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말하기 위해, 울다
(그림 설명) 엄마, 여기 와 앉아봐요.
새벽에 잠에서 깼다. 눈을 뜨니 집이었고, 방 안은 캄캄했다. 얇고 가는 소리가 났다. 잠결에 눈을 비비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두워 조심스레 발을 옮길 수록, 소리는 얇게 떨렸다. 무서웠지만 확인해야 했다. 문 앞에 웅크려 앉은 엄마가 있었다.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의 갈등은 끝자락에 다다르고 있었다. 엄마의 울음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얇고 빠른 진동으로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어려운 아이였다.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많아 누가 말을 시키면 눈물이 그렁그렁 찼다. 차츰 말하지 않는 일이 늘어갔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서로의 슬픔에 기대어 살아왔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게.
우리는 함께 슬픔방을 키웠다. 슬픔방은 이 집의 거실이자, 모든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중앙에는 110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 나무 둘레에는 호수가 빙 둘러 있었다. 서로의 슬픔에 기댄 날이면 호수에 물이 가득 차고, 나무는 홀로 섬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날은 호수가 비워져 나무에 닿을 수 있었다. 나무 앞에 서면,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수 있었다. 그 때 비로소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의 말이고, ‘내 울음’도 나의 목소리라고. 내 소리를 내가 들어야 한다고. 그렇게 내 언어로 말해가며 그것을 가슴에 담았다. 그래서 말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내던지는 것이었다.
어느 날 ‘희망제작소'라는 시민단체를 만났다. 시민의 참여로 사회적 대안을 만드는 곳이었다. 그날은 마을과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내 마음은 유독 들썩였다. 오랫동안 품어온 진심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원하는 수학여행을 스스로 기획하고 떠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차례가 되자 눈물이 먼저 터졌다.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사람들은 박수로 나를 기다려주었다. 숨을 고른 끝에야 겨우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입 한번 떼기 어려웠던 슬픔이, 오히려 나를 세상에 드러나게 도왔다.
포이에시스에서 ‘소리’를 공부하던 날도 있었다. 예술이 삶의 회복과 성장에 쓰이도록 연구하고 실천하는 공간이었다. 그날은 내 몸의 일부인 '소리'로 나를 만나보는 과정이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목놓아 울었다. 울음이 공간을 다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내 울음소리가 들렸다. 다른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숨죽여 있던 누군가 말했다. “선아님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제가 우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했어요.”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울음이 잦아들었다. 볼은 빨개졌으며, 눈두덩이는 부었지만, 호흡은 착실하게 해냈다. 그렇게 울음을 떠나보내는 동시에, 누군가와 울음으로 연결되었다.
첫째 지온이가 다리를 다쳐 수영을 하지 못해 속상한 날이었다. 슬퍼하는 아이 옆에 앉아 글을 썼다.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잠시 서로의 곁에서 각자의 일을 했다. 마음이 좀 가라앉았는지 지온이가 물었다.
"오늘은 어떤 방이야?”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이 녀석이 알긴 했지만 이렇게 물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슬픔방”
그러나 아이는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으아 신음소리를 내더니
"슬픔방에 온돌을 넣어줘. 슬픈데 바닥이 따뜻하잖아.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니까 기분이 좋아지잖아. 엄마는 안 그래?”
선뜻 슬픔방으로 들어오는 딸아이의 말이 신기하고 귀엽다. 쉽게도 온돌을 깔아버리는 녀석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이의 유연함 덕분인지 내 마음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이렇게 우리의 슬픔은 이어졌다. 엄마와 내가 그랬듯, 지금은 나와 딸이 그렇다. 슬픔방은 모두를 불러 모으는 광장 같았다. 손잡고 함께 들어가면 슬픔이 나눠지고, 때로는 기쁨이 되었다.
내 슬픔방에 서있는 느티나무는 ‘나'다. 엄마의 울음과 나의 울음이 하나 되는 순간에 태어났다. 그래서 110년이나 살았다. 엄마가 내려 준 그 영양분으로 뿌리를 뻗어냈다. 엄마가 살아서 나를 키웠다. 슬픔으로 뻗은 뿌리가 흙을 꽉 움켜쥐었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