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 ‘화(火)’방

화를 끓였던 나, 화를 알아채다

by 이불

(그림 설명) 마음의 집, 처음



나는 겉으로는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속에서는 종종 끓고 있었다. 나조차도 내 안의 화를 감지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들키지 않으려고 조용히 달래고, 아무일 없는 듯 행동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나는 내가 ‘화’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달라졌다. 반복되는 육아와 집안일에 지친 나는, 그에게 지시하는 듯 말하는 일이 잦아졌다. 말만 잘 통하면 금방 끝날 일이었지만, 자주 어긋났다. 왜곡과 오해, 서로 다른 상상들이 엉켜 싸움은 삽시간에 번졌다. 마치 정해진 코스를 도는 듯한 싸움이었다. 이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 그 시작은 '나'여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화(火)’방의 처음을 기억한다. 그 방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시절, 우연히 방문이 열렸다. 안은 깜깜했고, 바닥에는 작은 불씨 하나가 꺼질 듯 말 듯 일렁이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방 안으로 뛰어들어 간신히 불씨를 살려냈다. 불씨가 살아나자 방 안이 서서히 환해졌다. 지붕은 반원 모양으로 둥글었고, 작은 불씨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유리관 안에 조심스레 보관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화’을 처음 마주했다.

나의 화를 키운 건 ‘전쟁'이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화면 속 불길은 내 집까지 번져올 것 같았지만, 현실은 조용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간극에서 무력한 나 자신이 더욱 밉고 화가 났다.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친구들에게 메일을 쓰는 일이었다. 두렵고 슬프다고,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작은 몸짓이었지만, 그것이 내 불씨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작은 불씨는 연일 내 마음을 지폈다. 교사가 되어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더 뜨거워졌다. 세월호 사건이 그랬다. 부아가 치밀고, 분노는 슬픔과 뒤엉켜 끝없이 번졌다. 나는 슬픔방과 화방을 오가며 하루를 견뎠다. 노란 리본 하나를 달고 다니는 일조차 버거웠지만, 그마저도 이 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감정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감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화’를 마주하는 일이 불편한 것일 뿐이라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이 불편함을 내가 가지고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화방에 잠시 머물러 보기로 했다.

화는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어린 시절, 나는 늘 화를 끓였다. 시원하게 터뜨리지 못한 채 속으로만 삼켰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의 기억은 희미하다. 다만 누군가의 화가 남긴 장면만은 오래도록 괴롭게 따라다녔다.

특히 아버지의 화였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아버지는 자주 화를 냈고, 불길은 주로 엄마를 향했다. 엄마 뒤에 숨어 있던 나는, 그 불꽃을 마치 내 몫처럼 받아들였다. 피할 힘이 생긴 뒤에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화방에는 ‘아버지’라 적힌 장작들이 있었다. 크고 무겁고, 쉽게 불이 붙었다. 그 장작들이 활활 타오르면 방 안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뜨거워졌다. 매번 엄마와 함께 달려가 불을 지폈다. 타죽을까 두려운 순간도 있었다.

그 두려움은 나도 모르게 내 일상 속 '화'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처럼, 나의 화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기도 했다. 나는 이 불씨를 없앨 수도, 애써 꺼버릴 수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래서 멈추어야 했다. 나를 짓밟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치기 하기 전에.

그래서 나는 화방에 눌러 앉아 불을 바라보기로 했다. 화가 났다면, 그 화가 어디서 왔는지,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살피며 잠시 시간을 벌었다. 그것이 들불처럼 번져가는 억울함과 원망 속에서 내가 택할 수 있는, 나를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화’방에 심지를 박았다. 언제든 피어오를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스스로 끌 수 있도록. 불을 피우는 것도, 끄는 것도 이제 내 몫이 되었다. 이 방을 가꾸는 일은 내 삶을 조금씩 바꿔놓았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랬다. 드라마처럼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내 변화를 아버지가 알아챈 듯했다. 가방을 들어주며 함께 걷는 아버지,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는 아버지. 그런 작은 화답은 나를 절망에서 끌어냈다.

‘화’를 키웠다는 건 크기를 불린 것이 아니다. ‘화’를 돌보고, 가꾸고, 받아들이는 연습이다. 내 안의 화를 잠시 들여다보고, 함께 머무는 시간. 마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것처럼. 나는 그렇게 화방을 지켜왔다.

나는 여전히 화가 나고, 두렵다. 두려움을 알아챌 때마다 머리가 하얘지며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런데 느닷없이 발견한 책상 위 노트와 펜이 나를 화방 안에 앉힌다. 꺼지지 않는 작은 촛불을 지키며, 오늘도 마음의 집을 돌본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향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작은, 그러나 분명한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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