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히지 않고 잡는 삶 : 불혹이란 무엇인가

불혹잡이 2편 / 흔들림 속 나만의 중심

by 호미오


불혹이 되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마흔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불혹이란 말이 왜 불편했을까


흔들리지 않고 혹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 불혹에 접어들기 직전에.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면 몇 년 전과 30대 초반, 20대에는 어땠을지 말해 무엇하랴.


나는 불혹이라는 단어가 불편했다. 분명 시간이 흐르면 몸이 커지고 다리가 돋아난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개구리로 변하지 않아서 불안한 올챙이 마음이 이랬을까. 복잡한 세상과 여러 가치들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내가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어떤 힘 같은 것이 자동으로 내 안에 생겨날 줄 알았다.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오는 2차 성징처럼.

그런데 40이 되어도 그 불혹이라는 3차 성징은 찾아오지 않았고, 흔들리지 않기는커녕 더 많이 망설이고 더 많이 부딪치고 있었다. 불혹은 마치 ‘이미 완성된 사람' 만이 얻는 칭호처럼 들렸다. 그래서 불편한 단어로 인식했던 것일까.



불혹의 진정한 의미


공자는 『논어』 「위정」 편에서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이라 했다. 마흔이 되면 세상의 유혹이나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미혹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말 그대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뜻일까.


알고 보니, 여기서 “미혹되지 않음"은 무감정이나 완성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질문에 대해 나 스스로 대답할 수 있게 되는 상태"였다.

불혹은 동요 없는 수직적 신념이 아니다. 진짜 불혹은 “흔들리되 중심을 잃지 않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흔들릴지언정 스스로 방향을 잡고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가는 것이 불혹의 중요 포인트이다.



미혹 속의 나


30대의 나는 미혹과 혼돈 속에 있었다. 20대는 성인으로서의 걸음마 단계였으니 말할 것도 없다.

나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한 것들도 많았지만, 내 안의 깊은 곳에서는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하는 (남들이 보기에) 특이한 결정을 내린 적도 있었다. 답을 정해 놓고 그대로 살라 하는 사상에 반대한 것이 기특하긴 하나, 내면세계에서는 온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하였다. 발버둥 치다 포기하고 복종하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사회가 정한 기준, 그 기준에 맞게 살았을 때 갖출 수 있는 성공의 이미지, 그에 대한 타인의 기대, 부모의 전통적 기대… 나는 그저 그 사이에서 붙들린 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잡는 삶이 아니라 철저히 잡히는 삶이었다. 첫 돌잡이 때처럼.



내가 기준이 되는 삶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딱히 크게 이룬 것 없이 40을 맞이했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그 생각에 문제의 답이 있었다. ‘딱히 크게 이룬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아직도 타인의 기준이나 사상에 비추어 나를 해석하는 버릇이 남아 있는 흔적이었다.


다행히도, 그에 대한 돌파구도 저 문장 안에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나는 20대 때부터 ‘나름대로'가 많았던 사람이었다. 문과, 이과에 대한 선택도, 대학교 전공도 내가 내 기준에 따라 선택했으며, 군대 입대도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시점도, 대다수의 또래와는 아주 다른 선택을 했었다.

단지 그런 행동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원동력을 온전히 나만의 그것으로 형성하지 못했을 뿐인데, 지금 보니 어른들이 정해 놓은 길을 너무 신경 써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만의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당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결국, 나름대로 살아낸 그 시간들이 결국 나를 나답게 만드는 기준이 되어주었다. 그 ‘나름대로'를 반복하는 동안 내 안의 중심 기둥이 튼튼하게 자리 잡았던 것이다.



흔들림 속에서도 내가 직접 손을 뻗는다


지나간 과거는 추억의 장으로서 감사의 마음과 함께 마감하겠다. 이런저런 아쉬움이 있겠지만 모두 뒤로 하고, 이제 나는 밀레니엄 세대 초반 출생자로서 새로운 스타일의 불혹 시대를 열어보려 한다.

이제는 타인이나 세상이 만든 가치가 아니라 내가 기준이다. 잡히지 않고 내가 잡을 것이다. 무엇을 잡을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누가 잡을 것인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흔들리는 방향”을 내가 정할 것이다. 흔들린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수동적으로 흔들리는 것이 문제인 것이니까.

그리고 흔들림 속의 중심도 내가 정한다.

이제 나는 나의 기준으로 나의 인생을 오밀조밀 알차게 채워나갈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단단히.




이제는 내가 나를 위해, 조용히 불혹잡이 상을 차린다.

상 위에 어떤 것을 올리고, 어떤 것을 내려놓을까.

나만의 신개념 불혹잡이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불혹 전후의 당신, 당신의 상에는 무엇을 놓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