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잡이 1편 / 이번엔 내가 직접 잡는다
첫 번째 생일, 돌잔치.
가족의 환한 얼굴들 사이로 작은 손이 뻗는다. 아이 앞에는 크고 작은 물건들이 놓여 있고,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바라본다. 그 손이 무엇을 향할지. 그 순간, 누구나 한 번쯤은 속으로 묻게 된다.
“이 아이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돌잡이는 아이가 돌을 맞아 처음 맞이하는 상징적인 ‘선택’의 의식이다. 아이의 앞날을 미리 점쳐보는 일종의 미래 예측 놀이로, 오랜 시간 한국의 가족 문화 속에 자리해 온 풍속이다.
과거의 돌잡이에서는 아이가 잡는 물건에 따라 장래의 직업이나 성향을 점치는 의미가 있었다. 붓이나 책, 종이처럼 학문을 상징하는 물건은 학자의 길을, 화살은 무인의 기질을 암시했다. 여자아이에게는 자, 바늘, 옷감처럼 집안일과 관련된 물건이 주로 놓였다. 돈, 곡식, 실꾸러미, 국수 등은 부귀, 장수, 풍요를 의미하며 성별에 관계없이 항상 포함되는 상징적 물품이었다.
이런 전통은 단순한 예측을 넘어,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부모의 염원과 가치관이 담긴 이벤트였고, 마을 공동체가 함께 축복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쌀, 실, 붓, 돈 등 한정된 물건을 통해 아이의 건강, 장수, 학문, 부를 기원하는 의례적 의미가 강했으나, 오늘날에는 부모의 가치관과 바람이 돌잡이 물품 선정에 더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전통적인 돌잡이 아이템에서 벗어나, 디지털 시대를 상징하는 코딩 교구, 예술 도구, 마이크, 축구공, 마우스, CEO 명패 등 현대적이고 개성 있는 물건을 올려놓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대에는 부모가 아이에게 원하는 인생의 모습이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자기 힘으로 밑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원하는 정답을 먼저 제시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나도 1세 때 그와 마찬가지였다. (기억이 난다면 거짓이겠으나 들어서 안다.)
내가 자유롭게 돌잡이를 했다기보다는 집안 어른들이 생각하는 "성공한 삶, 윤택한 삶"에 가까운 물건을 내 앞에 의도적으로 두었던 것이다.
물론 그 시절의 문화로 볼 때 아이를 위한 좋은 의미라 여겼겠지만, 좋은 삶과 좋지 못한 삶에 이미 정답을 내려둔 문화권 속에서 자라왔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그것의 출발점이 돌잡이였던 것은 분명하다. 아무거나 잡아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삶을 시작한 것은 다름없는 사실이다.
나는 지난 수요일(4/30)에 퇴사하여 공교롭게도 그다음 날인 근로자의 날부터 근로자가 아니게 되었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40세에 퇴사와 홀로서기를 결정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고, 앞으로 더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빠른 시점은 아니지만, 불혹에도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어 또 다른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그를 위한 올해의 첫 발걸음과 도전들을 "불혹잡이"로 명명하고 그 과정을 공유하려 한다.
불혹(不惑)이란, 공자의 말처럼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여기저기 미혹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 또래라면 밥벌이야 스스로 잘하고 있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아직 미혹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고 하기에는 실제로는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임을 솔직히 인정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혹이라는 시점 위에 서 있는 우리는, 이제는 더욱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갖춰야 할 때임을 자각해야 한다. 다른 누군가가 잡아주고 선택해 주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세운 기준에 따라 선택하고 부딪치고 붙드는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아이에게 주어진 첫 선택의 순간이 돌잡이라면, 마흔 즈음의 우리가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불혹잡이의 시작이다. 나는 지금 어떤 것을 잡고 있는가. 무엇을 잡을 것인가.
이제는 남이 내 앞에 놓아주는 물건이 아니라, 내가 나의 삶 앞에 올려놓은 선택지들 속에서 무엇을 집을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나이다.
불혹잡이는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중간지점에서 다시 한번 나의 방향을 성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잡아보려는 의식이자, 마흔의 내가 다시 나를 향해 손을 뻗는 의식이다. 누가 차려준 상이 아니라, 내가 구성한 삶의 상차림에서 골라서 재구성하는 자주적이고 경건한 활동이다.
더 이상 미혹되지 삶,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 삶. 이제 시작하자.
돌잡이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불혹잡이는 어른으로서 진지하고 희망차게.
지금 내 앞에 놓인 삶의 재료 중, 나는 무엇을 집을 것인가. 무엇이 더 나답게 사는 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