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의 얼굴을 마주하며 : 감정을 인식한다는 건
(그림 설명) 사과와 눈물. 감정을 마주하기
나는 평소 ‘화’를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겨왔다. 화를 내는 사람 옆에만 있어도 기분이 가라앉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날벼락처럼 화를 맞은 날이면 하루 종일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화를 낸 날조차 '어서 이 기분이 사라지면 좋겠다’라고 바라곤 했다. 그래서 ‘화'는 겪고 싶지 않고 피해야 할 감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는 ‘화’를 어렵지 않게 접한다. 특히 운전대를 잡으면 짧은 시간 안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사람들을 쉽게 본다. 나 역시 남편과 차를 타고 나가면 그렇다. 평소엔 화를 잘 내지 않던 남편도 운전만 하면 달라진다. 옆 차가 교통규칙을 어기는 순간 빵 크락션이 한 번 울리고, 모른 척하거나 오히려 성질을 낼 때는, 빵빵, 하고 소리가 도로 위를 흔든다.
‘똑바로 운전하라’는 말대신 크락션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거리를 울리는 경적은 마치 싸움이 난 듯 하지만, 차 안에서는 ‘이번엔 내가 한 번 참고 간다’는 속말이 들리는 듯하다. 사실 경적을 울린 사람은 화가 났다. 그러나 그것이 습관이 되면서, 자신이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
운전대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반복된다. 아이가 잘못을 하면 혼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조언과 가르침은 종종 화로 변한다. 힘이 없는 상대에게 감정을 제어하지 않고 쏟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부모가 화를 내는 것은 개인의 성격뿐 아니라 힘의 구조 속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부모 자신에게 잘 인식되지 않는다.
나는 젊은 시절 아버지와 심리적 충돌 속에서 대화하기가 어려웠다. 일방적인 화에 주눅 드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불씨들은 일상을 겉돌다 불현듯 터지곤 했다. 아버지와 내가 함께 불이 붙으면 큰 폭발로 이어졌다. 그 경험은 오래 남아, 내가 교사가 된 뒤에도 아이들을 대할 때 불쑥 떠올랐다.
그래서 뜨겁게 타오른 ‘화’는 오랫동안 내 삶의 화두였다. 많은 시간을 휩쓸고 다녔지만 정작 그 실체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그 모습이 드러났다. 아이들을 좋아했지만 동시에 두려웠다. 내 말과 행동이 아이들을 통과하지 않고, 날카롭게 아이들을 향해 꽂힐 때면 가슴 한구석이 아렸다.
가르치려는 열정과 노력은 힘을 쓸수록 불같이 번져 감당하기 어려웠다. 교실에서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이 반가우면서도 두려웠다. 그 두려움 때문에 나는 공부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흘러가는 ‘화’를 멈추기 위해, 감정이라 이름 붙여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우리는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일을 넘어, 감정을 말하기 위한 길이 필요했다. 그것은 나와 너를 잇는 대화의 길이었다.
육아는 그 깨달음의 실전 편이었다. 갓난아기를 재우느라 밤을 꼬박 새운 날이면, 작은 일에도 시도 때도 없이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그 이유를 엄마나 남편의 말과 행동에서 찾았고, 둘째가 태어난 뒤에는 첫째의 방해가 그 화살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정신이 차려진 건, 서럽고 뜨겁게 흐르던 울음들이 서서히 차갑게 식어갈 즈음이었다.
아이는 자라고 있었다. ‘엄마 나 여기 있어. 내가 보이지?‘ 하고 말을 거는 아이 덕분에, 나는 눈물을 닦고 그 얼굴을 또렷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존재 대 존재로 마주한 순간, ‘화’는 흐르던 길을 멈추었다. 그것은 분명 내 것이었다.
육아를 하면서 ‘화’를 내는 나를 마주하는 일은 괴롭고 어려웠다. 당장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육아 동지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글을 쓰고, 신랑과 대화하며 시간을 벌었다. 그것은 나의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었다.
감정을 인식한다는 건, ‘화’를 마주한다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 아이는 어린 ‘나’ 일 수도, 내가 낳은 ‘너’ 일 수도, 곁에 있는 ‘당신’ 일 수도 있다. 나는 누워 안방에 타오르는 불씨를 바라본다. 그리고 기다린다. 함께 누워서, 이름 붙인 나의 ‘화’에 대해 조용히 이야기 나눌 당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