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잡이 상차림 : 내가 고른 삶의 물건들

불혹잡이 3편 / 나는 어떤 것을 잡을 것인가

by 호미오

무엇을 잡을 것인가, 다시 묻다


40년 전 내가 잡은 것은 “내가” 잡은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상 위에 올라갈 물건들은 누가 정했나.

어떤 것들이 상 위에 올라갈지 몰랐기에 무엇을 잡을지도 몰랐다. 어떤 것을 잡으라고 의도되었을 뿐이다.


이제는 다르다.

불혹을 맞이한 지금, 나 스스로 불혹잡이 상을 차린다.

그 위에 올라갈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잡을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정한다.


돌잡이가 ‘아이의 성공적인 인생’이라는 미명 아래 “무엇이 되어라”라고 기원하는 수동적 의식이었다면,

불혹잡이는 자신의 전체 일생에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무엇을 잡겠다"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적극적 의지의 표명이다. 이것은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장기 프로젝트다.


자 그럼, 무엇을 잡을까?

내 하나뿐인 삶을 위해 이 세계로부터 무엇을 붙들고 싶은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내 나름의 상을 차려보았다.



상차림을 한 번 펼쳐보자


나는 상 위에 열 가지 물건을 올렸다.

책, 펜, 시계, 마이크, 거울, 씨앗, 열쇠, 항아리, 나침반, 편지.

이것들은 내가 지금 붙들어 잡고 싶은 것들이다. 새롭게 시작되는 인생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 손에 쥐고 싶은 것들이다.

순수한 나의 의지로 차린 이 상차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간략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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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생각이다.

누군가가 주입한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내가 해석하고 내가 걸러내서 나만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과정. 메타사고를 갖추기 위한 훌륭한 도구이다.

이것을 통해 나는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폭을 넓히고, 그와 더불어 나와 세계의 융합을 이루어 갈 것이다.


"은 나의 말이다.

비판적 사고를 기반으로 책을 읽으며 메타 사고를 형성하였다면, 나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필요하다.

Input 뿐만 아니라 Output도 있어야 ‘소통'이 가능하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집단이든 나 자신이든, 어느 경우라도 그렇다.

생각을 밖으로 꺼낼 때 창조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가적인 창의성이 발현되기도 한다.

“책"과 “펜”, 그러니까 “생각과 말"의 조화로운 반복 속에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시계"는 내가 원하는 삶의 리듬이다.

도시 한복판에 있어도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삶의 박자에 압도되지 않아야 할 것이며, 시골에서 한가함을 즐길 때에도 나만의 생활 리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건강한 루틴의 확립으로 가능해진다.


마이크"는 이제 내가 말할 차례라는 신호다.

40년 동안 나름의 사유를 키우며 살아왔다. 이제는 내 안에 쌓인 것들로 세상에 도움을 줄 차례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때가 왔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깨달음을 전파하자.

그리고 가끔은, 흥을 노래로 뿜어내는 것도 잊지 말자.


거울"은 내가 나를 마주하는 용기다.

남에게 보여지는 나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이다.

언제나 나 자신에게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런 나를 잃지 말자.

내가 원하는 나의 정체성을 건강한 습관과 루틴으로 지켜나갈 때, 거울 앞의 나는 언제나 멋진 모습일 것이다.


씨앗”은 작게 시작하지만 반드시 크게 자라나는 삶을 믿는 마음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나의 객관적 크기보다는 내일, 다음 달, 내년의 나와 비교하는 성장의 삶을 살아간다.

작은 것들을 꾸준히 지켜나갈 때, 원하는 모습 그 이상으로 커진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씨앗은 오늘을 심고 내일을 기다리는 복리의 시작점이다.


열쇠"는 아직 열지 않은 나의 가능성이다.

“책"과 “펜"을 통해 사유와 표현의 융합을 이루면서, 이미 내 안에 엄청난 가능성이 존재함을 깨닫는다.

다채로운 방식과 여러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열쇠로 이 가능성의 문을 연다.

그리고 이 열쇠는, 남이 아닌 내가 쥐고 있는 삶의 통제권이기도 하다.


항아리"는 내가 스스로 익어가는 시간이다.

항아리는 발효의 공간이다. 식초, 간장, 술 등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유익균의 공간.

나라는 존재뿐 아니라, 신체에 유익한 균을 실제로 발효하는 인생을 살 것이다.

존재가 깊어질수록, 발효 음식들도 그 맛이 깊어져간다. 정신과 신체가 함께 익어간다.


나침반"은 길을 잃어도 돌아갈 수 있는 나만의 중심이다.

불혹의 진정한 의미는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삶의 수많은 변수 속에서도 나의 기준으로 방향을 잡는 루틴과 내면 설계의 상징이다.

그리고 나침반은 내가 매일 확인하는 삶의 루틴이기도 하다. 이것으로 나의 정체성을 강화시킨다.


편지"는 말보다 진한 진심의 기술이다.

말로는 다 못 할 진심을 다른 색채로 표현하는 방식이자, 나의 감정과 애정을 지워지지 않게 남기는 방법이다.

편지는 나의 삶에 연결된 사람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남기는 행위를 가능하게 해 준다.

나의 마음은 편지를 통해 그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며, 내가 따뜻한 마음으로 더불어 살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것이 나의 불혹잡이 상차림이다.

누가 대신 차려준 것도, 미리 골라준 것도 아니다.

이제 나는 이 상에 차려진 물건들 하나하나에 깃든 삶을 붙들며 주도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내가 붙잡기 시작한 물건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불혹잡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알아보자.

책으로 시작하려 한다. 나는 왜 책을 가장 먼저 잡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