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둘러 모여

감정이 흘러가는 길 : 갑자기, 슬픔이 밀려올때면

by 이불

(그림 설명) 거실에서, 차 한 잔 하실래요?



그날 저녁, 몸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이 놀던 거실 바닥이 지저분해서, 가만히 앉아 있기 어려웠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뭐 하고 있어?”

말투가 차가웠다.

“아프다면서. 왜 청소 돌돌이는 들고 돌아다니는 거야?”

평소 같으면 웃으며, 왜 이걸 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지 조곤조곤 설명했을 것이다. 지친 저녁 무렵의 엄마를 토닥이며 "오늘 어땠어?” 하고 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엄마는 어젯밤 잠을 설친 이야기며, 아빠와 다퉜던 일 같은 걸 툭툭 털어놓았을 텐데.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일을 해내느라 체력을 다 써버렸다. 아침에는 몸이 가벼워 기분 좋게 움직였지만, 저녁이 되자 완전히 진이 빠졌다. 녹초가 된 몸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고, 사건은 터졌다.

엄마의 한마디에 마음속 버튼이 눌렸다.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더니, 숨이 조금 가빠졌다. 대답을 하려는데 목 안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 틈에 쌓아둔 마음의 벽돌들이 형체를 드러내더니,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가 엄마한테 얼마나 신경을 썼는데..’

‘내가 힘들 땐?’

‘정말로..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순간에.. 왜 이러는 거야?’

무너진 마음은 갈래갈래 흩어졌고, 흩어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생각은 퍼져나갔다. 그리고 서러운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서러웠다. 콧날이 시큰거리고 눈시울이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그렇게 슬픔방의 방문을 열었다. 호수에 물이 가득 차오르자, 느티나무의 뿌리가 물속에 잠겼다. 발 디딜 땅을 잃고, 홀로 물결 속에 서 있는 듯했다. 그 모습이 마치 나 같았다.

이렇게 감정의 버튼이 눌릴 때면, 마음 한쪽에서 오래된 문이 삐걱거렸다. 그 틈으로 어린 날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그리고 과거의 슬픈 기억들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어린 시절의 서러운 마음들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했다.

제일 처음으로 찾아오는 건 고등학생 때의 나였다. 학교 창밖 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노래를 천 번은 들었다. 거울을 보며 '내일, 내가 사라져도 상관없지 않을까’ 중얼거렸다.

곧이어 베란다에 서 있는 어린 내가 따라왔다. 초등학교 시절, 오후반 학교를 가기 위해 일나 간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때, 창문 사이로 얼굴을 삐죽 내민 나의 눈은 엄마를 찾기 바빴다.

그리운 마음을 안고 보고 있으면, 여지없이 중학생 때의 나도 뒤따라왔다. 싸우는 부모님 옆에서 울며, 눈물로 소리치고 있었다. 그만 좀 하라고요.

이 장면들은 서로 불씨를 옮기고 등을 떠밀며 겹겹이 밀려왔다. 그것들은 수많은 감정들 사이로 슬픔의 길을 내는, 선택적으로 남은 기억들. 내가 마음속에 간직하기로 한, 자발적 고립이자 흐르지 못한 추억들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마음을 감추고 싶었다.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화가 먼저 튀어나왔다.

“내가 애들이 이렇게 있는데 일해야지, 아프다고 가만히 있어?”

목소리는 날카로웠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내 기억 속 엄마는 서툴렀다. 누군가의 인정을 필요로 했고, 쓸모를 찾으며 최선을 다해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주변 환경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잘 듣는 아이였지만, 거절하는 법을 몰랐고 엄마 곁을 지켰지만, 내 마음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 때문에 속상하고, 엄마 때문에 서러운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서투른 내가 그런 나를 마주하자, 서툰 엄마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엄마도 나도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 깨달음이 오자,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엄마는 슬픔방의 뿌리이자 나를 키운 지지자였고, 나는 슬픔방의 주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슬픔의 다리를 건넜다. 같이 손잡고 걸었지만, 각자의 몫이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려 애썼다. 나를 연민할수록 곧장 외딴섬에 갇혔기에, 나는 슬픔을 함께 나누고, 글로 써가며 내 슬픔을 목격했다. 그러면 슬픔은 슬픔답게 흘러갔다. 고이지 않고, 흘렀다.

첫째 지온이가 정적을 깼다.

“엄마, 할머니가 지금 엄마 상황을 몰라서 그래.”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 울림이 닿자마자 서툰 화가 금세 꺼졌다. 우리는 조금 차분해진 말투로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이제, 엄마와 내가 건넌 슬픔은 그리움으로 가는 길목에 앉았다. 다행히도 엄마는 삶을 버텨내어 살아주었다.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글을 쓴다. 그림은 편지가 되고, 글은 답장이 된다. 슬픔의 다리 위에서, 우리는 함께 마음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우리가 나눈 마음의 편지는 선물이 되어 아이에게 안겼다. 아이가 슬플 때 서랍 속에서 꺼내보길 바라며. 그 시작을 나는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첫째 지온이가 울었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아이가 우는 게 아니라, 사람이 울고 있었다.

“엄마, 혼자 좀 내버려 뒀으면 괜찮아졌을 텐데, 그렇게 말하니까 더 속상해”

위로하려다 되돌아온 말이었다. 그 말을 하며 더 서럽게 우는 딸을 보는데, 나도 갑자기 눈물이 났다. 슬픔이 스치듯 지나갔다. 앞으로 이 아이가 살면서 맞이할 슬픔을 보는 것 같았다. 이 모습을 보는 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하겠구나, 잠깐이었지만 느꼈다.

아이가 건널 슬픔의 다리 공사가 시작되는 걸까. 아이는 서러운 마음을 자기 방식대로 추스르고, 다시 만난 얼굴엔 옅은 웃음이 살아났다. 나는 잠시 머물다 흘러간 슬픔 덕분인지, 누구보다 세차게 아이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 하기보다 지금, 너에게 이 마음이 닿길 바라며.

"지온아, 너 잘하고 있어. 응. 아주.”

그렇게 엄마에게서 건너온 슬픔은, 나를 지나 아이에게로 가 닿았다. 그러나 분명, 있는 그대로의 슬픔은 아니다. 손바닥에 올려진 따뜻한 돌처럼. 세대를 건너며 슬픔은 무게를 덜고, 모양을 달리했다. 나는 그렇게 슬픔이 흐르는 자리를 보았다. 사실 슬픔은 어쩌면, 어쩌면 내가 엄마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선물이 아닐까. 우리가 연결되어질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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