것. 이것은 정말 큰 힘을 갖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베끼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언어로 풀어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세 들어 사는 것과 직접 꾸민 내 소유의 집에 거주하는 것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글쓰기를 여러 해 동안 실천하고 있지만 불혹의 이 시점에 이르러서야 그 방식이 더 탄탄해지는 느낌을 받고 있다. 역시 뭔가를 잡아보고자 하는 진심은 통하는 것 같다.


위에 간단히 언급하긴 했지만, 불특정 다수와의 소통에 가장 적합한 것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90년대의 PC통신, 그리고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가 떠오른다. 직접 만나서 악수하며 인사하지도 않았음에도 서로 공감과 의견이 오고 가는 그 연결된 느낌.

처음 경험한 새로운 형태의 소통이었다. 그전에는 이런 방식이 가능했던 적이 없었기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설렘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의 우리는 글로 소통을 했다. 짧은 대화글도 있었고 신문 기사보다도 긴 장문의 글도 있었다.

글자와 문장을 통해 사람들은 의견을 나누었다. 공감이든 비판이든 관계없이 우리는 글로써 가장 많은 소통을 했고, 그를 통해 모두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그동안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이 있었고 그에 따라 많은 플랫폼도 생겨났지만, 글을 통해 소통하는 방식은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다.



글은 영원히 남는다


펜을 잡은 또 한 가지 이유는, 남기고 싶어서다.

말은 떠나버리지만, 글은 남는다.

인간은 누구나 창작의 욕망이 있다. 그것이 언제 어떤 식으로 발현되느냐가 다를 뿐.

자식을 낳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나는 언젠가 사라지지만 나의 분신 같은 것을 세상에 영원히 남기길 원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인 것이다.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 글쓰기다. 쉽게 시작할 수 있으면서도 점진적으로 깊이를 더해갈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의 축소된 형태가 정리정돈인 것처럼, 내 안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단순하게라도 써보는 것에서 창작은 시작된다.

그렇게 생각을 짧게 써보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긴 호흡의 글쓰기까지 도전하게 된 지금이, 나는 만족스럽다.



펜을 고쳐 잡다


학교에서 시켜서 일기를 썼고, 리포트를 제출했고, 회사에서 시켜서 보고서를 썼다.

그 안의 내용 자체에는 온 마음을 담았지만, 그때 펜을 들었던 최초의 이유는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다르다.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점점 깨달아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요인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마음먹고 펜을 잡았다는 것이다.

내 손으로, 내가 직접 구한 펜을 잡아, 내 방식대로 써내려 갈 것이다.

그리고 꾸준히 쓰는 과정 속에서 나를 채워나가는 것은 물론, 세상의 많은 이들과 의견을 나누고 함께 성장할 것이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18일 오후 10_35_23.png



책과 펜, 이 두 가지는 불혹을 내 힘으로 잡아내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이 삶을 후회 없게 만들 값진 도구들이다.

정리된 생각의 적극적인 자기화와 표출을 통해 꾸준한 발전을 이룰 것이다.


오늘도 한 번 외치고 마무리 짓고자 한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지만, 흔들림 속 중심은 내가 직접 잡는다.”



읽으며 내면을 넓히고 쓰면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시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불혹잡이의 다음 대상은 ‘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