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 우주가 선택한 나만의 가능성

불혹잡이 9편 / 나를 닮은 씨앗만이 끝내 나무가 된다

by 호미오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든 필연적으로 포함되는 속성이 있는데, 그것은 ‘잘 살아가는 것'이다.

잘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종류의 ‘잘 살아감’에도 공통점이 있다.

평생에 걸쳐 꾸준히 뭔가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단순한 의식의 일환으로 특정 행동을 지속하는 경우도 있고,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목적을 세우고 점진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꾸준함도 있다.

원대한 목적이거나, 그와 반대로 사소해 보이는 작은 목표일 수도 있다.

원하는 역량을 키워나가는 데 뜻이 있을 수도 있고, 현재 수준을 유지하려는 의지일 수도 있다.

행위의 종류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고, 계속하는 힘은 잘 살아감으로 이어진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떤 목적과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식상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꾸준히 키우고 가꾸기 위해 심어둔 씨앗이 하나쯤은 있다는 것,

그리고 불혹의 나이에도 씨앗을 새로 심을 수 있고, 그 씨앗에도 여전히 싱그러운 싹이 돋아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불혹잡이는 씨앗을 심는 의식이다.

마트에 파는 씨앗이 아니라, 스스로 기획하고 설계한 나만의 씨앗을 심는 거다.

그저 숨만 쉬며 살지는 않았고 30, 40년의 시간이 그리 짧지만은 않기에, 우리는 모두 남과는 다른 고귀한 경험이 있다.

나름 긴 시간 동안의 개인적 서사가 잘 버무려진 씨앗. 이 씨앗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


나만의 씨앗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살게 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게 한다.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게 해 준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사회에 효익을 제공하고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를 만든다.

비바람 몰아치듯 힘든 시기에는 흔들리되 쓰러지지 않게 뿌리로 단단히 잡아 준다.

그런데 이렇게 단단한 뿌리는 나만의 씨앗을 심어야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씨앗은 누가 대신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만들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학생 개인마다 자기만의 씨앗을 만들어내고 심을 수 있도록 리드하고 도와주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씨앗을 직접 만들어주는 사회는 없다. 각자 스스로 만들어야만 한다. 누구도 대신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국가에서 제공하는 교육이 그것을 ‘강력하게'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선진국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준비'에 특화된 시스템을 교육이라 부르고 있다는 것, 이 오랜 고질병이 몇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다만, 나는 말하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비판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내 살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여기서 말하는 살 길이란 그저 단순히 ‘돈 벌기', ‘남보다 위에 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온전히 나로서 살아가기'를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올바른 방식으로 받지 못했던 그 진짜 교육을, 이제 내가 나에게 스스로 제공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진정으로 탐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회에서 바라보는 나, 이웃이, 친구가, 친척이, 가족이 바라보는 나,

이런 시선들은 아예 무시할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고려해야 할 것도 아니다.

많은 경우에, 나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너의 씨앗'이라고 하면서 쥐어주는 것들은 오히려 진짜 내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자주 부대끼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내 안의 우주를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기성 상품과도 같은 씨앗을 심고 물을 줘도 싹이 트기는 어렵다.


내가 나를 알아야 한다.

살아오면서 결핍으로 느꼈던 것, 즐거웠던 것, 뿌듯했던 일, 객관적으로는 별 것도 아닌데 나를 무척이나 설레게 했던 것, 나름 잘하는 것, 잘하고 싶은 것, 가만히 있어도 계속 관심이 가는 분야 등…

날을 잡고 이런 것들을 철저히 분석해 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1,2주 만에 끝낼 수 있는 과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몇 년이 걸리는 중이다. 누군가는 몇 달 만에 끝낼 수도 있겠지만 그리 단순한 작업은 아니다.

그런데 그 효과는 반드시 행복감과 충만감으로 이어진다. 찬란한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 속에서 이미 충분한 효익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많은 경험 사례들이 있다. 우리가 보는 사회에는 항상 결과만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들은 숨겨진 채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다만, 큰 주의사항이 하나 있다. 이 과정을 거치려 결심하고 실행하는 단계에서 수많은 방해물이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 하는 말일 수도 있고, 그 사람 자체일 수도 있다. 그것을 잘 이겨내야 한다. 어렵지만 해낼 가치가 있다.


쉽지는 않지만, ‘내 진짜 인생'을 얻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씨앗을 획득해야 한다.

그 씨앗은 내 우주의 생육 환경에 맞는 씨앗일 것이다. 아무 씨앗이 아니라 바로 나만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나는 불혹이 다 되어서야 나만의 씨앗을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열심히 심고 있다.

회사에서는 내가 나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곳을 벗어나 내가 주인공인 인생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왜 10대, 20대에 진즉 씨앗을 만들지 않았을까 자책과 후회의 마음도 종종 찾아온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씨앗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지금이라도 제대로 인지한 것에 감사하다. 씨앗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것, 아니, 씨앗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도 정말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심어둔 씨앗에 꾸준함이라는 물을 주며 정성으로 잘 보살피고 있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싹이 트고 줄기가 날 것임을, 인생의 끝자락에는 높고 큰 나무가 될 것임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만이 아니라 커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가 되는 인생을 살게 된다.

속이 꽉 들어찬 단단한 나무처럼.


돌잡이를 거쳐 건강한 유아기를 보내고 사춘기를 견뎌 성인으로 나아가듯이, 불혹잡이를 성공적으로 잘 해내서 내게 주어진 이 소중한 인생을 춤추듯 신나게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에도 유익함을 주는 보람된 인생이 자연히 찾아오게 된다.


씨앗은 오늘을 심고 내일을 기다리는 복리의 시작점이다.

작은 것들을 꾸준히 지켜나갈 때, 원하는 모습 그 이상으로 커진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하루의 나이테를 조금씩 채워 넣으며 내가 만든 나만의 인생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